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철도 덕천역 8번 출구 출발
- 기찰로 밀무역 막던 기찰서 유래
- 주택가 지나면 나무 덱 언덕길
- 야생화 핀 숲길 호젓하게 걸어
- 북구빙상센터 1층 다양한 유물
- 구름다리 ‘북이 희망교’
- 남해고속도로가 끊은 두 곳 연결
- 구룡사 약사대불 ·구포왜성 눈길
부산도시철도 2·3호선 환승역인 덕천역 8번 출구로 나선다. 부산 북구 덕천동 의성산 일대 탐방로를 걷는 길. 삼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오랜 기간 삶터로 자리 잡았던 덕천동 유적 이야기, 자연마을인 기찰·의성마을의 옛 흔적, 임진왜란 당시 구포왜성(부산시 기념물 6호)에 얽힌 역사를 더듬어 보는 구간이다. 걷기 코스로는 아주 짧은 편인데, 구석구석에 숨은 이야기를 되새김질하는 묘미는 있다. 보행 여건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괜찮고, 해발 60m 의성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약간의 수고로움만 더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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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북구 덕천동 의성산 맨 위에 자리 잡은 구포왜성. 성곽의 상단부는 높이 10m 안팎의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
■ 개발로 사라진 기찰·의성마을
덕천역 8번 출구에서 화명동 방면으로 걷다가 10번 출구에 닿기 직전 도로 하나를 만난다. 기찰로(1→186)다. 도로명은 지금의 덕성초등학교 일대에 있던 기찰마을에서 따왔다. 기찰은 통행자를 검문하고 상인들의 물품을 조사하던 검문소다. 기찰마을은 구법곡(仇法谷) 기찰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조선시대에는 구포에서 낙동강을 건너 김해로 향하는 곳에 구법곡 기찰을, 동래에서 양산으로 가는 곳에 십휴정(十休亭) 기찰을 각각 두고 운용했다. 구법곡 기찰은 구포 일대 왜인들과의 밀무역을 차단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이런 구법곡 기찰이 있던 기찰마을은 주택지 등이 들어서면서 사라졌고 현재 도로명으로 옛 흔적을 짐작할 뿐이다.
기찰로의 덕천2동 주민센터에서 두 구역 더 가면 화명·금곡동 쪽으로 향하는 의성로와 만난다. 도로명 의성로는 강변 마을인 의성마을에서, 의성마을의 이름은 의성산에서 각각 따왔다. 의성산을 기준으로 북쪽의 성훈강변아파트 부근을 ‘안 의성’으로, 그 아래 강변 쪽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는 일대를 ‘바깥 의성’으로 불렀다고 한다. 의성마을 역시 옛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의성(義城)의 유래설은 두 가지다. 신라 때 왜구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 산화한 황룡 장군과 군사 500여 명의 의로운 죽음을 기려 그들의 성터를 의성으로 불렀다는 설과 임란 당시 의병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기찰로의 북부아파트에서 부산북구문화빙상센터(빙상센터) 건물 쪽으로 꺾어 들어간다. 주택과 상가가 밀집한 100여 m의 길은 주정차 금지선만 그어져 있고 별도의 보행로는 없다. 빙상센터로 올라가는 50m가량 구간의 언덕길에 나무 덱 중심의 산책로(희망산책로)가 개설돼 있는데, 야생화가 핀 숲길을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 2009년 희망근로 프로젝트로 조성됐다.
■ 1500년간 마을이 존재한 까닭
이어 의성산의 낮은 쪽인 빙상센터. 빙상센터 건립 계획에 따라 동아대 박물관이 2002년 사업 대상지에서 대규모 발굴조사에 들어갔다. 임진왜란 당시 왜성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왜성과 함께 삼한시대에서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분묘 및 주거지에서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빙상센터 1층 유물전시관에는 당시 발굴 조사된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유물은 고배, 화로형 토기 등을 비롯해 상감청자 접시, 중국 동전, 청동 거울 등 고려시대 유물, 조선시대 회청자 대접 등으로 다양하다. 이곳에서 1500년 넘게 사람이 계속 살았다는 얘기다.
빙상센터에서 구름다리 ‘북이 희망교’로 향한다. 남해고속도로 위를 가로질러 의성산 높은 쪽으로 연결하는 이 다리, 참 묘하다. 남해고속도로는 거북을 닮은 의성산을 두 동강 냈지만, 구름다리는 그 도로 위에서 끊긴 두 곳을 연결한다. 구름다리를 건너가면 구룡사다. 의성산 정상 쪽으로 향하는 산길 아래쪽에 있는 사찰로, 숲속에 자리 잡아 풍광이 맑고 시원하다. 구룡사 약사대불로 가는 돌계단을 올라가면 석불 뒤편에 구포왜성의 성곽이 보인다.
왜성이 왜 이곳에 있을까. 의성산이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낮은 산인데도 낙동강과 덕천동 일대, 금정산의 산줄기까지 조망할 수 있다. 임란 때 왜군은 낙동강을 진격과 방어의 중요 통로로 삼았다. 이는 왜군이 낙동강 길목인 김해와 구포, 양산 등지에 왜성을 쌓아 교두보로 삼은 이유다.
구포왜성의 외성은 빙상센터 자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졌고, 본성은 의성산 정상부에 상당 부분 남아 있어 이곳만 문화재로 지정됐다. 구포왜성 본성의 상단부 성곽은 60~70도의 경사도로 비스듬하게 쌓았으며, 석축은 8~10m 높이로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하지만 곳곳에서 지반 침하와 함께 석축이 밀려나 있는 게 확인되는 등 우려스러운 대목도 있다. 왜성 역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이다.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걷고싶은부산·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
※공동기획:부산시·국제신문·(사)걷고싶은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