- 허술하게 조사 이뤄진 뒤 덮어
- 사고 원인 재조사 진상규명 촉구
- 부산 출신 조정애 시인 국민청원
“어디 호소할 데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 사진을 보면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부산 출신의 조정애 시인은 4살이던 1950년 12월 16일을 잊지 못한다. 그날 오전 8시45분 부산 중구 광복동 대동상선 부산지사 항구에서 출항한 ‘초춘호’는 여수로 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객과 화물을 너무 많이 실은 탓에 출항 직후부터 선체가 기울어질 정도로 위태로웠다. 승객들이 “위험하니 돌아가자”고 했지만 배는 계속 나아갔다.
결국 오전 9시께 회항을 결정했지만, 남항 방파제 인근에서 항로를 급히 바꾸다가 선체가 뒤집혀 침몰했다. 조 시인의 아버지 조영수 씨도 초춘호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
국제신문(당시 국제신보)도 사고를 상세하게 보도(사진)했다. 12월 17일 자 신문에 ‘부산 여수행 객선 초춘호 침몰! 원인 등을 조사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다음 날에는 사망자 34명과 생존자 7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국제신문은 사고 수습 과정에서 선사 측의 안일함을 비판하기도 했다.
여객 정원과 화물 적재량을 초과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출항했고, 인명 구조에 소홀했던 정황이 포착됐지만 정확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조 시인은 사고 기록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대부분 삭제된 상태였다.
조 시인은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초춘호 사고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위원회도 초춘호 사고를 일으킨 대동상선의 부산지사장이 당시 교통부 장관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 그쳤다.
조 시인은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초춘호 여객선 침몰사고를 밝혀 주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정말 억울한 일인데 역사적으로 밝혀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고 청원 배경을 설명했다.
29일 오후 현재 조 씨의 청원에는 169명이 동의했다. 조 시인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사고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가족이나 후손이 많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