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임금 인상·인력충원 주문
- 사외이사 추천권 요구 험로 예고

- 사측, 긴축·근로시간 변경 요구
- 구조조정 싸고 노사 입장차 커
- 최악위기 넘길 상생방안 필요

최악의 경영위기로 구조조정에 내몰리고 있는 현대중공업 노사가 10일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을 위한 상견례를 했다. 노사 상견례는 한 해 협상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악수와 인사만 하고 끝내는 게 보통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날 상견례장 분위기는 그 어느 해보다 경직되고 답답한 느낌이었다는 게 협상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현재 노사가 처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럴 만도 하다.

10일 울산 오토밸리복지센터에서 현대기아차그룹사 노조 대표들이 공동교섭 파행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상견례에 앞서 노사가 서로 던진 제시안을 보면 올 협상의 파고가 어떨지를 쉽게 짐작게 한다. 먼저 노조는 회사가 9분기 연속 4조 원이 넘는 적자를 봤음에도 10만 원에 가까운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또 구조조정을 앞둔 상황임에도 퇴사자 수만큼의 인력 충원을 주문했다. 게다가 회사 고유 권한에 해당하는 사외이사(1명) 추천권까지 내놓으라고 했다.

반면 회사는 ▷조합원 자녀 우선 채용 ▷우수 조합원 해외연수 ▷20년 미만 장기근속자 특별포상 등 호황기 때 노조와 맺은 일부 단협안 폐지를 요구하며 역공했다. 나아가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 및 재량근로 실시 등도 주문했다.

각자 입장에서 보면 (상대방이) 모두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만 한다. 마치 누가 더 수용불가 안을 많이 내놓는지 노사가 경연을 벌이는 듯하다.

현재 노사가 주장하는 경영위기 타개방안도 이와 다르지 않다. 노조는 무조건 구조조정은 안 된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임금 삭감은커녕 동결 의사조차 내비치지 않는다. 반대로 회사는 희망퇴직 접수, 임원 급여 삭감, 일부 기구 통폐합 등 판에 박힌 자구책만 보여주고 있다. 노조가 요구하는 대주주 출자 확대와 같은 상징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치료제는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꺼린다. 협상만 아니라 거래도 내가 아끼는 것을 내놓을 때 쉽게 이뤄진다.

그런데도 노사는 서로 내 것은 싫고 남의 것만 내주기를 바라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평행선을 달리는 게 아니라 대각선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의 결말은 공멸이다. 등 돌리고 달린 줄 알았지만 사실은 마주 보고 달렸기 때문이다.

협상은 타협을 전제로 하고, 타협은 상호 양보의 산물이다. 현대중공업 노사처럼 상대방의 일방적인 양보나 희생만 강요한다면 타협은 불가능하다. 노사 어느쪽도 국민적 공감대는커녕 약간의 우호적인 여론 조성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대중공업 노사에 주문 내지는 제의하고 싶다. 상대방보다 먼저 여론을 선점하라고. 그러려면 노조는 임금 동결을, 회사는 출자 확대 선언과 같은 비방을 내놔야 한다. 먼저 하는 쪽이 여론을 선점하게 된다. 다른 한쪽은 자연히 끌려갈 수밖에 없다. 누가 먼저 할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방종근 사회 2부 기자 jgba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