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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 어촌마을로 귀어한 진춘현 씨가 소형 통발어선을 타고 다맥마을 앞바다에 내려놓은 주꾸미 통발을 건져 올리고 있다. 이 어선은 자신의 아버지 아호를 붙여 대봉호라고 이름지었다. |
- 태권도 도장·식당 등 실패하고
- 직장서 일하다 눈까지 다쳐
- 고향인 사천 어촌마을로 귀어
- 처음엔 일손 돕는 허드렛일 하다
- 0.2t 작은 어선으로 본격 어업
- 지금은 낙지·주꾸미·장어 등
- 통발어선 2척 꾸리며 생활
남해를 끼고 있는 전형적인 어촌 마을인 경남 사천시 서포면 다평리 다맥마을. 오랜 도시 생활로 지친 진춘현(62) 씨를 어머니 품처럼 어루만져 준 곳이다.
찌든 가난 탓에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다녀야 했던 진 씨는 부산으로 건너가 먼 친척이 경영하던 인쇄소에 취직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처음 6개월은 월급 한 푼 없이 인쇄소 한쪽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다. 청년기의 그는 틈틈이 태권도 도장에도 다녀 나중에 사범 자격인 공인 3단 실력을 갖췄고, 유도 역시 초단을 딸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했다. 부산의 인쇄창에서 군 복무를 끝내고도 인쇄 일을 계속하던 진 씨는 태권도 도장을 차리기도 하고, 인테리어 가게나 식당을 열었지만, 번번이 문을 닫는 아픔을 겪었다. 나중에는 직장에 다니다가 한쪽 눈을 다쳐 시력마저 잃는 등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졌다.
실명과 실직의 허탈감으로 방황하며 괴로워하던 진 씨는 3년여 사찰에서 숨어지내다시피하던 중 어느 날 자신보다 더 불리한 신체조건의 사람도 새 삶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고 고향행을 결심했다.
■ 지친 몸 이끌고 무작정 귀향
2010년 봄 무작정 고향을 찾은 진 씨는 닥치는 대로 일하며 지냈다. 그는 마을에서 일손이 모자란다고 하면 달려가 배를 청소하거나 수확한 굴을 옮기는 일을 거들었다. 손재주가 뛰어나 집 수리 때도 종종 불려갔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어 초점이 맞지 않아 처음에는 망치질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나, 악착같이 일했다고 한다. 때로는 공사장에서 날품을 파는 일도 마다치 않았다.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형이 2013년 봄 0.2t의 작은 어선과 굴 양식장 일부를 떼어주며 '허드렛일 하며 고생하지 말고 이것으로 먹고살아라'고 해 본격적으로 어업에 나서게 됐다. 그때까지도 부산에서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한 달에 두세 번 와 반찬이나 빨래를 챙기던 부인도 자식들이 모두 출가하자 지난해부터 진 씨와 합류했다.
진 씨는 어선이 생기자 어린아이처럼 기뻤다고 한다. 큰 어장의 사장이라도 된 것 같았다고 했다. 첫해에는 미역이나 파래, 모자반 등 해초류를 채취하고 굴을 까거나 남의 어장일을 도우며 지냈다. 그러다가 1년여가 지나자 이력이 붙고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지난해 초에는 통발 어업 면허가 있는 어선 2척을 통째로 샀다. 복합어선 1.7t짜리와 통발 어업 0.8t짜리다. 낮에는 주로 낙지와 주꾸미를 잡고 새벽에는 야행성 어종인 장어를 잡고 있다.
■ 하루 두 번 물때마다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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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춘현 씨가 건져올린 주꾸미들. |
주꾸미 통발은 길이 200m가량의 밧줄에 모형 꼬막을 30~40㎝ 간격으로 매달아 바다 밑바닥에 깔아 놓는다. 밧줄 양쪽에는 자신이 알아보기 쉽도록 부이를 매달아 띄워 놓는다. 주로 낮 동안 물이 빠지면 건져 올리는데, 주꾸미는 자신의 영역을 유난히 확보하려는 성질이 있어 밤에 먹이활동을 벌이다가 낮에는 모형 꼬막에 들어가 있는데, 이때 건져 올린다. 낙지나 장어도 통발의 모양만 다를 뿐 잡는 방법은 비슷하다.
바다에는 어획면허만 있지 육지의 논밭처럼 개인별 어장이 획정되어 있지 않아 통발을 묶은 밧줄이 얽히는 일이 다반사다. 비교적 많이 잡히는 어장에서는 2, 3개의 밧줄이 엉켜 서로 실랑이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어떤 때는 남의 통발선을 잘라 버리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한 개에 500원가량인 모형 꼬막의 주꾸미 통발은 바다 밑바닥에서 조류에 휩쓸리다 보면 한두 개씩 손실되는 경우가 있어 교체하면 되지만 애써 깔아놓은 어구를 잘라버리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길길이 날뛰어봐야 소용없는 일이기에 '세상일이 그러려니' 해야 마음이라도 편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모아서 한꺼번에 팔려고 뱃전에 매달아 놓은 어획물이 없어질 때는 괘씸하다고 진 씨는 털어놨다.
진 씨가 3년여 바다 생활을 통해 얻은 것은 바다든 육지든, 도시든 농어촌이든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바다는 오히려 육지보다 더 살아가기 쉽다고 말한다. 해변에 지천인 해초류가 있고 어구만 넣어두면 고기가 잡히니 많고 적음은 있겠지만 호구지책은 충분하단다. 육지 벼농사는 수확까지 7~8개월가량 기다려야 하고, 과수는 3~5년을 가꾸는 수고가 뒤따르는 데 비해 바다는 하루 두 번의 물때에 맞춰 나가기만 하면 수확이 있다.
■ "바다에서 사는 자체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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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박에 쌓아놓은 장어통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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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통통…. 진 씨는 선외기(작은 배)의 시동 소리를 들으며 갯내음을 맡으면 더없이 흐뭇하다고 한다. 바다 위에서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물고기야 잡히면 돈을 벌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짙푸른 바다 위에서 자기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모형 조개로 만든 1000여 개의 주꾸미 통발을 한 번 들어 올리면 보통 20~30마리가 들어있다. 많을 때는 40~50마리도 된다. 다른 사람들은 3000개에서 많게는 5000개짜리 대형 통발을 놓기도 한다. 그러나 진 씨는 불편한 몸으로 혼자 작업해야 하므로 1000개짜리가 적당하단다. "통발 어업은 어찌 보면 확률 싸움입니다. 수백 수천 개를 깔아야 잡을 확률도 높아지지요.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복불복(福不福)입니다. 1000개를 내려놓더라도 한 마리를 잡지 못하는 때도 허다합니다." 기자가 다맥마을 앞바다에 설치한 주꾸미 통발을 건지는 데 동행했을 때는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고, 서포만 쪽으로 이동했을 때에야 30여 마리를 건져 올렸다.
진 씨는 "세상일이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있겠나. 팍팍하고 위태위태한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는 도시보다는 내 일을 하며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게 행복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고향에서 바다 냄새를 맡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하다는 생각뿐이다"고 덧붙였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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