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에 의해 만나게된 우진·심덕
- 둘을 노린 숨죽인 소리에 도망간다
- ‘남녀가 껴안고 바다에 몸을 던져…’
- 사라진 둘은 정사사건 주인공 되어
- ‘사의찬미’ 일만 여장이 팔려나가니
- “이번 작품 최고의 주역들을 위하여!”
- 총독부의 나팔수는 승리를 자축한다
<사진설명: 겉으론 물자와 인력의 원활한 수송이었지만 대륙 침략과 조선인 강제동원 등을 위해 일제는 1905년 9월 11일 부산~시모노세키 첫 부관연락선으로 이키마루호(사진·국제신문 DB)를 취항시켰다. 이어 곤고마루호, 도쿠주마루호, 쇼케이마루호 등을 추가로 투입해 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하기 직전까지 운항했다. 1926년 8월 4일 윤심덕과 김우진이 도쿠주마루호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사건은 당시에도 많은 의문을 낳았다. >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순종이 승하(1926.4.26)하고 그해 6월 순종인산일을 맞아 일어난 6·10만세운동과 관련해 대대적 체포작전을 벌였다. 조선독립 열망이 식지 않자 총독부는 사람들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려 친일 신문에 ‘좋은 계책(이이사쿠·いいさく)’을 주문한다. 일제 앞잡이 기자들은 그 일환으로 조선 최초의 일본 유학파 가수 윤심덕으로 하여금 ‘NO.2249 사의 찬미’ 음반을 내게 하고, 여기에 동경 유학파 극작가 김우진을 끌어들여 음모를 획책한다. 한방 터뜨리려는 D-day는 순종 승하 100일.그날은 다가오고, 민중을 개·돼지 취급하는 친일 기자들은 축음기 판매 사업에 뛰어들어 떼돈을 벌 궁리까지 하는데….(<제2장:그 여자,그 남자> 2.경성. 1926.7.31-사건 발생 4일 전까지 줄거리)
3. 동경. 1926. 8. 1-사건 발생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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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왼쪽)과 윤심덕. ㈜스타앤스타·목포문학관 제공 |
-김우진, 다 쓴 원고를 바라보다가 펜을 들어 편지를 쓴다.-
김우진:‘나의 친구 명희에게. 기뻐해 주시오. 동경으로 건너와 그동안 희곡 한편을 완성하였소. 제목은 ‘산돼지’외다’.
-조명희, 편지 읽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조명희):‘주인공 원봉이는 조선 현대 청년 중의 어떤 성격과 생명력을 추상해 놓은 것이요, 그 성격 중에는 형 ‘조명희’도 일부분 든 것 같소이다. 이 극은 철저한 자연주의 극이외다. 조명희 형! 나는 8월 5일까지 독일어 어학원에서 공부합니다. 5일이 지나면 아마도 독일로 가게 될 것 같아요. 원고료를 준다면 동경 아래의 주소로 보내주시고 회답해 주시오’.
-다시 현실. 편지를 접는 김우진.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우체부가 들어와 ‘전보’를 전한다.-
김우진:(전보를 보며) ‘당장 달려오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소. 윤심덕 배상’ 윤선생이? 나한테? (피식 웃고는) 전보가 주인을 잘못 찾아온 모양이군. (의아하게) 주소를 어떻게 알았지?
-김우진, 전보를 책상 위에 둔다. 원고를 정리해 가방에 넣고 방을 나가려다 다시 들어와 전보를 챙긴다.-
4. 오사카.1926. 8. 3-사건 발생 1일 전
-오카하루 여관(岡春旅館). 윤심덕, 짐을 꾸리고 있다.-
김우진:계십니까? (김우진, 무대에 들어온다)
윤심덕:(깜짝 놀라며) 어머, 우진씨! 여긴 어쩐 일로? 오사카에 와 있었어요?
김우진:아니오. 동경에 있다가 전보를 받고 왔어요. 무슨 일인지 몰라서 올까 말까 망설이다가….
윤심덕:무슨 전보요? (김우진, 전보를 품에서 꺼내 준다)
윤심덕:(받아 읽으며) ‘당장 달려오지 않으면 죽어버리겠소’ 오사카 오카하루 여관… 윤심덕! 아니, 누가 이런 장난을?
김우진:(놀라며) 장난요? 그럼 윤선생이 보내지 않았단 말이요?
