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독재 굴복시킨 부산발 혁명은 '촛불'의 씨앗
- 시민정신 계승…노동·교육 등 생활속 적폐 청산해야
6월은 민주주의다. 30년 전 부산은 6월항쟁의 본거지였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전두환 군사정권 타도"와 "민주헌법 쟁취"를 외치던 수많은 청춘의 피 위에 싹텄다. 그래서 '박종철'과 '민주주의'는 부산과 동의어다.
1987년은 열사의 해였다. 용접공 황보영국(당시 27세)은 5월 17일 부산 서면에서 제 몸을 불살랐다. 전신 화상을 입고 중태에 빠진 그의 마지막 절규는 "독재 타도!"였다. 청년 이태춘(당시 27세)은 6월 18일 30만 명이 운집한 시위행렬에서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부산 동구 좌천동 고가도로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당시 22세) 열사도 부산 서구 아미동 출신이다.
부산은 6월을 가장 먼저 '조직'했다. 전두환 정권의 호헌 조치에 반발한 '민주헌법쟁취 범국민운동부산본부'(부산국본)는 그해 5월 20일 발족됐다. 서울에서 5월 27일 출범한 '범국민운동본부'보다 이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부산국본을 이끈 상임집행위원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3명의 상임 집행위원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부산의 6월은 두 명의 대통령을 낳았다.
마침내 6월 29일 전두환 정권은 항복선언을 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내용으로 한 '제6공화국 헌법'이 탄생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가 비로소 헌법 제1조 1항과 2항에 담겼다.
2017년 6월. 이제 군부독재의 장기집권을 청산하자는 시대는 지났다. 그 대신 노동 복지 병역 환경 성(性) 인권을 비롯한 전 영역에서 갈등이 켜켜이 쌓였다. 잠시 방심한 사이 대한민국을 농단하려는 세력도 준동했다. '촛불혁명'을 통해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국제신문은 6월항쟁 30년을 맞아 '일상의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모두가 숨 쉬듯 누릴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서 작은 돌 하나씩 쌓아가자는 것이다. 당장 부산에는 아직 민주화운동 지원조례가 없다. 민주화운동 상징물도 너무 적다. 공교육에서는 민주시민의 삶을 영위할 교육이 부족하다. 부마민주항쟁 재단 설립과 '광장 민주주의'도 아직 걸음마 단계다. 부산대 김희재(사회학과) 교수는 "민주주의는 언제나 진행형이다. 민주주의를 확산할 제도와 수단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화영 이준영 기자 hongda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