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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17> 점박이물범

호기심 많은 어부의 친구들…NLL 긴장 속에서 누리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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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범바위에서 휴식을 취하던 점박이물범(천연기념물 제331호)이 다가가는 취재진을 쳐다보고 있다.
- 서해 최북단 백령도서 200여 마리 서식
- 북한 장산곶과 맞댄 바다 어족자원 풍부
- 폐그물·낚시꾼 탓에 서식지 점점 줄어들어

- 사람 다가가면 물 밖에 고개 내밀어 관심
- 좁은 바위엔 자리 차지하기 피나는 싸움
- 물 밖에선 느리지만 물고기 사냥 날쌘 몸짓

- 남북 간 팽팽한 긴장 모르는지 자유 만끽

동경 124도, 북위 37도에 있는 서해 최북단 외로운 섬 백령도!

백령도는 서해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섬으로 군사적으로도 민감해 경계가 철저한 곳이지만, 자연생태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특히 북한의 장산곶과 마주한 이곳은 물고기 등 어족자원이 풍부해 점박이물범이 살아가는 데 아주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물범들, 자리를 잡기 위한 싸움이 치열하다.
현재 점박이물범은 전 세계에 걸쳐 약 300만 마리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서식 개체 중 200여 마리가 백령도에서 매년 여름을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무분별한 포획과 서식지 파괴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백령도 물범바위 사정이 더욱 녹록지 않다. 어민들이 버리고 간 폐그물에 걸려 물범들이 죽기도 하고, 물범들이 휴식하며 숨도 쉬고 일광욕을 즐기는 물범바위에 낚시꾼들이 올라와 낚시하는 등 자신들의 휴식처를 빼앗기고 있다.

백령도에서 서식하고 있는 점박이물범은 천연기념물 제331호, 멸종위기동물 2급으로 지정되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중국 랴오둥 만에서 번식을 하고 따뜻한 4월이 되면 온 가족이 백령도의 물범바위 쪽으로 이동해 가을까지 연안에서 생활한다.

물범바위 주변에서 물범 지킴이 김진수 선장이 낚시로 볼락을 잡아들어 올리고 있다.
백령도에는 물범과 친구로 지내는 토박이 지킴이 김진수(58) 선장이 있다. 그는 직접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기도 하고 때론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기도 한다.

"서해는 동해와 달리 바닷속의 시야가 흐려 물질하는 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물범이 있는 바다 주변은 물고기뿐 아니라 전복이나 성게 등 해산물이 풍부해 물범과 마주치는 게 예사랍니다"

그의 안내로 취재팀이 백령도 선착장을 출발해 25분 정도가 지났을 즈음 어선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면서 목적지인 '물범바위 섬'을 볼 수 있었다. 한가운데 4개의 바위가 솟아있었다. 마침 밀려올 대로 다 밀려온 밀물이 썰물을 기다리느라 바다가 잠시 호수처럼 잠잠해져 있을 때였다. 저 멀리 점박이물범이 무리를 지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물범은 사람을 경계하는 것 같지가 않았는데 호기심이 무척 많아 보였다.

바위섬으로 물범이 하나둘 접근을 시도한다. 고개만 내밀고 잠시 쳐다보고 있다가 다시 물속으로 숨어드는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취재팀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먼저 바위섬 주변 어선에 있으므로 물범들이 좀처럼 다가오지를 못하고 있는 듯했다.

백상아리의 공격으로 배 쪽에 상처(검은 선 부분)를 입은 점박이물범.
북녘 장산곶에서 불과 11㎞ 떨어진 곳에 있는 물범바위는 썰물로 물이 빠지면 잠겼던 제 모습이 드러나면서 이내 물범들의 쉼터로 바뀐다. 바위는 다른 바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이 바위가 특별한 이유는 소중한 물범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 포유류인 물범은 물속에서는 호흡할 수 없으므로 숨을 쉬고, 일광욕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좁은 물범바위에서는 항상 소동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피나는 싸움을 벌인다.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의 세계가 모두 그러하듯 물범의 세계에서도 강자에게만 휴식 자리가 주어지는 냉엄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치열한 자리싸움에서 예외가 되는 물범도 있는데, 바로 물범 집단을 이끄는 대장 물범이다. 물범들은 집단 내의 우두머리인 대장 물범의 자리만은 감히 탐내지 않는다. 자리싸움이 끝나면 싸움에서 이긴 물범들은 편안하게 바위 위에서 휴식과 일광욕을 취하지만 싸움에서 진 물범들이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기 때문에 경계를 게을리할 수 없다.