윤심덕:네,제가 보낸 게 아니예요. 전 우진 씨가 일본에 와 있는 것도 몰랐는데요.
김우진:안 그래도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가만, 정리해 봅시다. 그러니까 윤선생은 나에게 전보를 보내지 않았고, 난 윤선생의 전보를 받고 지금 여기에 왔고! 그럼, 도대체 누가?! (정색하며) 윤선생, 일본은 왜 왔어요?
윤심덕:레코드 음반 녹음하려구요!
김우진:그럼 일행들은? 기획사 사람들과 함께 왔을 거 아니오?
윤심덕:아뇨, 이번엔 동생이랑 둘이서만 왔어요. 그럴 사정이 있어서! 동생은 제 노래 반주를 해 주고 오늘 오전에 요코하마항에서 떠났어요. 원래 미국 유학을 갈 계획이었거든요.
김우진:이 짐은 뭡니까?
윤심덕:저도 이제 슬슬 떠날 준비를 하려구요. 동경서 좀 놀다 갈까, 아니면 이태리로 바로 갈까 생각 중이었어요. 녹음도 다 끝났으니!
김우진:이태리요? 왜요?
-그때,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 소리. 흠칫, 두 사람 긴장한다.-
김우진:누가 오기로 했어요?
윤심덕:아뇨. 올 사람 없어요. (김우진, 귀 기울이면 조용하다)
김우진:(안심하면서) 그럼, 됐어요. 아무 일 없다니 난 이만 가겠소. 다음에 봅시다.
윤심덕:(잡는다) 우진 씨, 어디로 가세요? 우진 씨가 그런 전보를 받고 여길 오다니, 느낌이 좋지 않아요. 뭔가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는 소리. 숨죽인 발자국 소리.-
김우진:(입에 손을 갖다 대며) 쉬잇!
-찰칵, 총신의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난다.-
윤심덕:(새파랗게) 저쪽으로! 저쪽에 뒷문이 있어요. 하느님! 맙소사! 이 사람들, 날 진짜 죽이려나 봐!
-두 사람, 급하게 방을 빠져나간다. 무대는 그들이 숨죽이며 도망치는 길이 된다.-
윤심덕:나, 난, 원래 오늘 죽는 걸로 되어 있어요.
김우진:죽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오?
윤심덕:사실은 이번에 녹음한 ‘사의 찬미’ 그 레코드 음반, 계약했어요! 거액에! 이 세상에서 사라져 주기로 하는 조건으로! 하지만 그건 그냥 잠시… 최고의 흥행을 위한 전략이라고 했죠. 말하자면 산송장이 되기로 한 거예요. 몇 년 외국 나가 있다가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질 때쯤 들어오면 된다구요. 그래서 난 이태리 유학을 가려고 했어요. (갑자기) 맞아, 주사위! 그 주사위!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나를 죽이려고 했던 거야. 그걸 모르고 오, 하느님! 그런데 우진 씨는 왜? 우진 씨, 미안해요. 나 때문에.
김우진:아니오. 나도 지금 떠나려는 중이었어요.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시대!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해 떠나려는 중이었어요.
윤심덕:어디루요? 아, 난 죽기 싫어! 무서워요. 우진 씨가 가는 세상에 나도 가면 안 되나요?
김우진:안돼요. 내가 가는 곳은 아주 먼 곳이오. 일단 여기를 빠져나갑시다. 어디든 가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김우진, 윤심덕을 데리고 급히 무대를 빠져나간다. 불안한 BGM 깔리며 암전.-
<제3장. 정사 자살 사건>
1.1926. 8. 4-사건 발생일
-부관연락선 객실. 붉고 음산한 조명,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다. 부우~ 뱃고동 소리. (안내 방송) 시모노세키발 부산행 도쿠주마루호가 곧 출발합니다. 김우진의 가방을 든 정체불명의 사내 등장한다. 지갑과 액세서리, 남자용 시계를 가방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꺼내 놓고 사라진다. 잠시 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붉은 사이키 조명 번쩍거린다. 유성기 음악 ‘사의 찬미’, 음산하게 들려온다. (소리) 음반 넘버 2249 ‘사의 찬미’ 최고야. 이이사쿠! 으하하하하….-
2.1926. 8. 5-사건 발생 1일째
-거리 곳곳에 신문이 나뒹군다. (소리) 호외요~! 호외요~! 윤심덕·김우진 정사자살사건이오~! 오가는 사람들, 신문을 주워 든다.-
사람1:현해탄 격랑 중에 청년 남녀 정사하다.
