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만감리서 서기관 민건호에게
- 서구인들은 양주·양담배 선물
- 일본인들은 과자와 감귤 보내
임진왜란의 생생한 진중기록으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있다면 개항 이후 부산항의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로는 민건호의 '해은일록(海隱日錄)'을 들먹일 만하다. 그는 신사유람단 수행원으로 일본을 다녀온 개화인물로서 1883년부터 1894년까지 부산항감리서 서기관, 다대첨사 등을 거치며 부산항이 조선의 관문으로 발돋움하는 과정과 생활상을 하루도 빠짐없이 스케치해 놓았다. 그의 일기 가운데 7년이나 고향을 가지 못하고 객지생활을 하면서 섣달 그믐날 임지에서 쓴 그의 시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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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부산 중구 영주1동 봉래초등학교에 자리했던 부산항감리서 전경. 1890년 독립된 관서가 됐다. |
겨우 하룻밤을 지내면 또 일 년이 가는데
7년을 지내고도 여태 고향 못 가는 사람이라네
집집마다 수세(守歲)하니 어촌이 환하게 밝고
온 세계 나라들과 통상하니 바다 건너 이웃이네
민건호의 고향은 전남 해남이었다. 당시는 육로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돛단배로 영암까지 가는 데만 최소 일주일이 걸렸다. 어쩌다 폭풍이라도 만나거나 바람이 아예 없는 날에는 포구에서 대기를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면 오가는 데만 자그마치 20여 일이 걸렸으니 공직자로서 장기간 자리를 비울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기를 수년, 어디 공직팔자가 좋다고만 할 수 없을 게다. 그렇지만 감리서가 개항장에서 외교와 통상업무 등을 관장하는 중앙행정관서인지라 수시로 부산해관을 드나들며 부산항의 동정을 살피고 내외국인에 대한 관심사를 해결해야 하다 보니 모처럼 설날을 맞아 그에게 다양한 선물이 건네졌다. 주로 서구인들은 연하장과 함께 양주 양담배 만년필 설탕 등을, 일본인들은 과자와 감귤을 보냈는데 요즘 같으면 김영란법에 걸릴 만도 해 보였다.
반면 주변 지인들로부터 온 선물은 대부분이 각련 담배인걸 보면 얼마나 흡연이 만연하고 있었는지 당시 생활사를 은근히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쇠고기와 마른 수산물도 등장하는데 그도 지인들에게 쇠고기 정육을 사서 선물을 보내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다.
설날에 민건호는 동료들과 이웃에서 보내온 떡국을 먹으며 새해 아침을 맞고는 점심과 저녁은 지인들과 함께 '취하게 마시고 배불리 먹으면서 회포를 풀었다'고 했다. 눈길이 가는 대목은 설 연휴가 짧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 섞인 기록이었다.
"1885년 설을 앞두고 일본 부영사가 해관에 와서 상인들이 원하므로 새해 설연휴를 2일로 줄이자고 의논하니 영국인 해관장이 승낙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직원들은 지난해에는 4일 동안 세관이 문을 닫았는데 이제 와서 2일로 하자고 하니 모두 싫어했다." 부산항 물동량이 늘어나자 일본상인들의 요청으로 이틀이 짧아진 것에 대한 직원들의 원망이 컸다는 것이다. 당시 부산항에는 일본 증기선 천세환, 돈하환 등이 부정기적으로 취항하고 있었다. 일본상인들은 나가사키에서 면포 비단 염료 철제류 등을 구입해 와서 동래상인에게 팔고 나가면서 쌀 콩 우피 해초 등을 가져나갔다. 이미 양력 새해를 맞은 일본인들로서는 조선 설날의 깊은 의미보다 일상의 업무에 더 관심을 두었을지 모른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