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현 관아 관노인 두칠이 어느날 현감 아침상에 올릴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갈대밭에서 포대기에 싸인 젖먹이를 발견하고. 임진, 정유 왜란 직후라 모두들 왜놈 씨라며 갖다 버리자고 했으나 두칠이는 아들로 삼아 새칠이라는 이름으로 키우게 된다. 그런 새칠이 어릴 때부터 바둑에 소질을 보이자 현감이 첩실의 아들 득이와 동무로 지내게 했고. 우쭐한 새칠이는 어벙한 아버지 두칠이가 부끄러워 외면하기 시작했는데…(상편 줄거리)

- 새 현감이 부임하자 부자는 이별했다
- 두칠은 눈물 속에 한양으로 떠났고
- 새칠은 바둑 대신 바둑돌을 갈았다

- “아부지이!” 매일 목놓아 울던 그는
- 손님에게 자신의 기보를 내어주고
- 아비를 찾아달라 간곡히 부탁했다
- “이놈의 죗값이라 치고 받아 주이소”

새칠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현감이 한양 벼슬을 받았다. 새칠이는 득이를 따라 한양에 가서 바둑으로 이름을 날릴 꿈을 품었다. 그러나 현감은 첩실 주홍이도, 그 아들 득이도 데려가지 않았다. 바둑 재주를 아끼던 새칠이도 마찬가지였다. 뜻밖에 현감이 한양에 데려가기로 한 사람은 두칠이었다. 두칠이는 새칠이를 붙들고 애달파하며 울었다. 하도 울어대니 관주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한양 가서 잘살게 되었는데 웬 눈물바람이냐고, 어차피 친자식도 아닌 새칠이, 모질고 독한 새칠이한테서 이참에 정을 싹 떼라고 했다.

풍광이 빼어난 기장 죽성리 두호항 앞바다. 고산 윤선도는 기장에서 7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이곳 두호마을에서만 4년여를 지냈다. 국제신문DB

두칠이를 달래려다 나온 말이 새칠이 귀에 들어갔다. 모자라고 어벙한 두칠이 자식이라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알고 보니 그 두칠이 자식이 아니란 것이었다.

“왜놈의 씨거나 말거나, 두칠이 자식이 아니라니 얼매나 다행이고. 나는 두칠이처럼 어벙하이 안 살 끼다.”

새칠이는 한양에 가서 잘 지내고 있으면 찾아가겠다고 두칠이를 달랬다. 두칠이는 새칠이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현감을 따라 한양으로 갔다.

새 현감이 부임했다. 새 현감은 주홍이를 기적(妓籍)에서 빼주고 드매에 집을 마련해 살게 했다. 새칠이에게는 내아에 들락거리지 말 것이며, 소동방에 머물러 살면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바둑돌을 갈라는 명이 내려졌다. 내아에서 편하게 살던 새칠이는 당황했다. 누구도 새칠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새칠이는 이를 악물고 소동방으로 갔다. 소동방 아이들도 새칠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새칠이가 바둑돌을 반듯한 모양으로 더 잘 갈 수 있게 조개껍데기 본을 만들어 준 것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일광해수욕장 끝부분에 있는 삼성대. 윤선도가 한양에서 자신을 찾아온 동생과 이별을 하면서 시를 남겼던 곳이다.

“니가 만든 조개 본 땜시 일을 더 마이 하게 됐다 아이가. 그 전에는 한 달에 세 벌을 갈았는데, 인자는 다섯 벌을 갈아야 되는 사정이란 말이다.”

새칠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고,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절망스럽게 했다. 새칠이는 절망 속에서 바둑돌을 갈았다. 아무리 열심히 갈아도 하루에 열 개를 채우기 힘들었다. 새칠이는 남에게 지는 것이 싫었다. 다른 아이가 열 개를 갈면 악을 쓰고 열두 개를 채웠다. 새칠이 마음은 어량을 드나드는 물결처럼 흔들렸다. 흔들리는 가운데 어벙이 아버지 두칠이 모습이 떠올랐다. 새칠이는 아버지 모습을 지우려고 미친 듯이 돌을 갈았다.

현감이 소동방을 지나가다 돌을 갈고 있는 새칠이를 보았다. 이방이 바둑을 잘 두는 아이였고, 전 현감이 거두었던 아이라고 말했지만 현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현감은 바둑을 둘 줄 몰랐다. 공납(貢納) 물품에 바둑돌이 포함되어 있으니 물량에만 관심이 있었다.

