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효주 양 유괴 사건’ 피해자 가족이 살던 저택이 최근 철거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저택은 건축학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서구 서대신동의 주택 철거 현장. 배지열 기자

4일 부산 서구에 따르면 서대신동 한 주택이 최근 신고를 내고 철거 공사를 진행했다. 이 주택은 ‘효주 양 유괴 사건’으로 알려진 문창수산 전 대표이사 가족이 살던 집이다. 효주 양 유괴 사건은 문창수산 전 대표이사 외동딸이 1978년과 1979년 두 차례나 납치된 사건으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할 정도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효주 양은 두 차례 모두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은 2015년 개봉한 영화 ‘극비수사’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 철거된 주택은 사건이 일어난 지 13년 뒤인 1992년 준공된 것으로, 철거 전까지 이들 가족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지 면적 467㎡에 연면적이 1004㎡에 달하는 대저택으로, 정원과 주차장 등 자체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이 주택은 1993년 한국건축전 준공 분야 우수상과 한국건축문화대상 주거 부문 본상을 수상하는 등 건축학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주민 한모(여·63) 씨는 “(철거된) 집 담장이 굉장이 높았고, 자동으로 열리는 차고까지 있는 굉장히 고급 주택이었다”면서 “유괴 사건 당시에는 경찰과 취재진으로 둘러싸였는데, 이후에는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잊혔다”고 말했다.

문창수산은 1960년대부터 대형 선망어업으로 시작해 제빙공장과 냉동창고를 짓고, 대형 선망 선단과 저인망 어선을 보유하는 등 부산의 대표적 수산업체로 성장했다. 당시 ‘부산 경남에서 현금이 가장 많은 회사’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고, 1995년 2대 경영주가 숨지면서 상속 재산 486억 원을 남기자 유족이 상속세 215억 원을 일시불로 납부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문창수산은 만성 적자를 견디지 못한 채 지난해 7월 매각됐다. 3대째 가업을 이은 토박이 업체가 사라지면서 지역 수산업계 위기를 보여준 사례라는 얘기가 나왔다. 회사 매각에 이어 살던 집까지 사라지면서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저택이 철거된 자리에 어떤 건물이 들어설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구 관계자는 “철거 신고만 들어온 상태로 부지 매각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건물 신축 허가가 접수되지 않은 만큼 아직은 어떤 건물이 들어설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