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제군수가 경남도에 발송
- 1955년 작성 공문서 발견
- 수용소 건설 당시 피징발자
- 이름·주소·피해금액 수록
- 시 “유네스코 등재 추진”
6·25전쟁 때 거제도 포로수용소 설치에 따른 거제 주민들의 강제 징발 피해액이 당시 돈으로 11억3300여만 환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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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 설치에 따른 거제 주민들의 강제 징발 피해 현황을 기록한 문서. 거제시 제공 |
이 같은 사실은 최근 거제시가 경상남도기록원에 보낼 기록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청 내 오래된 서류 보관함에서 ‘군 징발관계 서류철-피징발자 피해 조서’라는 제목의 문서를 찾으면서 확인됐다.
해당 문서는 당시 내무부 차관의 지침에 따라 1955년 12월 20일 거제군수가 경상남도 내무국장에게 보낸 것으로, 유엔군 포로수용소 설치에 따른 피징발자의 피해를 보상해 줄 것을 요청한 유일한 문서여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2권 583쪽 분량의 문서는 읍·면별로 공공과 민간 소유로 구분해 피징발자의 이름과 주소, 피해규모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시기별로는 1차 (1951년 1~ 6월) 유엔군 제1포로수용소, 2차(1952년 5~8월) 수용동 확장 건설, 3차(1952년 6~9월) 저구리포로수용소 건설 등에 따른 피해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별로는 고현동(중앙계곡 구역)을 비롯해 수월동(동쪽 계곡 구역), 장평동(보급 및 병참시설, 비행장), 남부면 저구리와 연초면 송정리 포로공동묘지 일대 토지와 동산, 가옥 등을 미군이 강제 징발해 수용소를 건설한 내용이 기재돼 있다.
문서에 담긴 피해내용은 건물의 경우 학교 13동(5925평), 공공시설 7동(344평), 주택 3279동(5만1081평), 창고 7동(240평) 등으로 모두 3306동(5만7527평)이다. 토지는 논 191만7938평, 밭 44만5900평, 대지 17만4161평, 임야 496만5641평 등 모두 750만6870평에 달한다. 전체 피해 금액은 11억3311만4096환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1100억 원이 넘는다.
이 문서는 6·25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전체 규모뿐만 아니라 설치 장소, 징발 품목, 물가 상황 등 당시 포로수용소 현황과 주민들의 피해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분석이다.
거제시는 다음 달 4일 열리는 ‘한국전쟁기 미 발굴 사진영상전’에서 처음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갑생 연구원은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아 거제시가 추진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목록에 등재함과 동시에 국가지정 근대기록물로 등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50년 12월 부지를 확정하고 이듬해 1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1953년 4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친 포로교환 뒤 단계적으로 폐쇄를 추진하다가 1954년 8월 5일 유엔군사령부가 국방부에 소유권을 이양했다. 박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