새칠이는 열 살이 되었다. 그동안 바둑돌을 갈던 아이들은 손이 커져서 관아의 다른 일거리를 맡아서 떠나고, 새로운 어린 아이들이 투입되었다. 그렇지만 새칠이는 열 살이 되어도 바둑돌 가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몸은 자라 제법 사내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지만 새칠이의 손은 바둑돌을 갈기 시작하던 일곱 살 무렵 딱 그 크기였기 때문이었다. 손톱이 닳아 없어진 새칠이의 이름은 어느 사이 조막손이로 바뀌어져 있었다. 조막손이는 날마다 바둑돌을 갈기만 할 뿐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았다. 누가 말을 붙이거나 건드리기라도 하면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대, 꼭 호랑이 같았다. 조막손이는 손으로 돌을 갈면서 수없이 아버지를 생각했다.

‘불쌍한 아버지. 나를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외면하고 말았어.’

‘몸 성히 잘 계실까. 아버지도 내가 보고 싶을까?’

윤선도가 매일 같이 올라 유배의 설움을 달랬다는 두호마을 황학대.

아버지 생각을 지우려고 조막손이는 머릿속으로 바둑을 두었다. 혼자서 흑과 백의 돌을 수없이 놓고 거두면서 조막손이 머릿속은 점점 바둑판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바둑은 사실 전쟁과 같았다. 흑과 백의 돌이 싸우고 이기는 전쟁판. 조막손이는 머릿속으로 바둑을 두면서 날마다 혼자 내기를 했다.

‘오늘 흑이 이기면 아버지가 돌아온다.’

‘오늘 백이 이기면 아버지가 돌아온다.’

조막손이는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바둑을 두면서 아버지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다. 어차피 아무런 자유도 없이 살아야 하는 관노의 신세라면 어벙하지만 한없이 푸근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만이 낙이 될 것 같았다.

하루는 현감이 조막손이를 불렀다. 돌을 갈다 말고 달려간 조막손이에게 현감은 바둑돌 한 쌍을 내주며 드매 두호마을에 다녀오라고 일렀다. 한양에서 벼슬하다 귀양 온 선비가 있는데, 선비에게 바둑돌을 전해주라는 심부름이었다. 그러면서 현감은 선비가 바둑을 좋아하는 모양이니, 급하게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한양 선비와 바둑을 두고 오라는 말이었다.

조막손이는 오랜만에 세수를 하고 빨아둔 옷으로 갈아입었다. 바둑돌 한 쌍을 싼 보자기를 안고 관아를 나섰다. 읍저를 지나고 봉대산 쪽을 향해 내달은 조막손이는 집앞들을 지나서는 왼쪽으로 운주들이 나타날 즈음에야 걸음을 늦췄다.

나무 아래 앉아 숨을 돌린 조막손이는 외성들을 지나 달밭개로 내려왔다. 갯내를 맡으며 납대기섬을 지나 드매를 향해 걸으면서 어릴 적 동무 득이 생각을 했다. 조막손이는 꼭두방아를 쳐다보며 바둑돌 한 쌍을 가슴에 꼭 껴안았다. 소문에 득이는 글 읽는 일을 그만두고 소금을 굽는다고 했다. 관기의 자식인 득이나 태생도 모르고 관노로 살아가는 자신이나 처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막손이는 득이를 만날 용기가 없었다.

한양에서 귀양 온 선비의 집은 서낭당이 가까운 언덕에 있었다. 바다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마당에 들어서자 깨끗한 차림의 선비가 마루에 앉아 있었다. 귀양을 왔다면서도 모습이 정갈하고 귀티가 났다. 바둑돌을 받아든 한양 선비가 이윽한 눈으로 조막손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짓으로 마루를 가리켰다. 조막손이는 마루에 앉아서 한양 선비와 바둑을 두었다. 조막손이는 조심조심 돌을 놓았다. 한양 선비는 으흠, 소리를 몇 번 냈을 뿐 바둑을 두는 내내 말이 없었다. 한양 선비는 조막손이를 이기지 못했다. 바둑에는 욕심이 없고 현감이 보낸 조막손이를 유심히 살피는 것 같았다.

조막손이는 현감의 말에 따라 며칠에 한 번 두호마을로 갔다. 소동방에서 바둑돌을 가는 것보다 한양 선비 집에 가는 것이 조막손이에게는 훨씬 좋았다. 한양 선비는 날마다 글을 썼다. 무엇을 쓰는지 몰라도 쓰다가 버리는 종이도 많았다. 조막손이는 파지(破紙)를 얻어 바둑판을 그렸다. 그리고 그동안 머릿속으로 혼자 두던 바둑의 수를 그리기 시작했다.

파지로 만든 조막손이의 기보(棋譜)가 차곡차곡 쌓여갈 즈음, 한양 선비의 집에 손님이 왔다. 손님은 한양 선비의 동생이었는데, 돈을 써서 유배에서 풀려나기를 간곡히 권했다. 한양 선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한양 손님은 행장을 꾸렸다. 손님을 배웅하러 가는 한양 선비를 따라 항포를 지나 삼성대까지 갔다. 한양 선비와 손님은 눈물로 작별을 했다.