사람2:극작가와 음악가가 한 떨기 꽃이 되어 세상 시비 던져두고 끝없는 물나라로, 남자는 김우진이요 여자는 윤심덕이라.
사람3:부관연락선이 대마도를 지나는 4일 새벽 4시경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 신사 한 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에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였다.
사람4:윤심덕은 지갑에 현금 일백사십 원과 장식품이 있었고, 김우진의 것으로는 현금 이십 원과 시계가 들어 있었는데 조선 사람이 정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더라.
노인:세상 말세야, 말세! 실컷 배운 젊은 사람들이 말야. 나라를 위해 일할 생각은 않고 뭔 짓이야, 도대체! (기가 차다는 듯) 쯧쯧쯧….
3. 부산 중부경찰서 안
김철진:(신문을 들이대며) 아무 것도 모른다니요? 여기 신문에 이렇게 부산 중부경찰서에 유서와 유류품이 있다고 해 찾아왔는데 아무것도 없다니요?
일경:누군데 이렇게 고함을 치고 야단이므니까?
김철진:난 김우진의 동생 김철진이요. 이게 말이 됩니까? 부산항에도 가보니 아무 유류품도 없었습니다. 시체도 없고, 유서도 없고, 배에서 뛰어내리는 거, 부관연락선에 타는 거, 부관연락선 안에서도 두 사람을 본 목격자가 아무도 없고. 심지어 승선 명부에도 이름이 없는데 두 사람이 실제로 부관연락선을 타기나 한 겁니까?
일경:아, 김철진 씨 진정하시므니다. 지금 김철진 씨의 주장은 모두 언론 기사 이야기니 여기서 이러실 것이 아니라 언론사에 질의해 보는 게 좋을 듯 하므니다. 아니면 정정보도를 요청하든지, 우리 경찰서에는 아무것도 없스므니다.
김철진:언론사! 어느 언론사요?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 일본 아사히신문까지 사건 발생일 바로 다음 날부터 눈으로 본 듯이 동시 보도되면서 매일매일 모든 신문사에서 특집으로 써 내려가고 있는데, 어느 신문사로! 누구에게! 어떻게! 알아봐야 합니까? 이건 순전히 언론에서 소설을 쓴 것 아닙니까? 우리 형님이 진짜 죽기나 한 겁니까? 자살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흐흐흐흑….
<에필로그. 그들이 사는 세상>
1. 매일신보 사회부
-우승해, 펼쳐 보던 신문을 접는다. 이남구, 레코드 음반을 손에 들고 빙글빙글 돌려 본다.-
우승해:(음반을 바라보며) 흐흐흐. 아름다운 빛깔이야. 검은 바닷물 색깔이군. 이기자! 지금 쌀 1가마 값이 얼마지?
이남구:5원입니다.
우승해:5원이라… 이기자 월급은?
이남구:60원이죠.
우승해:지금 레코드 한 장 값이 10원이니 쌀로는 2가마 값이고, 자네 월급으로 치면 6장은 사겠구만! 하하하! 이기자, 이번에 ‘사의 찬미’ 음반이 몇 장 팔려 나갔는지 알아? 자그마치 일만 삼천장이 한꺼번에 나갔어.
이남구:이 기세로 팔려 나가면 십 만장도 문제없겠는데요.
우승해:그럼, 십 만장도 시간문제지! 어디 그것뿐인가. 음반이 팔려나간다는 건 경성의 집 한 채 값하는 축음기가 그만큼 팔려 나간다는 뜻이야. 하하하. 우린 이제 돈방석에 앉았어. 어디 그뿐인가. 이름도 역사에 영원히 남을 거구 말이야.
이남구:역사에 남다니요?
우승해:상업적 대중가요의 새로운 길을 열지 않았나!
이남구:영웅이 되었군요!
2. 조명희
조명희:왜 죽었노! 망할 것! 우진이! 세상에서는 너의 죽음과 너의 살아 있을 때의 일에 대하여 제멋대로 지껄이고 제멋대로 판단을 내리는구나. 사실 무근의 내용을 함부로 과장해 내놓는 신문과 잡지의 그 기사란 것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너의 꼭 다문 입, 그윽히 빛나는 검은 눈동자가 내 눈앞에 떠오르는구나. 우진이! 그대의 앞길은 영원히 비었네. 그대 없이 혼자 걸어가야 할 내 발걸음 또한 허전하고 또 허전해 허공에 발을 딛는 것만 같네.
