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기환송심 “돈 인출 등 만으론
- 유죄 간접증거 안 돼” 무죄 판결
- 재판부, 경찰 수사 아쉬움 표출
부산 ‘태양다방 여종업원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1·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40대가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15년 만에 피의자를 기소해 전국적 관심을 받았던 이 사건은 다시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부산고법 형사1부(김문관 부장판사)는 11일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A(48) 씨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열어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젊은 나이에 처참하게 숨진 피해자와 유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범이 가려져야 하는 사건”이라며 “파기환송된 핵심 쟁점만 보지 않고 원점으로 돌아가 모든 증거를 살펴봤다”고 밝혔다.
2002년 5월 부산 사상구의 한 다방 여종업원을 살해한 공범 2명이 피해자 통장에서 돈을 찾는 모습이 찍힌 은행 폐쇄회로TV(CCTV) 사진. 부산경찰청 제공
앞서 대법원은 범행 당시 A 씨와 (시체가 든 것으로 추정되는) 마대자루를 옮겼다는 동거녀 B 씨의 진술, 피해자 통장 비밀번호를 알고 예·적금을 인출했다는 간접 사실만으로는 유죄를 증명하기에 부족하다는 취지로 재판을 다시 하라고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경찰이 B 씨를 처음 조사할 때 A 씨를 범인으로 강하게 의심하고 차량과 마대자루 사진을 제공해 기억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A 씨가 범행이 탄로 날 위험을 무릅쓰고 B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점에 관한 의문도 해소되지 않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2002년 5월 22일 피해자 통장 1차 인출 과정을 보면 A 씨가 차량에 피해자를 감금한 뒤 폭행·협박으로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강도살인까지 저질렀다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A 씨가 길에서 주웠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가방 속 수첩에 통장 비밀번호 또는 단서가 적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A 씨가 진범이라면 1차 인출 이후 20일이나 지난 같은 해 6월 12일 자신의 행적을 추가로 노출할 수 있는데도 은행을 찾아 2차 인출(적금 해지)을 시도했을지 의문이다”고 밝혔다. 앞서 검사는 A 씨가 당시 피해자 사망 사실을 알고 추가인출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A 씨가 수입이 없이 상당한 채무를 안고 있었고,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및 성폭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는 점도 유죄 증거로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재판부는 “직접 증거에 버금가는 간접 증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경찰 수사 과정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재판부는 “2002년 A 씨가 2차 인출 당시 검거됐다면 B 씨의 생생한 진술로 명확한 유무죄 판단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2017년 재수사로 B 씨를 처음 조사할 때도 개방형 심문 및 영상 녹화 등 조사가 면밀히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A 씨는 2002년 5월 22일 다방 여종업원인 피해자(당시 22세)를 흉기로 협박하고 통장을 빼앗아 예·적금 800만 원을 찾고, 칼로 가슴을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사건 발생 15년 만인 2017년 기소됐다. 검찰은 판결문 검토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