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계 “국가적 폭력 입증”
- 31일 정부 진상조사위 출범

박근혜 정부의 실세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27일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이제 칼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향하게 됐다. 재판부가 문화예술단체 지원 배제에 소극적인 문화체육부 공무원에 대한 사직 강요를 “박 전 대통령의 위법한 지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석방된 조윤선-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혐의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7일 오후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시민사회는 “박근혜 정부가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탄압하고 파행으로 몰고 갔다”며 엄중한 처벌을 주문했다. 정부는 블랙리스트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를 오는 31일 출범한다.

이날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 집안과 2대에 걸쳐 연을 맺은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이다.

그는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에서 ‘모르쇠’ 입장을 견지하다 ‘법꾸라지(법률 + 미꾸라지)’라는 지탄을 받았다. 법정에서도 ‘비정상의 정상화’ 논리를 앞세우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은 오랜 공직 경험을 가진 법조인이고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한 비서실장으로서 누구보다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할 임무가 있음에도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를 가장 정점에서 지시했다”고 질타했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모른다고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그러나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돼 수감자 신세는 면했다.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직권남용 혐의도 무죄 판단을 받았다.

이날 1심 결과에 대해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국가적 폭력이 입증됐다는 하나의 계기이며 진상조사를 위한 하나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블랙리스트 자체가 헌법을 명백하게 침해한 것임을 인정한 부분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다만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 여러 가지 증거 불충분으로 일부 유죄가 인정되지 않거나 형량이 감형된 부분은 유감이다. 증거 조사를 통해 더 확실하게 밝혀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는 27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대한 합의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원은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을 비롯해 21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도 장관과 호선을 통해 선정된 민간위원 1명이 함께 맡는다.

송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