조막손이는 한양 선비가 두호마을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조용히 한양 손님의 뒤를 따랐다. 한양 손님이 용소고개를 지나 만화리 이내터에 이르렀을 때 조막손이는 모습을 나타냈다. 지금까지 그린 기보를 내놓고 간곡하게 말했다.

“이 기보를 익히시면 웬만한 상대는 다 제낄 수 있을 낍니더. 이놈을 불쌍키 여기시고 아부지를 좀 찾아 주이소예. 돌아오시믄 좋겠지마는 정 어려브믄 소식이라도 좀 알려 주이소. 부탁입니더.”

한양 손님은 조막손이가 내민 기보를 보더니 몹시 놀랐다. 바둑에 관심이 많았던 한양 손님은 조막손이의 기보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되물었다.

“형님한테서 네가 바둑을 잘 둔다는 말은 들었다만 이 정도 고수인 줄은 몰랐다. 네 실력으로 한양에 가면 이름을 떨칠 수 있을 것인데 어찌 내게 주는 것이냐.”

“이놈은 한갓 관노입니다요. 바둑을 잘 둔다 캐도 제 신세가 달라질 리 없지예. 그라고… 이놈이 그 잘난 바둑 배운다꼬 아부지를 모른 척하고, 업수이 여기고 그랬심니더. 이놈의 죗값이라고 치고 받아 주이소.”

한양 손님은 조막손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렇잖아도 서출(庶出)이라 벼슬길이 막혀 있던 참이었다. 조막손이의 기보를 바탕으로 바둑의 고수가 될 수 있다면 서출로서 받는 설움을 어느 정도는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한양에 도착하자마자 수소문해 알아보니 과연 기장현에서 올라온 관노 중에 두칠이가 있었다. 두칠이는 도로와 개천, 교량을 관리하는 한성부(漢城府) 공방(工房)에서 잡일을 하고 있었다. 어벙하고 모자라는 데다 향수병까지 겹친 두칠이는 매일 관노들에게 얻어맞아 몸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관노로 이름이 올라 있는지라 한양 손님도 어찌해 볼 수 없었다. 생각 끝에 한양 손님은 조막손이가 건네준 기보를 외워 바둑을 좋아하는 높은 벼슬아치를 찾아갔다. 벼슬아치와 내기 바둑을 두어 이긴 다음 두칠이를 기장 관아로 이송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일로 한양 손님은 바둑으로 이름이 나게 되었다. 한양 손님과 바둑 한 판을 두려고 고관 대작들은 청지기를 보내 줄을 세울 정도였다. 한양 손님은 조막손이가 준 기보를 하나씩 하나씩 써먹었다. 변방의 관노 아이가 그려준 기보에 그처럼 기막힌 묘수가 있다니, 놀랍기 그지 없었다. 한양 손님은 혹시 기보를 가진 사실이 알려질까 몹시 조심했고, 기보가 있다는 사실조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한편 기보를 한양 손님에게 주어 버린 조막손이는 하루 일이 끝나고 이슥해지면 이을개 어량에 나가 앉아 있었다. 그곳은 자신이 버려진 곳이었고, 또 목숨을 건진 곳이기도 했다. 바돌개로 넘어가는 나무다리에 다리를 걸치고 앉아 저물어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자신을 낳아준 사람이 문득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도 조막손이는 바스락 바스락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찰랑찰랑 어량에 물이 들어왔다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아부지이!……”

조막손이는 어둑해진 수평선을 향해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목이 막히고 숨이 막혔다. 조막손이는 흑흑 소리를 내어 울었다. 한참 울고 나면 속이 시원했다.

조막손이가 날마다 이을개에 나와 울다가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한 여인이 있었다. 나이는 지긋하고 매무새가 단정한 것이, 눈에 잘 띄지 않으려고 검정색 무명 장옷을 둘러쓰기는 했어도 양반댁 마님 행색이었다. 여인은 항상 조막손이보다 이르게 이을개 어량에 나타나 갈대숲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달이 밝으면 조막손이의 모습은 좀 더 또렷하게 보였고, 달이 기울거나 흐린 날에는 조막손이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여인은 조막손이의 체취를 맡아보기라도 하려는 듯이 장옷을 살짝 벌리고 코를 벌름거렸다. 그러다가 조막손이가 돌아간 쪽을 한참 쳐다보다가 여인은 슬며시 갈대밭 속으로 사라졌다. 여인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조명숙 작가

※공동기획:부산시문화원연합회,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지식문화연구소 (주)리멘Li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