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녀 기대수명 ‘동고서저’ 격차 심화
- 구·군·동별로도 건강지표 천차만별
- 표준화사망률 부산진구 범전동 최고
- 市, 실태조사 뒤 제도적 지원 나서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칼튼과 렌지라는 동네가 있다. 칼튼 주민의 기대수명은 1998년 기준 54세였고 렌지 주민의 기대수명은 82세였다. 기대수명이 28년이나 차이가 난다. 이렇게 차이 나는 원인은 살아가는 환경이 달라서다. 칼튼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동네를 “걸어 다닐 만한 데가 없어요. 정말 안 좋아요. 아이를 밖에 나가게 할 수 없어요”라고 얘기한다. 칼튼 거주자 한 명의 사례를 보자. 불안정한 가정에서 태어난 지미는 학교에서는 문제아였고 10대 시절에는 청소년 비행으로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그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고 막노동을 했다. 돈이 생기면 술과 담배를 즐기는데 다 썼다.

이는 영국 출신 건강 불평등 이론의 대가인 런던대 마이클 마멋(공중보건과) 교수가 쓴 저서 ‘건강격차’(동녁)에 나오는 내용이다.

	부산 부산진구 범전동 전경. 10만 명당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읍·면·동 표준화사망률’이 1006.4명으로 부산지역 208개 읍·면·동 중 가장 높다. 서정빈 기자

■천차만별 소지역별 건강지표

부산의 연령표준화 사망률(인구 10만 명당·2014년 기준)은 383.8명으로 7대 특별·광역시 중 울산에 이어 2위다. 연령표준화 사망률은 지역별로 편차가 큰 연령분포를 동일하게 조정한 사망률 지표를 말한다. 이런 부산 안에서도 극과 극이 존재한다. 부산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지난해 2월 ‘지역밀착형 공공보건사업 수행을 위한 소지역 건강지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건강과 교통 등 사회환경적인 요소를 보여주는 부산지역 구·군별 표준화사망률(인구 10만 명당·2015년 기준)은 동구가 446.7명으로 가장 높다. 그다음은 사상구(442.8명), 서구(434.5명), 영도구(432.8명), 기장군(392.3명) 순으로 조사됐다. 동구는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인 동래구(324.8명)보다 121.9명이나 많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을 나타내는 구·군별 남자 건강기대수명을 살펴보면 영도구가 67.6세로 가장 짧다. 사상구(67.9세)와 강서구(68.3세), 동구(68.3세), 기장군(68.4세), 중구(69.2세) 순으로 길어진다. 여자 건강기대수명은 사상구가 69.9세로 가장 짧고 사하·북구(70.8세), 강서구(70.9세), 기장군(71세) 등 순이다.

지금까지의 지표들을 살펴보면 많이 언급되는 지역이 거의 반복된다. 중·서·동·영도·사상구 등이다. 그런데 읍·면·동별 표준화사망률을 살펴보면 1위는 부산진구 범전동(1006.4명)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던 부산진구 내에 있다. 상위 20%에 해당하며 표준화사망률이 높은 동을 구별로 보면 범전동을 비롯해 부전1동, 전포1동 등이 포함된 부산진구와 사상구(삼락동, 모라3동, 덕포1동 등)가 각각 6개로 가장 많다. 그다음이 영도구(청학1동, 동삼1동 등 5개), 금정구(서1,2동,두구동 등 4개)등 순이다.

■지수 개발·조례 제정을

그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마멋 교수는 “건강에 중요한 것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라고 말한다. 건강은 국가의 부와 개인의 빈부 격차,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평등 정도에 따라 바뀐다는 얘기다. 즉 건강과 의료 문제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치적 문제다.

부산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수년 전 ‘건강 격차’가 이슈로 부각됐지만 실질적인 정책 지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정기적인 실태조사나 관련 지표조차 없다. 부산시 복합결핍지수(2013년) 등 주로 연구 목적으로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거의 전부다. 부산시 실정에 맞는 지표를 개발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통계구축이 돼야 한다. 이를 통해 어떤 지역에 어떤 요소가 가장 문제가 되고 시급한지 파악해야 그에 적합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이를 정기화해 해당 정책의 효과 여부, 각 지역의 변화 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관련 조례 제정도 필요하다. 서울시는 지역의 복지·건강 격차의 심각성을 해결하기 위해 2013년 ‘서울특별시 복지 및 건강 격차 해소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뒤 2015년 7월부터 시행했다. 건강이 소득 주거 건강 교육 등 사회적 환경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만큼 부산도 이 개념을 각 분야에 집어넣는 조례가 필요하다.

조례 제정을 통해 ▷실태조사 실시 의무화 및 정기화 ▷균형 잡힌 삶의 질 향상 및 지역 간 격차 해소를 위한 분야별 종합계획 수립 ▷각종 계획 수립 및 시행 시 여건이 취약한 지역을 우선 고려 ▷격차 해소 위원회 설치 등을 법제화할 수 있다.

사회복지연대 박민성 사무처장은 “수차례의 문제 제기와 이슈화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실태조사 시스템조차 없다는 점을 볼 때 부산시의 해결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맞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상위 20% 표준화사망률 높은 읍·면·동 (무순)

부전1동, 범전동, 전포1동, 개금1동, 범천1·2동(부산진구), 삼락동, 모라3동, 덕포1동, 괘법동, 학장동, 감전동(사상구), 청학1동, 동삼1·2·3동, 신성동(영도구), 서1·2동, 장전2동, 선두구동(금정구), 초량1동, 수정1동, 범일1·5동(동구), 구포1동, 덕천1·3동, 만덕1동(북구), 신평1동, 장림1동, 다대1동(사하구), 아미동,남부민1·2동(서구), 반여2, 반송1·3동(해운대구), 강동동(강서구), 문현1동(남구), 연산1동(연제구), 영주1동(중구)


조민희 기자 c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