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무 살 때 당시 사법시험 패스
- 평검사 시절 법무부 차출돼
- 박정희의 유신헌법 초안 작성
- 정치검찰·공안통 악명 높아

- 노태우 정권 때 법무장관 올라
- 부산 초원복집서 부정선거 모의

- 정수장학회와의 인연 등으로
- 박 대통령에게서 두터운 신임

22일 오후 2시10분께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 사무실. 법무부 호송차에서 내린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긴장된 표정에 수척한 모습이었다. 지난 21일 새벽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구속된 그는 공직생활 50년간 '왕(王)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린 권력 실세였다.

	1989년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김기춘(오른쪽) 당시 검찰총장. 국제신문DB

이날 김 전 실장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때 입은 정장을 그대로 입고 나왔다. 남색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왼쪽 가슴에는 서울구치소 수용자 번호가 적힌 배지가 달려 있었다. 수갑을 찬 손목은 하늘색 수건으로 가렸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화무십일홍'을 떠올리게 했다.

경남 거제 출신인 김 전 실장은 1939년생으로, 경남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만 20세인 서울대 3학년 때 고등고시 사법과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대검 특수1과장과 서울지검 공안부장을 거쳐 법무·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과거 서울지검 평검사 시절 법무부로 차출돼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도 참여했다.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을 조사·신문하기도 했다. 옛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파견 근무 및 청와대 법무비서관 경력도 있다. 그의 경력에는 항상 '공안통'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는 노태우 정권 시절 검찰총장을 지내고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다. 15∼17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내며 정치권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옛 한나라당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의 특보단장, 여의도연구소장, 국회 법사위원장을 역임했다.

정치권에서 잊혀가던 그는 2013년 8월 화려하게 부활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74세인 그를 비서실장에 임명하면서다. 김 전 실장과 박 대통령의 인연은 각별하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정수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졸업생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지냈다. 이런 이력과 충성심 덕분에 박 대통령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는 후문이다. 본인은 극구 부인하지만 청와대에서 나온 이후에도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국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의 이름을 두고 음모론이나 공작정치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초원복집 사건'의 영향이다. 당시 법무장관직을 마치고 두 달가량 지난 상태였던 그는 부산의 정관계 인사와 기관장들을 불러 모아 '우리가 남이가'라며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부정선거를 모의했다.

영원할 것 같던 그의 권세는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추락했다. 김 전 실장은 지난달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에 일관되게 '모르쇠' 입장을 견지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김 전 실장의 소개로 최 씨를 알게 됐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반면 김 전 실장은 최 씨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발뺌하다가 야당 의원들로부터 '법꾸라지'(법률 + 미꾸라지)라는 지탄을 받았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임명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전 실장 수사를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분의 논리가 보통이 아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박 특검도 예전 김 전 실장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칼날을 벼르던 특검팀은 '좌파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할 의도로 만든 '블랙리스트'의 작성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지난 18일 김 전 실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1일 영장을 발부했다. 언제나 영원할 것 같았던 '정치 검찰'의 권세가 법망에 갇힌 것이다.

◇ 김기춘·조윤선 특검출석서 구속까지

# 1월 17일

오전 9시 15분-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박영수 특검팀 사무실 출석

오전 9시 45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 출석

# 18일

새벽 1시께- 김 전 실장, 특검 조사 마치고 귀가

오전 6시께- 조 장관, 특검 조사 마치고 귀가

오후 7~8시(추정)- 특검, 김 전 실장 · 조 장관 사전 구속영장 청구

# 20일

오전 9시 10분- 조 장관, 구속 전 피의자심문 위해 특검 출석

오전 9시 25분- 김 전 실장, 구속 전 피의자심문 위해 특검 출석

오전 10시 30분~오후 4시 50분- 서울중앙지법서 피의자심문 진행 뒤 구치소로 이동

# 21일

새벽 3시 48분- 김 전 실장·조 장관 구속영장 발부, 조 장관 서울구치소 수감 뒤 사의 표명

오후 2시 28분- 조 장관 구속 뒤 첫 특검 소환 조사. 김 전실장은 '건강상 이유' 불출석 사유서 내고 나오지 않음

오후 6시 10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조 장관 사표 수리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