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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신발의 도시 부산…그 속에 숨은 스토리 <6> 수제화에 바친 시간들

기술자 되려면 최소 7년 '눈물밥'…1980년대 싸롱화로 황금기

  • 구시영 선임기자
  •  |   입력 : 2017-06-18 19:12:01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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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으로 깎고 칼질하다 부상 일쑤
- 작업장 연탄가스·본드냄새 고통

- 고급수제화 다방 아가씨들 주문
- 부산서 서울 진출 업체까지 생겨
- 명절엔 주문 몰릴 정도로 초호황

- 요즘엔 발이 특이한 사람이 찾고
- 후배 양성이 잘 안될 정도로 위축
- 돈벌이보다 '천직'에 위안 삼아

1970년대 부산에서는 손으로 신발을 일일이 만드는 수제화(手製靴)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조상환(64)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충북 영동이 고향인 그는 1974년 기술을 배우러 부산에 왔다가 수제화 제작의 길을 걸었다.
   
과거 수제화 제작과정은 기술자인 '선생'과 그 밑의 견습생들에 의한 도제식으로 이뤄졌다. 사진은 1974년부터 수제화 일에 종사하고 있는 조상환 씨.
"당시에 주로 남포동과 서면 지역에 제화점들이 몰려 있었죠. 내가 일한 가게는 서면 '세븐틴'이라는 곳이었어요. 그때 제화점들은 신발 파트별로 선생이 여러 명 있었고, 그 선생 밑에 상·중·하 (등급별로) 견습을 두었습니다. 하견습에서 상견습까지 올라가는데 보통 3~4년 걸리고, 선생으로 불린 기술자가 되려면 7년도 빠르다고 했었죠. 20년 되도록 선생이 못 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조상환 씨의 수제 구두.
제화점에 처음 하견습생으로 들어가면 목형 라스트(신발틀)에 갑피를 못으로 고정하는 일을 했다. 선생이 본드로 고정시키면, 못을 전부 뽑아내는 일을 하고 그 외에도 잔심부름을 했다. 중견습은 굽에다 가죽을 싸는 작업을 맡고, 상견습은 신발창을 오려 붙이는 걸 배웠다.

"넓은 판에다 규격을 맞춰서 그라인더로 밀고 가는 거죠. 지금처럼 쭉쭉 찍어내는 게 아니고 일일이 손으로 깎아서 만들었어요. 요즘은 신발 '징'도 사출해서 규격대로 나오지만, 그때는 전부 칼로 깎고 그라인더로 갈아서 만들었죠. 수제화는 칼질을 많이 하는데, 고무판이 무거워서 힘을 가해 자르다 보면 손을 잘 다쳐요. 통굽을 만들 때는 두꺼운 스펀지 같은 거를 장판지 위에 올려놓고 자르는데, 장판지까지 칼이 들어와서 째지기도 했어. 그렇게 다치는 건 예사였죠."

   
여러 형태의 신발틀과 도구 등이 갖춰진 수제(手製) 제화점의 작업실.
게다가 좁은 공간에 열댓 명이 쪼그려 앉아서 작업을 했다. 비좁은 틈새로 지나가기 위해 서로 등을 타고 넘어가는 게 다반사였다. 겨울에는 날씨가 춥다고 작업실 문을 꽉꽉 닫아 놓으면 연탄난로 가스 냄새에 시달렸다. 더운 여름철에 본드로 접착 작업을 할 때는 열을 가하고 선풍기 바람이 없는 방향에서 붙이느라 무척 힘들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일명 '싸롱화'(고급 수제화)라는 게 유행했어요. 신발을 1차로 가봉한 걸 손님이 신어 보고, 원하는 부분을 수정해 납품하는 방식이라. 완전 맞춤으로, 제대로 된 수제화였지. 부산에서 싸롱화로 유명해져 서울까지 진출했던 '브라운 양화점'이란 곳이 있었어요. 그곳에는 '알렉산더'라는 전문 브랜드 부서가 따로 있었죠. 내가 거기에 잠깐 있었지만 나만의 기술로 신발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26살 때 자립해서 나왔지. 그 시절 여화의 가장 큰 특징은 통굽으로, 다방 아가씨들이 주로 주문했어요."

경북 안동이 고향인 박종준(가명·56) 씨는 어릴 때 고향의 양화점에서 심부름을 하며 신발 만드는 일을 처음 접했다.

"그러다가 열 일곱 살 무렵에 가족과 부산으로 이사를 와서 동양고무 하청공장의 잡부로 일했어요. 그때 제품이 기차표 아동화였죠. 공장에서 신발 제품이 찍혀나오는 걸 보고 있자니 수제화 생각이 많이 났어요. 결국엔 내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장을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나와서 여기저기 양화점을 돌아다니며 수제화 기술을 다시 배우게 된 거지요."

   
사람 손으로 일일이 만들어낸 수제 구두 제품.
1980년대는 수제화 일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경제가 성장할 시기여서 명절 때가 되면 주문량을 맞추느라 무척 바빴다. 며칠 쉬지도 못하고 잠 자는 시간도 부족했다. 그때는 수제화 한 켤레를 제작하는데 보통 일주일이 걸렸다.

"과거 수제화 기술자들은 양화점을 옮겨다녀도 금방 소문이 나고, 한 다리 건너면 서로 아는 사이죠. 내가 멋대로 디자인하고 다른 양화점에 가면, 뒤에 후임으로 온 사람으로부터 뒷말이 나오기까 조심스러웠죠. 칭찬은 소문이 늦는데 나쁜 얘기는 빨리 퍼지잖아요."

그는 부산에서 양화점을 운영한 지 24년 됐는데 주위의 양화점들이 많이 없어졌다며 안타까워 했다. 수제화를 하러 오는 사람이 적고 수입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박 씨는 그 사이 수제화 가게를 두 차례 접고 다른 분야 일도 했지만, 결국 수제화로 돌아왔다. 요즘 수제화를 찾는 사람들은 발이 좀 특이하거나 젊을 때부터 맞춰 신은 경우, 그리고 양쪽 발 사이즈가 다른 사례가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수제화 제작 과정에 쓰이는 공구.
세월이 흐르면서 수제화는 대기업의 브랜드 신발과 인터넷 구매 추세에 점차 밀려났다. IMF 외환위기 전보다 수제화 생산량이 15%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수제화 제조기술을 배우려는 이들이 거의 없어 후배 양성이 잘 안 될 정도로 열악하다. 수제화에는 각 전문파트가 있는데,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대체인력 구하기가 힘들다. 마치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바퀴 하나가 빠지는 거와 같다고 조상환 씨는 설명했다.

"그동안 안 해본 신발 디자인이 없어요. 내가 디자인한 대로 신발이 나오고, 간혹 학생들이 디자인 스케치를 해온 걸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죠. 처음엔 그냥 먹고 살려고 수제화 일을 했지만, 이젠 돈벌이보다 내 천직으로 생각해요. 수제화를 만든다는 자부심이죠."

구술 채록=김정연

글 구성=구시영 선임기자

기획: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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