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중 혈혈단신 내려와
- 부산서 온갖 고생 끝 새 삶 꾸려
- 1세대 매달 300~400명 눈감아
- 이산상봉 정례화 조속 마련돼야
남북·북미 정상회담 개최 소식에 3년 동안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7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이 정기적으로 만날 기회가 빨리 오기를 고대했다.
| |  |
| 이산가족 1세대인 최중용 옹이 호적 관련 서류를 들어보이고 있다. 그는 호적이 잘못돼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봉기 기자 |
최근 부산 사하구 다대동 아파트에서 만난 최중용(90) 옹은 남북 정상회담에 기대를 걸고 있다. 최 옹은 한국전쟁 중 모친과 여동생들, 누나 내외 그리고 아내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남한으로 혈혈단신 내려왔다. 평안남도 성천군이 고향인 그는 갑작스레 피란길에 오른 탓에 고향에는 들를 수 없었다. 그는 “덕천군(현재 덕천시)에 있는 철도청 검수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미군이 점령한 뒤에 미국에 협조했는데 이대로 통일이 되는 줄 알았다”며 “다시 중공군이 밀고 내려와 미군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떠올렸다. 덕천군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에 도착해 재직증명서를 받아든 최 옹은 진남포(현재 남포특별시)에서 부산을 향하는 배를 탈 수 있었다.
그는 “황해와 남해를 크게 돌아 부산에 도착하니 몸뚱이 말고 손에 쥔 게 없더라고. 미국부대에서 짐도 나르고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다 했지”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가까스로 부산에 자리를 잡은 최 옹은 일찍부터 이산가족으로 등록해 대면 상봉의 기회를 기다렸으나 20회 진행된 상봉 행사에서 한 번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도망쳐 나와서 고향 땅이나 가족 떠올릴 사진 한 장 가진 게 없다”며 아쉬워했다. 최 옹은 부산에 자리 잡은 뒤 새로 가족을 꾸려 2남 1녀를 낳았다. 그는 미군 짐꾼으로 일하다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겪고 화학약품을 파는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해 번 돈으로 조경회사를 차렸다. 올해 구순을 맞는 최 옹은 헤어진 가족을 한 번이라도 만나보는 게 간절한 소원이라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는 25일 최 옹과 같은 이산가족 1세대 중 매달 300∼400명의 어르신이 통일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고 밝혔다. 최 옹은 매달 18일 열리는 재부 평안남도민회 모임에도 1세대 참여자 수는 점점 준다고 말했다.
최 옹은 최근 호적을 고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다. 부산에 도착한 직후 배식을 타는 사이 함께 온 직장동료가 최 옹의 고향을 평남 성천군이 아닌 자기 고향인 평양시로 잘못 적어 넣은 것. 최 옹은 “호적에 고향이 잘못 적혀서 그동안 상봉 기회를 얻지 못한 것 아닌가 싶어서 늦었지만, 호적을 정리하려고 한다”며 “1세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이산가족 상봉 기회가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김봉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