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단 곳곳 사람 쓰러져 있고 비명 난무”

- 목격자들 당시 상황 설명하며 몸서리

- 현장 혈흔 그대로 … 주민들 충격 여전

“새벽에 사이렌 소리를 듣고 급히 계단으로 대피하는데 4층에 피가 흥건하더라고요. 정말 무서웠어요.” “계단에 주민들이 쓰러져 있었어요. 피로 범벅이 된 바닥을 밟고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17일 오전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만난 주민은 두려움에 떨며 한마디만을 남긴 채 다급하게 자리를 떴다. 이른 아침인데도 군데군데 많은 주민이 모여 한곳을 바라봤다. 이날 ‘새벽의 참극’이 시작된 이 아파트 303동 4층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이날 새벽 열두 살 어린이를 비롯한 주민 5명이 화마를 피해 1층으로 내려가려다 목과 등 부위를 흉기에 마구 찔려 숨졌다. 70대 노약자 등 6명도 흉기에 찔려 중상 또는 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피의자 안모(42) 씨가 불을 지른 4층 아래위에 사는 주민의 피해가 특히 컸다. 이 밖에 7층과 8층에 사는 주민 등 7명도 연기를 흡입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사건 당시 112와 119에는 “누가 흉기로 사람들을 찌른다”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 등 신고가 잇따랐다. 주민들은 연기가 위로 치솟아 위층으로 대피하기도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래로 내려가려면 양손에 흉기를 든 ‘괴물’이 계단을 막고 있었다.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고, 유혈이 낭자했다. 말 그대로 이 아파트는 한때 ‘지옥’과도 같았다.

주민 채모(50) 씨는 “범인이 2층 계단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찔렀다고 한다. 경남 남해에서 일하다가 새벽에 뉴스를 보고 가족들에게 연락했는데 닿지 않아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불안해했다. 다른 한 주민은 “안내방송 같은 것도 못 들었다. 모두가 허둥지둥했다”며 “범인이 ‘불이야’라고 외쳤다는데 엘리베이터를 못 타니까 계단으로 주민들을 불러내려고 일부러 그런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아파트 경비원 권모(73) 씨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2층 계단에 2명이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고, 연기와 화염이 가득했다”며 치를 떨었다. 또 다른 경비원 강모(62) 씨는 “연기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살려 달라고 말하며 피를 흘리는 주민이 보여 너무 참혹했다”고 했다. 목격자들은 안 씨가 출동한 경찰관과 15분가량 대치했다고 진술했다.

불이 진화되고,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도 이 아파트는 공포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불이 난 303동 출입구를 비롯해 외부 주차장 등 바닥에는 혈흔이 지워지지 않았다.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한 후 소방호스를 이용해 씻어내기는 했지만, 곳곳에 피해 주민이 흘린 핏자국이 종이 상자 등으로 엉성하게 덮여 있었다.

아파트 구조도 사고에 취약했다. 이 아파트는 10층짜리 복도식 임대아파트로 승강기와 복도 출입구가 한곳뿐이다. 사건이 벌어진 303동은 한 층에 15평과 20평짜리 2개 구조로 8가구가 함께 있다. 경찰은 이 아파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