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복도로 ‘옥상 주차장’
- 지상·지하주차장은 지리적 한계
- 옥상으로 올려 만성 주차난 해결
- 탁트인 부산항 경치 구경은 덤
# ‘관객 떼창’ 압도 사직야구장
- 야구시즌 몰리는 부산갈매기들
- 부산사람 ‘신명’ 에너지 보여줘
- 쓰레기봉투·신문지 응원도 명물
# 창조적 향토음식 돼지국밥·밀면
- 피란 속 주린 배 채우려다 탄생
- 타지 관광객 ‘먹방 리스트’ 1위
# ‘평화의 성지’ 유엔기념공원
- 6·25전쟁 참전 장병 유해 안치
- 유엔군 묘지 전 세계서 유일
- 다크투어리즘 명소 가능성 충분
부산이 서울과 인천 사이에 끼여 ‘넛 크래커(Nut-Cracker)’ 신세다. 넛 크래커는 호두를 양쪽으로 눌러 까는 호두 까기 기계다. 기술력(품질)은 선진국에 밀리고, 가격은 개발도상국에 뒤처지는 진퇴양난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부산이 서울만 쳐다보고 쫓아가는 사이 인천에 추월당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7년 지역소득(잠정)’ 보고서를 보면 부산의 명목 GRDP(지역내총생산)는 83조2987억 원으로 인천(80조8592억 원)에 처음 밀렸다. 부산이 가진 ‘대한민국 제2의 경제도시’ 타이틀을 인천에 내준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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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9일 부산지역 여행사인 여행특공대의 투어프로그램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동구 산복도로 옥상 주차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에 주차된 승용차와 멀리 부산항대교가 보인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부산이 살아남으려면 서울을 그만 쳐다보고 바다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서울을 따라가면 잘해봤자 2등이다. 이마저도 인천의 추격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길은 있다. 부산이 지닌 지정학정 조건을 잘 살리면 해양수도는 물론 동북아 물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부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넘버원(No. 1)이 아니라 온리원(Only one)이다. 남을 흉내내고 따라가면 안 된다는 얘기다. 부산만의 스타일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들어 경제계 인사를 잇달아 만나 “우리 경제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산과학기술기획평가원(BISTEP) 김병진 원장은 31일 “매일 새로운 기술이 요구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다른 사람을 빠르게 뒤쫓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방식으로는 시장을 선도할 수 없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 사람도 잘 모르는 온리원을 정리했다. 부산 사람 상당수가 공기처럼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해서다.
■ 역발상 산복도로 옥상 주차장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을까? 산복도로 옥상 주차장을 찾는 외지인은 이런 유형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도 차를 옥상에 주차하는 비법에 관해.
해방과 6·25전쟁으로 몰려든 귀환동포와 피란민은 비바람을 피할 거처를 마련하느라 산꼭대기까지 판잣집을 지었다. 이렇게 형성된 산동네를 연결하는 길이 산복(山腹)도로.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산의 배(腹)에 해당하는 중턱을 지나는 도로를 말한다. 산복도로는 동구 중구 서구 부산진구 사하구 등 부산 시내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산복도로 지역 주민은 지리적 특수성 탓에 심각한 주차난에 시달렸다. 궁하면 통하는 법. 산복도로 주민은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지상, 지하 주차장이 아닌 옥상 주차장이 탄생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옥상보다 약간 높게 위치한 산복도로의 특성을 이용해 차를 집 옥상에 주차할 수 있다. 아름다운 전망은 덤이다. 부산항대교를 비롯해 부산항의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초량 이바구길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유치환의 우체통’도 옥상 주차장 에 설치됐다. 지역 여행사인 부산여행특공대 정봉규 대표는 “동구 망양로 옥상주차장에서 부산항 경치를 본 관광객에게 ‘여러분이 있는 곳이 옥상’이라고 설명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며 “어려운 조건을 역발상으로 슬기롭게 극복하는 부산 사람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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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롯데자이언츠 팬들이 주황색 쓰레기봉투와 신문지를 이용해 응원하고 있다. 국제신문DB |
■ 세계 최대의 노래방, 사직야구장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벌써 나를 잊었나~.”
