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경사 헬기 2대 출동 준비’
- 1979년 10월 23일 조치
- 기무사 보관 문서 본지 입수
- 부산·마산 진압 작전 계획
- 7개월 뒤 광주서 헬기 사격
- 실행으로 옮겼을 가능성 커
부마민주항쟁 당시 군부가 시위 진압을 위해 가스살포기를 장착한 헬기를 동원하려 했던 기록이 처음 확인됐다. 부마항쟁 7개월 뒤인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대를 향한 ‘헬기 사격’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자료다. 군부가 부마항쟁 때 경험을 토대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폭력으로 진압했다는 학계의 판단에 힘이 실린다.
23일 국제신문이 입수한 ‘부마사태 발생 시 군부 조치 결과’라는 제목의 국군 기무사령부 보관 문서를 보면 당시 수도경비사령부(수경사)가 헬기를 출동시키려 준비한 내용이 나온다. 이 문서 중 ‘3장 전국사태 대비 사항’(10월 23일 조치)에는 ‘헬機(기) 개스撒布器(살포기) 4台(대) 裝置(장치) - 首警司(수경사)’ ‘헬機(기) 2台(대) 補强(보강)’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1979년 10월 16일 부마항쟁 첫 시위 이후 같은 달 20일부터 시위는 줄어들고 있었다. 그달 22일 월요일 처음으로 국무회의가 열렸고, 정권은 본격적으로 군 진압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당시 수경사가 어떤 기종의 헬기를 무슨 목적으로 동원하려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에서도 수경사가 헬기를 동원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가볍지 않다. 지난해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는 1980년 5월 21, 27일 공격헬기 500MD와 기동헬기 UH-1H를 이용한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500MD의 운용 부대는 직제상 육군 항공여단 소속이지만, 당시 헬기는 수경사가 통제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500MD는 가스살포용으로만 광주에 파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마항쟁 때 부산을 방문한 사실은 이미 드러났다. 육군 군수사령부가 1981년 6월 작성한 ‘군수사사’를 보면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 18일 낮 12시20분께 부산의 계엄사령부를 찾아 “군이 개입한 이상 데모자에게 강력한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종합할 때 전 전 대통령이 이끈 신군부가 부마항쟁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을 토대로 5·18광주민주화운동 시위대를 진압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결과적으로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준비된 국가 폭력이 1980년 5월 광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보안사가 작성한 문서 ‘부마지역 학생사태 소요 교훈’에는 유의사항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함으로써 군대만 보면 겁이 나서 데모의 의지를 상실하도록 위력을 보여야 함”이라는 내용까지 있다.
경남대 이은진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유신정권은 4·19혁명 때의 자유당을 떠올리며 큰 위기감에 휩싸였다”며 “추가적인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면 부마항쟁에 전군이 동원됐을 수도 있다. 그런 ‘위기 상황’을 겪은 경험이 광주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신심범 임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