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7년 영국군함이 그린 항박도
- 보이는 그대로 '블랙 락스' 표기
- 日은 우리말 '오륙도' 함께 사용

부산항을 얘기하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상징물이 오륙도(五六島)다. 오륙도는 부산항 동녘 입구에 위치해 부산항 항로로 드나드는 모든 배들과 마주친다. 이처럼 365일 오륙도는 부산항의 파수꾼 역할을 하다 보니 파란만장한 우리 역사를 품속에 간직한 애환의 섬이기도 하다. 때론 부산항을 찾는 길손들에게 유명 지형지물이 되어 중요한 길잡이 역할도 한다.

부산항 항로 입구에 위치한 오륙도. 이곳의 일출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조월제 씨 제공

오륙도라는 명칭이 우리 곁으로 다가선 것은 지금부터 270여 년 전인 1740년(영조 16년) 동래부사 박사창의 동래부지(東萊府誌)에서다. 이 부지의 산천조에 '오륙도는 절영도 동쪽에 있다. 섬 봉우리가 기고하여 바다 위에 나란히 섰는데,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여서 그렇게 명명했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해운대 쪽에서 보면 섬이 여섯이요, 영도 쪽에서 보면 다섯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섬의 숫자가 다르게 보인다는 오륙도 이름은 알고 보면 하나의 스토리가 담긴 시(詩)다. 이러한 오륙도가 서구사회에는 어떤 모습으로 알려졌을까.

오륙도가 서구사회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1797년 10월 용당포에 브라우톤 함장이 이끄는 영국군함 프로비뎐스호가 입항하여 조선수군 몰래 부산항 최초의 항박도를 그리면서부터였다. 여기서 오륙도는 그들의 눈에 나타난 모습 그대로 '검은 바위'라는 뜻으로 '블랙 락스(Black Rocks)'였다. 단도직입적인 이러한 명칭은 1859년 영국의 워드 함장이 악티온호를 몰고 부산항에 와서 새로운 항박도를 그릴 때도 '블랙 락스'로 그대로 표기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선은 해금정책 하에 변방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영국함선은 이양선이자 해적선으로서 가급적 부산포를 빨리 떠나주기를 바랐던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밀리에 해안측심을 하는 그들로서는 어디 오륙도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얻을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부식과 식수를 구하기 위해 60여 년 전에 이미 용당포에 불시에 귀착한 프로비뎐스호 일행은 더욱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다.

이러한 영국의 부산항박도상의 '블랙 락스'와 우리 고유의 명칭 '오륙도'를 함께 표기한 나라가 일본이었다. 일본은 페리제독의 흑선이 내항한 이후 해양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1871년부터 본격적인 바다측량을 하기 시작했다. 1875년 일본해군의 수로료(水路寮)의 '조선국부산항' 해도에서 처음으로 오륙도를 표기했다. 이후 일본은 영국 등의 수로지를 입수하면서 세계수로지 편찬에 심혈을 기울였고, 드디어 1886년에 오륙도를 '환영수로지'에 5개의 검은 바위라는 의미인 '오흑암(五黑岩)'으로 소개했다.

이어 1904년 해군성수로부에서 나온 부산항해도에서는 '오륙도(黑岩·Black Rks)', 1907년에 나온 조선수로지에서는 '오륙도(Black Rocks)'로 동시에 표기했다.

이처럼 오륙도가 처음에는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다른 명칭으로 세계에 알려졌지만 일본은 1875년부터 해도와 수로지에 우리의 명칭을 사용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우리말 오륙도(Oryukdo)가 대세인 것 같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