프로야구 시즌이면 부산 사직야구장에서는 많게는 2만~3만 관중이 ‘부산갈매기’ ‘돌아와요 부산항에’ 같은 부산을 상징하는 노래를 합창한다. 사직구장을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누적 관객 1000만 명 돌파를 앞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관객 떼창’을 압도한다.
특히 사직구장은 신문지 응원, 주황색 쓰레기봉투 응원과 결합해 부산 사람의 신명과 역동적 에너지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사직야구장의 인문학’이 나올 정도다. 부산대 사회학과 김희재 교수는 “주황색 쓰레기봉투를 머리에 쓰거나 폐신문지를 찢어서 펼쳐 흔드는 응원문화는 독창적”이라며 “쓰레기봉투는 응원 도구로 사용한 뒤 쓰레기를 담는 본연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창조성과 실용성을 두루 갖췄다”고 설명했다. 롯데자이언츠 구단 측이 경기 후 버려지는 쓰레기 처리 문제로 고민을 거듭하다가 2004년 비닐봉투를 나눠주면서 쓰레기봉투 응원이 탄생했다. 부산 야구팬의 쓰레기봉투에 관한 재해석이 놀랍다.
노래방(노래연습장)은 부산과 인연이 깊다. 1991년 부산에 처음 등장한 뒤 전국으로 확산됐고, 유명 노래반주기 생산업체인 금영도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다가 서울로 본사를 옮겼다.
■ 돼지국밥, 밀면의 원조
돼지국밥과 밀면의 원조는 부산이다. 6·25 전란 속에서 설렁탕과 냉면의 아류로 시작했지만 창조성을 가미해 부산의 독특한 향토음식으로 재탄생했다. 당시 피란민은 넘쳤지만 식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밀면은 냉면의 재료인 메밀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미군으로부터 원조받은 밀가루로 만든 것이다. 돼지국밥 또한 피란민이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돼지 뼈를 고아 탕으로 만들어 먹으면서 유래했다. 소뼈를 구하지 못해 나온 설렁탕의 대체재가 더 유명해진 셈이다. 만화가 허영만이 ‘식객’에서 “소 사골로 끓인 설렁탕이 잘 닦여진 길을 가는 모범생 같다면 돼지국밥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반항아 같은 맛”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돼지국밥은 부산의 진한 향과 맛을 자랑한다. 맛과 양이 넉넉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및 만족도)가 뛰어난 편.
돼지국밥과 밀면은 부산의 혼종(混種) 음식문화의 상징이다. 부산을 찾는 관광객 대부분이 먹어보고 싶은 음식 리스트에 포함할 정도로 전국권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 세계 유일 유엔군 묘지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은 6·25전쟁 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16개 전투지원국과 5개 의료지원국 장병이 잠든 곳이다. 현재 11개국 2300여 명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유엔군 묘지다. 유엔(UN)이 관리하고 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국가원수급 인사가 찾는 필수 코스다. 왜냐하면 전쟁 속에서 피어난 평화와 희생, 휴머니즘의 숭고한 가치를 간직한 역설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평화의 성지다. 당시 부산에는 전투가 없었지만 전쟁의 상처는 남아 있다.
부산시 관광협회 강석환 부회장은 “부산이 이런 ‘기억 자산’을 잘 살리면 ‘다크투어리즘’(전쟁 학살 재난 같은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 체험하고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의 세계적 명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
‘부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
부산(釜山) |
가마솥. 피란민과 한솥밥을 먹으며 모진 세월을 겪어왔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부산대 박재환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부산에서 한솥(Melting Pot)밥을 먹은 전국의 피란민은 한국의 현대사를 이끌어온 서민의 원형, 막다른 골목에서 출신 지역이나 빈부 구별을 넘어 함께 살아남은 ‘끈질긴 민중’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석. |
증산(甑山) |
시루. 조선 시대 부산진성이 있던 곳으로 산릉을 따라 쌓은 성의 모습이 시루와 같다는 데서 유래. |
부산(富 山) |
풍요로운 부자 도시. 고려 시대부터 ‘富山’으로 써오다가 조선 성종 때(1469년) 釜山으로 바뀜. |
불산 |
불의 도시. 6·25전쟁으로 피란민이 몰려 산꼭대기까지 판잣집을 형성,1950년대 겨울철만 되면 대형 화재 잇달아 발생하는 등 화재에 취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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