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천리 살던 장상원 왜관 넘어가

- 몰래 장사한 후 들켜 즉결효수형

- 각종 범죄도 발생 외교문제 비화

도둑이 담을 넘으면 월담, 병사가 무단으로 병영을 뛰쳐나오면 탈영이다. 주어진 경계를 뛰어넘으며 불법행위를 하게 되면 대개 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 부산의 역사 속에도 월담과 관련해 아주 흥미로운 집단거류지가 한 곳 있었다. 지금의 용두산공원 주변 약 11만 평에 자리했던 초량왜관이 그곳이었다. 무려 200년에 가까이 400, 500명의 대마도에서 건너온 사내들이 2m 높이의 돌담을 친 격리된 공간에서 조선과의 교역과 외교교섭을 위해 색다른 삶을 살아야만 했다.

	개항 직전 초량왜관을 재현한 기록화. 초량왜관은 동서남북에 금표를 설정해 통행증 없이 접근하기 어려운 격리된 공간이었다. 김충진 화백 제공

이들도 사람인지라 담 너머 세계가 그리웠지 않았겠는가. 가끔 이런 저런 이유를 달고 담을 뛰어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행위를 난출(闌出)이라 불렀다. 반대로 조선 사람이 무단으로 들어가면 난입(闌入)이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 늘 통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인들의 난출 이유는 아침시장이 빨리 문을 닫아 우선 불편했고, 공작미 감소, 왜관수리, 숯·땔감 부족 등에 대한 불만을 시정해 달라는 요구사항이 대부분이었다.

초량왜관 말기인 1871년 8월 3일 자 승정원일기 상의 난출사건은 특이했다. 전달 7월 22일 밤중에 수문근무자들이 왜관 담을 넘는 왜인 한 사람을 잡고 심문을 해보니 그는 부산면 좌천리에 사는 장상원이란 사람이었다. "제가 우매한 소치로 금법의 엄중함을 생각하지 못하고 몰래 장사를 해 보려고 백미 10석(石), 녹두 5석, 우족 7석을 작은 배에 싣고 밤에 슬쩍 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올 땐 혹시 종적이 탄로날까봐 왜인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장상원은 결국 오늘날의 한탕주의식 밀수를 한 셈이다. 당시 이러한 밀수행위를 잠상(潛商)이라 불렀다. 가뜩이나 조정에서는 이런 밀수가 근절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아왔는데 장상원은 한술 더 떠 변장해 난출까지 했으니 그 죄질이 흉악해 엄벌에 처해졌다.

그날 오후 장상원은 왜관 건너편 언덕바지에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즉결효수형에 처해졌다. 수문근무자에 대해서는 공로표창을 주기는커녕 변방의 파수꾼으로서 난입자를 검거하지 못한 죄를 물어 곤장형에 처해졌다. 부산첨사 김철균과 동래부사 정현덕에 대해서도 징계조치가 내려졌다. 특히 수시로 왜관을 드나드는 역관인 훈도 안동준과 별차 현석운에 대해서도 무역질서의 문란에 대한 책임을 물어 좌수영으로 끌려가 곤장을 맞았다. 조정에서는 그와 공모한 일본인을 곧바로 색출, 포박하여 대마도로 보내 엄벌하라고 왜관의 우두머리인 관수에게 강하게 책망했다.

이처럼 잠상은 양국의 재정수입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엄벌주의로 다스렸지만 동일한 범죄사건을 두고서도 보는 시각에 따라 조선과 일본은 형벌수위가 달라지기도 했다. 심지어 왜관의 무단 난출입은 매매춘이나 왜채(倭債·밀무역 자금) 등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때로는 양민족 간 물리적 충돌이나 살인사건까지 발생,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기 때문에 조선으로서는 금령(禁令)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