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봉과 최루탄으로 항쟁을 막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독재 타도’라는 부산시민의 외침을 응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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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이었던 이종설 씨가 부마항쟁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
이종설(63) 씨는 1979년 10월 당시 전투경찰로 복무 중이었다. 동아대 건축학과(75학번)에 다니다 1977년 6월 입대했다. 동포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기 싫어 육군이 아닌 경찰에 입대했다가 부마항쟁 시위를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이 씨는 진짜 부마항쟁의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국제신문의 기획시리즈를 보고, 당시 상황을 모두 털어놓겠다며 수화기를 들었다고 했다. 여태껏 항쟁 참여자가 진상조사에 참여한 경우는 많지만, 당시 전경의 진술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최근 취재진과 만난 이 씨는 누구보다 부마항쟁의 시작과 끝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최선봉에서 시위대를 지켜봤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2기동대 소속으로, 항쟁 발발 며칠 전부터 부산대 앞에서 대기했습니다. 10월 15일 난데없이 중대장이 학교에 가스차(페퍼포그)를 대고, 최루가스를 뿌리라고 했습니다. 16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학생 시위가 내심 반가웠다. 2기동대 3분의 2가 대학생이라, 서로 말은 못 했으나 유신체제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기동대 화장실에는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부르던 ‘옹달샘’을 개사한 가사 ‘데모 막으러 갔다가, 데모하고 오지요’란 낙서가 있었다. 동료들과 목소리 낮춰 중얼거리듯 부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17일에 그는 본격적인 진압작전에 투입됐다. 남포동 일대에서 경찰에 저항하며 도망가는 학생들을 붙잡아 경찰서 유치장에 가뒀다. 그가 이날 생생하게 기억하는 장면이 있었다. “남포동 유나백화점 골목으로 도망가는 시위대를 쫓고 있었다. 5세, 7세로 보이는 남매가 보여 ‘시위대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작은 아이가 ‘저쪽으로 갔다’고 말했다. 그러자 누나가 꿀밤을 때리며 반대쪽을 가리켰다. 당시 모든 시민이 시위대 편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 씨는 부채 의식을 안고 오랜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전경도 당시 많이 다쳤고, 이에 화나 진압이 더 거세졌던 측면도 있었습니다. 곤봉에 맞아 부서져 땅에 널브러진 안경의 잔상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무겁게 남았습니다. 서슬 퍼런 권력에 맞선 부산 시민에게 존경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