물 밖에서는 느리기만 하던 물범은 바다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몸무게 90kg의 거구가 물고기 사냥에 나서는 순간은 유연하고 민첩해진다. 사냥감을 노리는 물범에게 볼락 무리가 포착됐다. 물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볼락이 돌 틈으로 도망쳤지만 쉽게 물러설 물범이 아니다. 돌 틈을 헤집고 단숨에 낚아챈다. 허파 호흡을 하는 물범이 물속에서 잠수하는 시간은 2~3분 정도이다. 그 안에 사냥에 성공해야 한다. 갯과의 동물에서 진화한 물범은 뛰어난 잠수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닷속을 밝히는 좋은 시력과 탁월한 후각이 있다. 게다가 귀는 물속에서 저항을 덜 받도록 귓바퀴가 없는 구조다. 그 대신 귀를 자유롭게 여닫아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물범은 사람을 그리 경계하는 동물이 아니며, 호기심도 무척 많은 편이다. 누가 오는지 궁금해 물범 2마리가 바닷속에서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고 있다.
또한, 물범은 작은 움직임도 감지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물체가 일으키는 파동을 느끼는 일종의 레이더 장치를 가지고 있다. 코끝에 달린 긴 수염이 사냥감을 감지하고 추적하는 물범의 레이더 기관이다.

김선장은 말했다.

"물범은 다가왔다가도 금방 도망을 가는데 알고 보니 숨을 쉴 때 일어나는 내 거품에 놀라 달아났던 것이지요." 이 사실을 안 김 선장은 물속에서 물범이 다가오면 최대한 숨을 참는다. 그리면 물범은 호기심에 오리발도 물어보는 등 김 선장 곁을 떠나지 않는다. 물범은 김 선장이 손짓하면 다가와서 악수까지 받아준다.

사람의 존재가 괜찮다고 느꼈는지 취재팀에게도 다가온다. 이런 행동은 물범을 소중하게 대하며 사랑으로 교감하는 김 선장의 반복된 학습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물범은 바다표범과의 포유류로, 보통 몸길이 1.4m, 몸무게 90㎏으로 바다표범 중에서 가장 덩치가 작은 동물이다. 주로 북태평양에서 서식하는데 수온이 낮은 알류샨 열도와 캄차카 반도 일대 오호츠크 해의 깊은 바다에서 많이 살고 있다. 극동에서의 번식과 서식은 중국의 발해만과 우리나라 서해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뜻 보면 물개와 비슷하지만, 물개와는 달리 앞발이 발달하지 않아서 배로 움직인다. 그래서 다소 우둔한 모습이지만, 검은색, 흰색, 회색 등의 얼룩이 있어서 겉보기에는 표범처럼 날렵한 인상을 준다. 물범이 물개와 구분되는 또 다른 점은 물개는 여러 마리의 암놈을 거느리지만, 물범은 일부일처제로 산다는 것이다.

긴장과 평화가 공존하는 서해 백령도! 북한 땅이 불과 17㎞ 전방에 있고 최북단 북방한계선(NLL)이 막혀 더는 누구도 오갈 수 없다. '인간'들은 주먹을 꽉 쥐고 금방이라도 툭 끊어질 것 같은 팽팽한 기세로 '싸움' 을 벌이고 있는데, 물범들은 이런 싸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거리낌 없이 남과 북을 오가는 자유를 만끽하며 온전한 평화를 누리고 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010-8516-3298).

※취재 협조 = 김진수 백령도 물범 지킴이·박용수 조류전문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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