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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신발의 도시 부산…그 속에 숨은 스토리 <1> 그 시절 작업장 풍경

"고무 가루·냄새에 시달렸지만,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

  • 구시영 선임기자
  •  |   입력 : 2017-05-14 18:51:35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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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신발의 도시다. 예나 지금이나 신발과 관련이 깊다. 신발이 부산을 먹여 살렸고, 국제·삼화·태화·동양·진양고무 등의 부산 신발 메이커들은 1960~80년대 우리나라 경제와 수출을 이끌었다. 그 바탕에는 밤낮으로 일한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자긍심이 있었다. 그 속에 담긴 스토리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잊혀졌다.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는 그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본지에 요약 연재한다. 다음달 '신발'을 주제로 열리는 제5회 부산스토리텔링축제의 전시회와 이야기 한마당, 구술 채록집 등을 통해서도 공개될 예정이다.

- 1960년대 인기 직장 신발공장
- '돈내기'로 일한만큼 돈 벌어
- 쉬는 날도 없이 일에만 매달려

- 전력사정 나빠 저녁땐 전기 끊겨
- 잠시 쉬다 늦은밤 작업 이어가

- 롤러 기계실은 12시간 교대 근무
- 예기치 않은 사고, 보상 못 받아

- 구내식당 없어 도시락 들고 출근
- 일부 직원 가족 경비실로 배달
- 점심 되면 작업장 막내가 가져와

1960년대 부산의 신발공장은 인기가 높은 직종이었다. 일자리가 많고 큰 업체여서 구직자들이 대거 몰렸다. 그때 신발공장에서는 일명 '돈내기'로, 자신이 작업한 만큼 돈을 받았다. 다섯 켤레를 한 단위로 수량을 헤아리기도 했다.
   
부산 신발산업은 1960~80년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사진은 당시 삼화고무 공장에서 여성용 고무신을 만들고 있는 직원들. 부산박물관 제공·국제신문DB
#쉬는 시간도 아까워

"돈내기로 계산하니, 점심시간도 아까워 일에 매달렸고 쉬는 시간도 별로 없었어. 돈 더 받으려면 한 켤레라도 더 해야 하니까. 각 자 작업대 옆에 만든 걸 쌓아두면 검사관들이 돌아다니며 개수를 하나씩 세고 불량이 있는지 없는지 검사했어. 당시 고무신은 문수 단위였는데 17, 18사이즈가 가장 표준이었지. 16은 조금 작은 편에 속하고 20은 발이 좀 큰 사람들이 신었어."

18세 때부터 동양고무공업에 들어가 일했던 김영식(74) 씨의 회상이다. 당시 동양고무는 초량동 복개천의 육거리 쪽에 있었다. 신발공장에서 가장 '대우'가 좋았던 부서는 고무 재료를 배합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가루가 날리고 냄새도 고약해 작업환경은 좋지 않았다.

"고무 재료를 롤러에 집어 넣고 열을 가하면 스팀이 나와. 고무를 녹이면서 섞는 거지. 뜨거운 김 때문에 마스크를 썼다가도 갑갑해서 벗고 일했어. 뜨거운 열로 진득해진 고무를 얇게 펴고 나면, 재단부에서 고무를 '탁' 하니 잘라. 나중에는 그걸 기계로 했지만, 그때는 일일이 가위로 잘라냈어. 그러면 고무가 판이 되어서 나오지. 그 고무를 신발틀에 감아서 풀칠을 했어."

신발을 찌는 곳은 '가마부', 완성품을 비닐에 넣고 포장하는 부서는 '정공부'라 불렸다. 이들 부서는 주야 교대로 24시간 가동됐다.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어떻게든 취직할려고 했던 곳이라, 일밖에 몰랐고 쉬는 날도 거의 없었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그때는 전부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절이라. 공장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지."

동양고무는 고무신과 꽃신 외에도 벙어리 털신, 발목까지 올라오는 우화, 운동화 등을 만들었다. 동양고무는 초량동 공장에서 당감동으로 이전할 때 새로운 기계를 많이 들였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투자였다는 것이다.

