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명위 “유치준 씨 외 6명 추정”
- “사상자는 대외비” 지시 드러나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40년 만에 유치준(당시 51세) 씨가 항쟁 관련 사망자로 처음으로 공식 인정(국제신문 지난 6일 자 1면 보도)받은 것을 계기로 당시 시위에 참여했다가 숨지거나 다친 이들을 찾아내 합당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계엄군이 사상자를 은폐하려 한 정황도 곳곳에서 확인됐다.
‘부마민주항쟁 진상 규명 및 관련자 명예 회복 심의위원회’는 1979년 10월 19일 부마항쟁 당시 국방부 차관과 문공부 차관 등이 부산에서 ‘계엄업무 현지 간담회’를 열어 “계엄업무 수행 중 사상자가 발생하면 대외비로 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9일 밝혔다.
이런 탓에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유 씨를 포함한 부마항쟁 사상자에 관해 증언하는 사람은 드물다. 심의위원회는 이에 따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상자가 많을 것으로 판단한다. 유 씨를 제외하고 부마항쟁 때 국가 폭력으로 숨졌다고 추정되는 사망자는 6명이다. 부산에서 4명, 마산에서 2명이 계엄군 또는 경찰에 맞아 숨졌다는 증언과 기록이 있다. 이 같은 내용은 국제신문이 입수한 부마항쟁 당시 ‘검찰 정보 보고’와 경찰의 ‘사망 추정자’ 내부 보고를 근거로 경남지역 기자가 작성한 취재 기록에도 들어 있다.
그러나 기록이 매우 단편적인 데다, 이름 외 신원 정보가 부족하다. 40년 전 그날의 기억을 증언할 목소리를 모으는 작업이 서둘러 이뤄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남대 이은진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부산에는 마산에 견줘 사망자 기록 등이 많은 편이지만, 당시 사건 관련자들을 찾지 못했다”며 “희생자와 주변을 추적하는 조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