3. 국일관
-우승해와 이남구, 둘 다 술에 취했다.-
우승해:이기자! 김우진의 애인이 일본 아가씨였다면서?
이남구:간호사였죠.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눈병이 났었는데, 그때부터였어요. 그 여자가 백혈병으로 죽을 때까지 사랑했으니 꽤 오래 사귀었죠.
우승해:김우진의 처도 정운남 대감의 따님이라지? 성균관 대제학을 지낸! 애인에다 명문가 부인에다! 흐흐흐… 게다가 윤심덕까지! 여복이 많았네. 목포의 대부호 김우진, 명문가문 김우진, 천재 극작가 김우진, 연극 흥행의 귀재 김우진, 잘 생기기까지 하다니! 가진 게 너무 많았던 게지. 그렇지 않나? 이기자가 질투할 만 해.
이남구:질투요? 제가 왜요?
우승해:허, 왜 그래? 아님 말고… 나는 질투 나는데?! 흐흐흐. 그런데 이기자! 윤심덕이 한테 하나 사달라 했던 넥타이는 왔나?
이남구:웬 걸요. 어디서 오겠어요. 윤심덕의 기념품 하나쯤 있었으면 했지만, 어쩌겠어요?
우승해:그런데 허구 많은 것 중에서 왜 하필 넥타이야? 미워하는 거 같더니, 혹시 얼굴이 파래질 정도로 윤심덕한테 매이고 싶었던 거 아냐?
이남구:(자신의 손으로 목 앞부분을 움켜 쥐며) 이렇게요?! 하하하! 글쎄요. 굳이 정의하자면 이거, 쉬잇, 부장님께만 비밀인데요. 우리는 동지니… 일종의 전리품? 혹은 자랑하고 싶지만 자랑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자의 비밀의 문을 열 수 있는 키 같은 거?! (무심하게) 그냥 제가 좋아하는 물건 정도라고 해 두죠.
우승해:(혼잣말처럼) 꼭 있어야겠군! 넥타이! 윤심덕한테서 받아야 하는! 흐흐흐… 알았어. 내 꼭 기억해 두지.
이남구:(심각하게) 두 사람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요?
우승해:자네 기사 쓴 대로라면 지금쯤 현해탄(대한해협) 그 검푸른 바다 밑에 있거나, 고기 뱃속에 들었거나, 아니면 벌써 물고기가 되어… (배를 쿡쿡 찌르며) 자네 뱃속에 들어갔을 지도 모르겠는데?
이남구:아이구,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우승해:그 쪽에서 알아서 하기로 했으니 알아서 했겠지. 우리야 윤심덕이 이태리로 가든 화성으로 가든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로 한 사람 아닌가. 끝이라구, 끝! 엔드! 윤심덕이 노래하지 않았나. 죽으면 다 그만이라고! 예술가에게 이름이 남았으면 그만이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렇지 않은가. 윤심덕도 그렇게 억울하지만은 않을 걸세.
이남구:그렇죠. (혀 꼬인다) 그렇구 말구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위대한 예술가들을 위해 건빠이 한번 할까요?!
우승해:(목청 높여) 좋지!
이남구:(목청 높여) 위대한 예술가, 윤심덕·김우진을 위하여! 건빠이!
우승해:건빠이! (손을 휘저으며) 아, 아, 잠깐! 나도 한 마디! 우리의 승리를 자축하면서 이들을 빼놓으면 되나. 바로 이이사쿠! 이 모든 전략의 최고 조력자!
이남구:최고 조력자요?
우승해:그렇지, 이번 작품에 있어 최고의 주역들이었지.
이남구:누구?!
우승해:(술잔을 올리며) 자, 따라하게.위대하신!
이남구:(술잔을 올리며) 위대하신!
우승해:개, 돼지를 위하여!
이남구:개, 돼지를 위하여!
-함께 잔을 부딪치며 건빠이! 쨍! 부딪치는 유리잔 소리. 건배하는 우승해, 이남구의 모습 그대로 정지 화면이 된다. 그들의 모습 위로 흐르는 유성기 음악, 윤심덕의 2249 ‘사의 찬미’, BGM.-
김민수 극작가
※ 공동기획:부산시문화원연합회,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지식문화연구소 (주)리멘Li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