#전기 부족에 밤 늦게 가동

   
과거 부산의 5대 신발메이커로 꼽혔던 진양고무(위)와 동양고무 공장. 1953년 설립됐던 동양고무는 현재 르카프 등을 생산하는 신발업체 화승의 전신이다. 국제신문DB
이석채(80) 씨는 여러 신발공장에서 기계 롤러를 돌리는 기술자로 근무했다. 함경남도가 고향으로, 1·4후퇴 때 피난 내려와서 미군부대의 '하우스보이' 등을 전전하다 20대 초반 태화고무 공장에 들어갔다. 기계실의 조수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 기술자가 되었다.

그가 기억하는 고무공장도 별 차이가 없다. 뽀얀 고무가루가 날리고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어느 땐 밀가루 공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전기가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던 시절이라 전기사용량이 많은 저녁시간에 잠시 쉬었다가 늦은 밤에 재가동을 했다.

"(입사하기 전) 친구 녀석하고 같이 저녁에 신발공장으로 한 번 가봤어. 그런데 직원들이 (일하지 않고) 거의 다 엎드려 자고 있더라고. 그땐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관계로, 전기사용량이 적은 밤 11시 무렵 공장에 전기를 넣어줬어. 공장 사람들이 변전소에 찾아가서 담배 같은 거를 주면, 밤 10시 반 정도에나 전기를 공급해주고 그랬지. 전기가 들어오니까 공장 직원들이 일제히 일을 하더라고."

그가 근무했던 롤러 기계실에서는 12시간 교대 근무를 했는데, 예기치 않은 사고도 종종 발생했다.

"(작업 도중) 장갑을 낀 손이 롤러 기어에 물려 들어가거나 고무에 붙어서 (손이) 싸여 들어가는 거였어. 그러면 손가락이나 팔을 잘라야 했어. 결국 자기가 조심 안하면 자기만 손해였지. 요새처럼 보상 같은 게 없던 시절이야. 회사 퇴직금도 (본인이) 똑똑하면 받고, 그렇지 않으면 못 받는기라. 나중에 세월이 한참 흘러서 노조 생기고 질서가 잡히니까 보상이라는 게 생겼지."

그 시절에는 돈을 더 주는 곳으로 자리를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씨도 태화고무에서 동양고무, 삼화고무 등으로 옮겨다녔다.

변정순(80) 씨는 젊은 시절 가야동 태화고무 공장에서 일했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작업복과 근무 규율이 아주 엄했지.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파란색 상의에 파란 모자를 꼭 착용하고, 또 회색 고무신을 신고 일해야 했어. 일하는 도중에 몰래 술을 먹거나 건들건들하는 남자 직원들은 매를 맞고 쫓겨나고 그랬지. 아침에 출근해 각자 자리에 앉아 있으면, 8시에 부서별로 작업시작을 알리는 호각을 불어. 직원들이 작업하는 시간에는 스피커를 통해 나훈아, 남진, 이미자 등의 노래가 흘러나왔지."

그는 입사 면접을 봤는데, 그날이 11월 15일이라고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남녀 지원자들이 같이 앉아서 면접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갑자기 민방위훈련(매달 15일)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는 것이다.

그는 신발 만드는 일에서 손을 놓은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언제 어디서 자기를 또 부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당시 작업용 쪽가위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태화고무 신발공장이 있었던 이곳 동네가 예전에는 하숙집과 가게가 많아서 사람들로 크게 북적였지. 지금은 그때 사람들이 거의 다 돌아가시고, 재개발지역이라 주민들도 거의 다 떠났어. 이제 나도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어."

#경비실에 쌓인 도시락

당시 신발공장에는 구내식당이 없어서 직원 대부분이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왔다.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점심시간 전에 집사람이나 가족들이 도시락을 가지고 와서 공장 정문 경비실에 맡겼다. 각 도시락에는 '부서' 및 직원 이름이 적힌 종이가 붙었다. 공장 내 신참과 막내 직원들은 고무신 담는 작업을 하다가 오전 11시 30분께가 되면 경비실로 내려와서 쌓여있는 도시락들을 안고 각 부서에 배달해줬다.

종일 일하고 저녁 퇴근 무렵이 되면 배가 고팠다. 허기를 참지 못한 직원들은 초량시장 등으로 달려가서 찐빵을 사 먹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도 찐빵을 입에 문 사람들로 가득찼다. 그래서 찐빵 파는 사람이 돈을 제일 많이 번다는 얘기가 회자됐다.

구술 채록=김정연(빅토리아 장)

글·구성=구시영 선임기자

기획: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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