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영도대교 밑에서 점바치 할머니(오른쪽)가 점을 봐주고 있다. 김성효 기자

- 중구, 예산 들여 부스 만들기로

"손님 전화는 계속 오제, 돗자리 깔 장소는 없제. 우짤끼고? 찬 바닥에라도 앉아야제."

17일 오후 3시 부산 중구 영도대교 아래서 만난 배남식(83) 할머니는 연신 한숨을 쉬었다. 지난 10월 삶의 터전이었던 '소문난 대구점집'을 폐점한 그는 요즘 집 앞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점을 본다.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두툼한 옷으로만 버티고 있지만 워낙 고령이라 최근에는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일주일에 1, 2번 나온다.

영도대교의 명물이었던 점바치(점쟁이) 골목은 지난 10월 마지막까지 버텼던 배 할머니와 김순덕(79) 할머니의 임대 계약이 끝난 뒤 이들이 나가면서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영도대교가 도개 기능을 복원하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늘자 점바치 골목은 개발 바람을 탔다. 계약기간이 끝나자 건물주는 덩달아 나가달라고 요구(본지 지난 10월 8일 자 2면 보도)했다.

하지만 배 할머니는 점집 대신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좌판을 펴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배 할머니는 "40년간 인연을 맺은 단골손님들이 가끔 전화 와서 안 나올 수 없다. 생계 문제도 연관된다"며 "높은 사람이 찾아와서 점바치 골목을 다시 만들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소식이 없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할머니 옆에서 비닐 천막을 치고 점을 보는 천마철학관 박춘길(79) 할아버지 역시 같은 심정이다. 박 할아버지 역시 점바치 골목에서 밀려난 뒤 매주 3일 이곳에 나와 노점 점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예전보다 수입이 반의반으로 줄었지만 돈을 벌려고 나오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왔는데 버림받는 것 같아 서운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영도대교 점바치 골목에 대한 추억과 향수, 생계까지 얽히면서 중구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애초 구는 배 할머니가 점집을 하던 건물을 매입해 '점집 테마관'으로 꾸미려고 했으나 집주인이 계속 거절해 이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 대신 영도대교 아래 유라리광장에 점집 부스를 만들고 점바치 골목의 향수를 되살리면서 점바치들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돕기로 했다. 구 김범한 관광진흥 담당은 "점집 테마관 건립은 부지 매입이 어려워 불가능하고 그 대신 관련 예산 5000만 원으로 현재 정비된 친수공간에 점바치들이 명성을 이어갈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