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사고 줄이고 대기환경 보호
- 세계적 명성 고속도로 아우토반
- 시속 130㎞ 이하 운행제한 권고
- 국민 절반 넘게 ‘법적 명시’ 찬성

- 베를린시 일부 도심 30㎞ 제한
- 정부, 독일 전역으로 확대 검토
- 일각 자동차산업 위축 우려 반발
- 전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과제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독일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두 주자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 차 브랜드는 오랜 시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독일은 유럽연합(EU) 국내총생산(GDP)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중심 국가다. 이러한 독일에서 자동차 산업은 2015년 ‘디젤게이트’ 이후 수출 부진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자국 GDP의 약 14%를 점유하는 주요 산업이다.

독일에서는 고속도로인 아우토반과 시내 도로의 속도 제한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독일 함부르크의 주택가 도로 모습.

독일인의 자동차 사랑 또한 유별나다. 지난달 함부르크에서 만난 시민 얀 뮬러(21) 씨는 “많은 사람이 주말마다 세차 거리(셀프 세차장)에 차를 닦으러 간다. 정원 가꾸기와 세차는 독일 중년들의 오랜 취미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인력관리 컨설팅 전문업체 랜스타드(Randstad)가 진행한 ‘2019년 가장 매력적인 직장’ 조사에서 자동차 부품 업체인 ‘ZF 프리드리히스하펜’이 2위에 올랐다. 자국 유명 자동차 브랜드 역시 독일인이 취업하고 싶어 하는 직장 순위에서 오랫동안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를 사랑하는 나라 독일에서도 최근 시내 자동차 도로의 속도를 크게 낮추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차량 속도를 줄여 인명 사고를 예방하고, 여기에 더해 배기가스 감축을 통해 대기환경을 보호한다는 게 주된 이유다.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만만찮다. 보수 정당 등을 중심으로 차량 속도 제한이 사고를 줄이는 데 얼마나 실효성 있는 방안인지 검증되지 않았으며, 운전자의 불편을 불러오는 방식의 환경 보호 정책이 타당한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탓이다.

■‘무한 질주’ 아우토반, 옛말되나

극한 질주로 악명 높은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은 올해 들어 ‘속도 제한’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였다. 아우토반은 총길이 1만2996㎞ 중 70.4%는 권고 속도가 있지만 법적인 제한 속도는 없다. 나머지 구간은 시속 60~130㎞ 수준의 속도 제한이 걸려 있다. 그런데 지난 1월 독일 정부 산하 교통 자문위원회 NPM(National Platform Future of Mobility)은 독일 정부에 아우토반 전체 구간의 최고 속도를 시속 130㎞로 제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대기오염과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다.

NPM은 아우토반의 최고 속도가 시속 120㎞로 제한되면 이산화탄소와 탄화수소 배출량은 연간 9%, 질소산화물은 연간 6%가 감소된다고 설명했다. 독일연방환경청에 따르면 독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11%는 자동차에서 발생한 것이다. NPM은 또 2017년 아우토반에서 사망한 사람 409명 중 절반 가량인 181명이 과속으로 인해 숨졌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보수 정당인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 소속의 교통부 장관 안드레아스 쇼이어는 “(NPM의 주장은) 상식에 반한다. 독일의 고속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 속도 제한은 효율성을 검증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독일 정부 또한 고속도로 전반에 걸친 속도 제한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독일 최대의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인 아데아체(ADAC) 역시 속도 제한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독일의 고속도로 1000㎞당 사망률은 30.2%로, EU 평균인 26.4%를 웃돈다. 12년 전인 2007년에도 안전 확보를 위해 아우토반의 속도 제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그런데도 쉽사리 속도 제한이 도입되지 않는 데에는 해당 정책이 자동차 산업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가 정치권에 작용했다는 게 통상적인 분석이다.

독일 국민의 여론은 반반이다. 독일의 공영방송 ARD가 지난 1월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는 시속 130㎞ 속도 제한 도입에 찬성했다. 속도 제한에 반대한다는 응답자는 47%였다. 이에 앞서 2007년 공영방송 ZDF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4%가 시속 130㎞ 속도 제한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보행자 안전과 환경 보호 동시에…실효성 의문도

독일 함부르크 도심 지역에 있는 도로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 제한 속도와 관련한 논쟁은 아우토반이 아닌 시내 도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의 현행 속도 제한은 ▷도심지역 시속 50㎞ ▷외곽지역 시속 100㎞로 설정돼 있다. 그런데 베를린시는 2017년부터 라이프치히 거리 일부 구간의 최고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는 일명 ‘템포 30 구역’으로 지정했다. 이는 2013년 베를린시가 시범적으로 시내 19곳의 도로를 템포 30 구역으로 지정해 속도 제한을 도입한 전후 3년을 비교 분석한 것에 따라 이뤄진 조처였다. 당시 베를린시는 교통의 원활함 및 대기오염 등을 비교했다. 그 결과 최고 속도가 줄어든 대신 교통 신호 등에 의해 주행을 멈춰야 하는 ‘제동시간’ 또한 감소해 주행 시간상의 손해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환경에 관해서도 이산화질소는 6~12㎍/㎥, 미세먼지는 2㎍/㎥가 적게 측정됐다.

독일연방환경청은 독일 전역으로 템포 30 구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환경청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에서는 교통사고로 3275명이 숨지고 39만6000여 명이 다쳤다. 사망자의 43.5%(1424명)가 차량 탑승자였다. 또 2016년 수립한 ‘기후행동계획 2050’에 따라 2030년까지 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9500만ｔ 줄여야만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독일 녹색당 등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인 정당에서는 템포 30 구역의 확대에 찬성의 뜻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ADAC 등은 도시 전역이 템포 30 구역으로 지정된다면 운전자가 해당 구간을 피해서 운전하는 등의 불편이 초래되는데, 이 같은 불편을 감수할 만큼의 환경적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템포 30 구역의 확대는 여전히 논의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함부르크시 운송혁신사업국 스테판 요겔 담당관은 “독일인 사이에서도 절반의 찬성과 절반의 반대가 나오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