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춘 열사 추모벽화 넝쿨 덮여
- 동아대 내 항쟁기념비도 잊혀져
- 황보 열사 기록은 소식지가 전부
- 부산대 부마항쟁기념비도 오류
- 경희대 1989년 그려진 벽화 복원
- 창원 민주화운동 유적 13곳 발굴
- 안내판 등 정비로 탐방코스 개발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6월민주항쟁 30돌 기념식에서 1987년 5월 분신한 황보영국 열사와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태춘 열사의 유족을 위로했다. 박종철·이한열 열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던 두 열사의 유족은 서러운 듯 문 대통령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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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쟁이 넝쿨에 가려진 동아대 6월민주항쟁도(위)와 1988년 당시 6월항쟁도의 원래 모습. 이준영 기자·동아대 민주동문회 제공 |
취재진은 동아대 무역학과 81학번인 이태춘 열사와 신발공장 노동자였던 황보 열사를 기념하는 공간과 상징물·기록을 찾기 위해 한달 넘게 발품을 팔았다.
황보 열사의 경우 1987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와 부산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가 만든 소식지가 기록의 전부였다. 황보 열사의 묘는 부산이 아니라 경기도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에 있었다. 이 열사의 넋을 기리는 벽화는 관리가 거의 안돼 색이 바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치열하고 때론 위험했던 부산 민주화운동의 흔적이 시나브로 잊혀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상징물을 복원하거나 새로 만들어 '민주주의 역사'를 언제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열악한 민주화운동 기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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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 부마민주항쟁기념비. 이준영 기자 |
동아대 교수회관 벽면의 '6월 항쟁도'는 1988년 제작됐다. 학내 그림패인 '열림그림마당'이 이태춘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가로 30m x 세로 3m로 만든 벽화다. 6월 민주항쟁 기념 벽화를 그려 보존한 것은 동아대가 전국 최초였다.
현재 6월항쟁도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정도로 훼손된 상태다. 벽화 위에서부터 내려온 담쟁이 넝쿨도 벽화를 거의 뒤덮었다. 2007년에는 당시 총학생회가 6월항쟁도를 철거하겠다고 나서 시민단체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최근 동아대 민주동문회는 "6월 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첫 민중미술인 항쟁도를 복원하고 안내판도 설치해야 한다"고 대학 측에 요구했다. 앞서 ㈔민족미술인협회도 2007년 '6월항쟁도 작품소견서'를 통해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시각매체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벽화운동의 정신에 맞는 대표적인 예"라면서 "작품의 가치를 널리 공유하고 그 보존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6월항쟁 20주년 기념사업회'가 2007년 동아대 공과대학 뒤편에 세운 '민주항쟁 기념비' 역시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이 열사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은 장소인 부산 동구 좌천동 고가도로나 6월항쟁의 작전본부였던 부산 중구 가톨릭센터에서도 기념비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유신 독재를 무너뜨린 부마민주항쟁 기념 공간 역시 부산대에만 있다. 1989년 5월 16일 부산대 중앙도서관 앞에는 횃불 모형의 10·16부마민중항쟁탑이 만들어졌다. 부마항쟁 20주년인 1999년 10월 16일엔 옛 도서관(현재 건설관 앞) 자리에 부마항쟁 발원지 표지석이 세워졌다. 부마항쟁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정광민(59) 씨는 "부마항쟁의 시위가 시작된 곳은 발원지 표지석이 있는 옛 도서관이 아니라 상대 앞이다. 기초적인 고증도 잘못됐다"며 "부마항쟁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갖고도 남의 일처럼 대하는 부산의 태도에 실망만 따를 뿐"이라고 말했다.
■민주화 숨결 되살리는 창원
동아대와 달리 경희대는 1989년 '벽그림제작공동위원회'가 문리대학 벽면에 제작한 벽화(가로 11mX 세로 17m)를 지난 9일 복원했다. 동문과 재학생이 주도하고 경희대도 힘을 보탰다. 경희대 민주동문회 강이화 총무부장은 "민주화운동 당시 여러 대학에서 6월항쟁 벽화를 제작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훼손된 상태"라며 "올해는 더욱 의미 깊은 해인 만큼 벽화를 복원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전남대 '벽그림추진위원회'도 1990년 제작된 광주민중항쟁도(가로 10mX 세로 16m)를 오는 9월까지 복원한다.
창원(옛 마산)은 민주화운동 유적 보존에 적극적이다. 창원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의거와 부마항쟁의 도시다. 창원시는 지난달 민주화운동 상징물 전수조사를 통해 13곳의 유적지를 발굴했다. 3·15의거를 기념하는 유적은 9개였다. 김주열 열사 흉상은 물론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경찰이 쏜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무학초등학교 담벼락도 기념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창원은 올해 유적지 안내판 정비를 비롯해 13곳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탐방코스 개발도 계획 중이다. 창원시 신병권 사회복지과장은 "민주화 유적지 탐방코스 사업비는 추가경정 예산안에 반영해 본격적인 민주성지화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대 김희재(사회학과) 교수는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공간과 상징물들이 곧 살아있는 교육"이라며 "지역 곳곳에 민주화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콘텐츠들을 만들어 민주시민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