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서양에서 조업하다 숨진 원양어선 선원 유골 4위(位)가 5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효시는 1957년. 수산업 전초기지 부산항을 출발해 인도양으로 향했습니다. 9년 뒤인 1966년에는 인도양보다 훨씬 먼 대서양으로 트롤어선이 출발합니다. 거친 파도와 싸워야 했던 선원들. 맨몸 하나로 당시의 '먹거리' 산업을 일궈낸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957년 6월 우리나라 원양어선 1호 제1지남호(230t)가 부산항에서 출항
“참치 잡으면 부자된다”는 희망을 품고작은 배는 인도양 거친 바다로 향합니다
첫 출항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하나
사진 속 큰 물고기를 잡은 선원들은
드디어 참치를 잡았다고 환호하며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를 보냅니다
우리나라 '첫' 참치는 실제로 새치였습니다
'맏형' 지남호의 역할은 지대했습니다
첫 출항 9년 뒤인 1966년 우리 원양어업은 인도양을 넘어 대서양도 정복합니다
그러나 경험 부족에 소중한 목숨이 바다에 수장됐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선원이 죽어나갔다"(이충구 라스팔마스 한인회장)
항해 안전수칙이 정립되지 않은 탓입니다
스페인 카나리아제도 라스팔마스
이곳에는 전성기 시절(1970년대) 20척의 한국어선과 7000명의 선원이 살았습니다
라스팔마스는 한국인 선원을 기리는 선원위령탑과 납골당도 세웠습니다
위령탑에는 104명의 순직선원이 잠들어있습니다
2016년 11월은 한국어선의 라스팔마스 입항 50주년
이를 기려 라스팔마스 현지의 순직선원 유골이
지난 4일 사망 40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홀연히 떠났던 4명의 유골입니다
라스팔마스에서 1966~1986년 번 외화는 1억1000만 달러
1965~1975년 파독광부·간호사가 번 외화 1억153만 달러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파독광부와 간호사처럼
원양어업 선원들의 존재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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