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은 집값 탓 연애조차 주저
- 투기장 된 청약시장에 절망
- 남성의 심적 부담 훨씬 커

- 30대 가구 주택보유 비중
- 부산 47%·경남 50% 그쳐
- 연산동 드림아파트 설계 단계
- 공공임대 늘려 부담 경감을

“지금 사는 집도 변변찮은데 결혼은 엄두가 안 나요.”

국토연구원이 1인 청년가구 주거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벌인 인터뷰에서 한 청년이 털어놓은 말이다. 주거 문제로 고민이 많은 청년은 결혼이나 출산뿐만 아니라 연애도 주저한다. 올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1.03명으로 예상된다. 부부가 아이 1명을 낳는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높은 집값과 투기장으로 변한 청약시장은 청년을 더욱 절망하게 한다.
■ 주거비 부담에 결혼도 포기

국토연구원이 지난 6~7월 부산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1인 청년가구 500명을 상대로 주거 실태를 조사해 내놓은 보고서에는 청년층의 고민이 잘 드러난다. 주거비 부담이 연애와 결혼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을 조사해 0(아무 영향 없음)부터 100(매우 영향을 줌)까지 수치화했더니, 내 집 마련(87.2점) 출산·양육(86.7점) 결혼(83.1점) 연애(65.4점) 등의 순으로 점수가 높게 나왔다. 특정 항목의 점수가 50점이 넘으면 주거비 부담이 그 행위에 영향력을 준다고 봐야 한다.

국토연구원이 설문과 별도로 15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한 결과 한 응답자는 “주거 문제가 불안한 상황에서 연애는 꿈도 못 꾼다”고 털어놨다. 최근 상경한 한 청년은 “내 집 마련에 엄두가 나지 않아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한다는 얘기는 TV에서나 듣는 것으로 알았는데 주변에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어 놀랐다”고 답했다.

한국소비자원이 20·30대 남녀 2000명(미혼·기혼 각 1000명)을 대상으로 결혼문화 인식과 비용을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전체 응답자의 19.8%(복수응답)는 결혼의 필요성에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인 응답자 가운데 남성은 주택 마련·결혼비용 부담(20대 50.8%·30대 56.7%)을 주요 이유로 제시했다.

■ 20·30세대 ‘집 장만’ 절반 안 돼

실제로 결혼 적령기인 2030세대가 집을 보유한 비율은 50%가 안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첫 집 장만을 꿈꾸게 되는 30대 중 주택소유가구 비중은 2015년 기준 42.4%였다. 10명 중 4명만 ‘내 집’을 보유한 셈이다. 구체적으로 전국의 30대 가구(가구주 기준) 327만9000가구 가운데 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139만 가구였다.

17개 시·도별로 보면 서울의 30대 가구는 71만3000가구였지만 주택소유 가구는 23만7000가구에 그쳐 주택 소유가구 비중은 33.3%였다. 부산(47%)과 경남(50.3%) 울산(53.3%)은 상대적으로 서울보다는 나았다. 내 집 마련의 꿈이 실현되기 어려우면 결혼이나 출산을 미루게 돼 다시 저출산으로 이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부산의 경우 청년층을 위한 임대주택인 드림아파트도 부족하다. 부산도시철도 1호선 연산동역 주변 사업장 1곳이 이제 막 설계에 착수한 상태다. 드림아파트는 행복주택·뉴스테이와 함께 임대주택 사업 중 하나다.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된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사업도 제자리걸음이다. 부산의 뉴스테이 대상지 13곳은 대부분 자연녹지로 분류돼 민원도 많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24일까지 주거복지 정책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듣고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0일 주거복지 콘서트에서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미친 전세, 미친 월세 부담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가격 안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집값이 안정돼야 결혼하고 아이도 낳는다. 정부가 과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다양한 공공임대주택을 집중 공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화영 기자 hongda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