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철도 다대포항역서 출발
- 조선시대 왜구 출몰·약탈 잦아
- 수군첨절제사 주둔 역사 불구
- 도시 개발로 성벽 일부만 남아
- 다대포 해변공원 위치 ‘몰운대’
- 시원한 솔숲 호젓하게 걷다보면
- 8000만 년간 쌓인 퇴적층 반겨
- 복원·이전한 다대포 객사 눈길
부산 사하구 다대포로 간다. 낙동강 하구를 넘나드는 철새들이 노니는 곳, 해질녘 장엄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요즘은 꿈의 낙조분수대와 갯벌의 생태를 날 것 그대로 볼 수 있는 ‘고우니 생태길’로 더 유명한 곳. 다대포는 이런 곳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조선시대 다대포는 지금의 부산시청 격인 동래부에서 100리 떨어진 변방이었음에도 왜구의 출몰과 약탈이 잦았던 최전방이었다. 임진왜란 때 다대첨사 윤흥신·흥제 형제의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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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사하구 다대동 몰운대의 다대포 객사 일대. ‘지질학 교과서’로 불리는 몰운대는 부산국가지질공원이기도 하다. 김성효 전문기자 |
■ 초라한 다대포진 성터 ‘흔적’
부산도시철도 1호선 다대포항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온다. 윤공단으로 가는 길이다. 임란 당시 왜적에 맞서 싸우다가 순절한 다대첨사 윤흥신과 군민의 충절을 기려 만든 제단이다. 윤공단으로 오르는 계단은 팍팍하다. 거친 숨을 내쉬며 오르는 길에 엄숙한 분위기가 짓누르는 듯하다. 윤공단 주변으로는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 솔숲 사이로 걸어 다니기 좋다. 마침내 제단 앞이다. 한가운데에 ‘윤공흥신순절비’가, 그 좌우로 윤흥신 장군의 동생 윤흥제를 기린 ‘의사윤흥제비’와 순절한 군민을 추모하는 ‘순난사민비’가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이 제단은 윤흥신이 전사한 곳인 다대진 성내 다대포 객사의 동쪽(현 부산유아교육진흥원, 옛 다대초등학교)에 있었는데,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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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유아교육진흥원의 축대로 일부 남아 있는 다대진 성곽. |
윤공단에서 내려오다 보면 왼쪽에 비석군이 눈에 들어온다. 관찰사 다대첨사 등의 은덕을 칭송하는 선정비들이다. 다대포 일대 곳곳에 있던 것을 한 곳에 모았다.
윤공단에서 다대초등학교, 원불교 다대교당 쪽으로 육교를 건넌다. 다대포진 성터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다대포진 성터는 도시 개발과 함께 거의 사라졌다. 성터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원불교 다대교당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카센터와 마주 보는 부산유아교육진흥원의 담장에 성벽 일부가 보인다. 담쟁이덩굴이 휘감고 있어 미리 알고 찾지 않으면 주택가의 축대로 보기 쉽다. 2016년 7월 부산박물관 조사 결과 다대포진 성터에서 방어용 도랑인 해자의 석축이 확인됐다. 지금의 성터 바로 옆자리다.
다대포진성의 ‘흔적’은 초라하다. 다대포진이 어떤 곳인가. 국방의 요새로 중요시되던 곳이다. 조선 초기 장림포에 있던 수군 진영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성을 쌓은 것은 1490년(성종 21). 임란 이전 첨사영으로 바뀌었는데, 당시 수군첨절제사가 있던 곳은 다대포진과 만포진(조선과 만주 국경에 설치) 등 두 곳뿐이었다고 한다. 임란 이후에는 경상좌도 7진 중에서도 더욱 중시됐고, 그래서 다른 진보다 배나 많은 병선을 보유했다니 그 위용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 몰운대, 국가지질공원 ‘주목’
다대로를 따라 몰운대로 향한다. 몰운대 입구 쪽인 다대포 해변공원까지 걸어가는 길은 다소 지루하다. 이는 몰운대에서 보상받고도 남는다. 시원한 솔숲을 만끽할 수 있는 몰운대는 부산국가지질공원이다. 8000만 년 전 무렵 만들어진 퇴적층인 하부 다대포층과 그후 지각의 변형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지질학의 교과서’로 불린다. 부산국가지질공원 사이트(www.busan.go.kr/geopark)를 이용하면 지질공원 해설사와 함께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몰운대(沒雲臺)는 말 그대로 구름에 잠겨 있는 곳.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섬 전체가 안개와 구름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6세기까지만 해도 몰운도로 불리던 섬이었는데, 낙동강 하구에서 밀려온 모래가 쌓여 육지와 연결됐다.
몰운대 산책로 오른쪽으로 오른다. 이것저것 내려놓고 호젓하게 걷기에 제격이다. 걷다 보니 다대포 객사다. 조선 후기 다대진첨절제사영에 있던 건물이다. 부산유아교육진흥원 자리에 있었으나,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 복원됐다. 객사는 임금의 상징인 전패를 모시고 고을수령이 임금이 있는 대궐을 향해 절을 올리던 곳이었고, 사신의 숙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다대포 객사를 지나면 ‘정운공순의비’로 가는 길이 나 있지만,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으로 못 박아 놓았다. 정운 장군은 임란 당시 녹도만호였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 장수 중 한 사람으로, 몸이 성치 않았음에도 부산포해전 참전을 고집했다가 왜적의 흉탄에 목숨을 잃는다. 정운공순의비를 찾아갈 수 없는 까닭에 아쉬운 발길을 화손대 쪽으로 돌린다. 화손대에서 몰운대 입구로 돌아오는 길에 정운 장군과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선수 등에 얽힌 다대포항 일대 스토리텔링과 마주할 수 있다.
오광수 기자
※공동기획:부산시·국제신문·(사)걷고싶은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