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편한 몸에도 35년 신문배달
- 하루에 책 한 권 이상 꼭 읽어
- 성실한 모습에 전국 각지에 팬
- “작은 서원 만드는 게 내 꿈”
“정신이 가난하구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전한 이 말 한마디로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의 스타가 된 80대 노인이 있다. 불편한 오른손, 잘 들리지 않는 귀에도 35년 넘게 감천문화마을에서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오광봉(86) 씨 사연은 2014년 한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 지금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꾸준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오 씨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댓글이 주를 잇고 실제 오 씨를 만난 후기를 전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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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이 불편한 오광봉(86) 씨는 35년 넘게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에서 신문배달을 할 뿐 아니라 책을 한시도 놓지 않아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곽재훈 전문기자 kwakjh@kookje.co.kr |
최근 찾은 오 씨의 13.2㎡(약 4평) 남짓한 집은 감천문화마을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정갈하게 꽂혀 있는 책 3000여 권 앞에서 오 씨는 “논어에는 인간의 삶을 꿰뚫는 지혜가 가득하다. 하루에 한 권은 반드시 읽어서 한 달에 30~45권을 산다”고 설명했다.
책장 앞에는 오 씨 집을 방문한 이들을 찍은 사진은 물론 오 씨 앞으로 온 편지가 나열돼 있었다. 오 씨는 “여러 잡지와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본의 아니게 팬이 생겼다”며 미소 지었다. 책장 한 편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서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추모 시집을 들어 올리며 “노 전 대통령은 5공 때부터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정치인”이라며 지난해 부산 서면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평소 오 씨는 감천문화마을에서 ‘날다람쥐’라 불린다. 35년 넘게 밤 11시에 일어나 새벽 4시까지 300여 집에 국제신문을 포함한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 그가 신문배달을 시작한 건 쓰지 못하게 된 오른손 때문이다.
북한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부산에 내려온 뒤 액세서리 장사와 가내 수공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가죽을 떼어 혁대를 만들다 손을 심하게 다쳤다. 현재 그의 오른손 다섯 손가락은 주먹을 쥔 채 펼 수도 구부릴 수도 없는 상태다. 하지만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웃어보였다. “팔다리가 없는 사람에 비하면 행복하죠. 처음엔 술도 많이 마시고 속상해했는데 신문 배달이랑 인연이 있었나봐.”
지인들도 오 씨의 성품에 혀를 내두른다. 줄곧 함께 일한 김한수 동괴정·감천지국장은 “불편한 몸인데도 스스로 열심히 살고 때가 되면 불우이웃돕기까지 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국내외 관광객이 일부러 오 씨 집을 방문해 감동받는 이유는 그것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 씨의 소원은 두 가지다. 첫째는 헤어진 지 오래된 가족을 만나는 것, 둘째는 감천문화마을에 작은 서원을 만들어 책을 옮기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책 읽고 독후감을 쓰고 토론도 하며 책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 수 있는 독서 캠프를 열고 싶어요.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죠(웃음).”
최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