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밖 청소년 결혼식 알리며 이름, 사진 공개했다가 뒤늦게 보도 자제 요청

지난 11일 경남 의령군 종합사회복지관 2층 다목적실에서는 작은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A (17) 군과 신부 B(18) 양은 아직 앳된 얼굴의 미성년자였다. A 군은 철없던 시절 호기심으로 저지른 범죄로 인해 학교생활 부적응자로 전락한 뒤 현재 창원지방법원에서 운영하는 사법형 그룹홈 '자운영'에서 생활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A 군은 고교 1학년을 자퇴한 뒤 지난해 8월 의령경찰서와 의령군 청소년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아 검정고시에 합격해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B 양 역시 개인 사정으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상태다. 신랑 신부 모두 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학교를 벗어난 이른바 '학교 밖 청소년'이다.

　이들의 새출발을 위한 결혼 뒤에는 의령 경찰의 적극적인 '중매쟁이' 역할이 있었다. 법상 미성년자인 이들의 혼인을 위해서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데 경찰은 양가 부모를 찾아다니며 어렵게 결혼 승낙을 얻어냈다.

　결혼식 주례는 창원지방법원 오용규 형사4부장 판사가 맡았다. 오 판사는 소년부 재임 시 한때의 잘못으로 재판에 넘겨진 신랑 A 군 사건을 판결한 것이 인연이 돼, 흔쾌히 주례까지 맡았다.

　의령경찰뿐 아니라 의령군 청소년상담복지센터도 이들의 결혼식을 도왔고, 대구 무료결혼식추진운동본부 등 7개 업체는 드레스, 헤어·메이크업, 점심 뷔페, 예식 비용 일체 등을 협찬해 무료로 결혼식을 치를수 있었다.

　이번 '꼬마' 신랑 신부의 결혼식 과정을 보면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의 닉네임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경찰은 두 청소년의 이 같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기 위해 보도자료와 결혼식 사진을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

　보도자료에는 이들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신랑 A 군, 신부 B 양 이라고 익명으로 처리했다. 그러면서도 어찌된 일인지 신랑·신부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결혼식 사진을 첨부한 것이다.

　자료를 받은 기자는 의아스러웠다. 그래서 의령경찰서에 전화를 해 이들 부부의 얼굴을 공개해도 되는 것인지 물었다. 그제서야 경찰은 얼굴 공개는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기자는 경찰 측에 빨리 이 같은 사정을 언론사에 알리는 한편 이들 부부의 뒷 모습을 촬영한 사진으로 대체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언론사는 이들의 신변이 노출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의 얼굴 사진과 함께 결혼식장에 걸린 펼침막에 적힌 이들 부부의 실명까지 적힌 사진이 그대로 나왔다.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신상털기가 물의를 빚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이들 부부가 이 같은 언론 보도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마음을 짓누른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간혹 이 같은 일이 발생한다. 특히 탈북한 새터민의 기사를 취급할 경우 번번이 발생하곤 한다.

　경찰 입장에서는 이 같은 사례를 홍보해 비슷한 상황에 처한 청소년들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언론사에 보도를 요청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더 세심한 배려와 주의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번 결혼식 소식을 접하면서 아이들의 작은 상처까지 보듬으려는 경찰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단지 아쉬움은 이들을 끝까지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진심이 때로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마지막 작은 부분까지도 자상하게 챙기는 경찰을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 아닐 것이다. �이종호 기자 jh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