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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16> 표범

아름다운 너, 정말 다시 볼 수 없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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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오월드 우리 안에 있는 표범. 노려보는 눈빛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무섭다.
- 황홀한 털무늬 가진 탓에
- 일제강점기 마구잡이 포획
- 16년 동안 1092마리 사살, 사실상 씨 말려
- 가죽은 대부분 일본 반출 귀족 전리품으로

- 1962년 합천에서 생포된 이후엔 종적 감춰
- 붙잡힌 표범 동물원서 11년 지내다 생 마감
- 이후 이 땅에서 공식적으론 생존 확인 안돼
- 아직 곳곳서 흔적…완전 멸종되진 않은 듯

   
반세기 전만 해도 한반도는 야생동물 왕국이었다. 용맹스러운 사냥꾼 표범이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위치해 백두대간을 호령할 정도였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총과 올가미는 한반도에서 표범을 멸종의 길로 몰아갔고 여타 중·대형 포유류도 하나둘씩 사라졌다.

취재팀은 한반도 토종 표범에 관련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1959년 경남 산청군 생초면 철마산(774m) 기슭 고촌마을에서 표범과 맨손으로 싸워 이긴(1959년 3월 30일 자 국제신보 보도) 윤보안(86)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또한 1962년 경남 합천군 오도산(1100m) 아래 가야마을에서 덫에 걸린 표범을 생포한 고 황홍갑 씨의 부인 박순영(92) 씨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1963년 경남 합천군 가야산 줄기 매화산에서 일반인이 진돗개와 함께 새끼 표범을 돌로 잡은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안그라픽스 제공).
고촌마을의 윤 씨는 당시 혈기왕성한 30세였다. 1959년 3월 24일 자정 무렵 밖에서 개가 짖어 나갔는데 어둠 속에서 네 발 달린 짐승이 희미하게 보였다고 했다. 처음에는 뒷집 개인 줄 알았다. 담장 쪽에서 나오더니 갑자기 윤 씨에게 달려들자 그는 태권도를 하듯 팔을 뻗었는데 그만 표범 입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개를 먹잇감으로 노리고 들어온 표범이었는데, 그때서야 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표범이 뒷다리로 가슴을 차는 바람에 윤 씨는 본능적으로 표범의 뒷다리를 잡고 뒹굴었다.

'지금 죽을 순 없어. 용기를 내야지' 라는 생각으로 표범의 급습에 맨손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표범과의 사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깊은 밤, 윤 씨는 마당에서 으르렁거리며 달려드는 표범과 1시간 이상 맨손으로 맞섰다. 그는 오른손으로 표범의 귀를 잡은 뒤 왼 주먹으로 머리를 수차례 휘두르며 내리쳤다. 윤 씨는 표범에게 물려 팔과 다리가 피투성이가 되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사람 살려!"라고 고함을 질렀다. 방에서 감자 싹을 자르던 아내가 마당으로 달려 나와 이 광경을 목격하고 절굿공이로 표범 머리와 목을 내리쳤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한 윤 씨는 표범이 힘이 빠졌을 때를 노려 도끼로 머리를 두 번 내리쳤다. 표범은 늙어서인지 이빨은 몇 개 없었지만, 꼬리까지 치면 일곱 자가 넘는 아주 큰 놈이었다. 수놈이라 혹 암놈이 찾아올까 싶어 지서 순경이 총을 들고 3일간 잠복했지만 이후 아무 일이 없었다.

   
경남 산청군 생초면 고촌마을에서 표범을 두들겨 잡았다고 보도한 국제신보 1959년 3월 30일 자 기사.
1962년 합천 오도산에서 생포된 표범은 공식적인 한국의 마지막 표범이다. 박 할머니는 53년 전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남편은 젊었을 때부터 사냥을 좋아했지. 농작물을 재배하는 틈틈이 철사로 덫을 만들어 노루나 고라니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을 잡았어."

당시 남편 황 씨는 44세였다. 1962년 2월 12일 오전, 남편이 산에 간 지 1시간도 안되었는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돌아와 큰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호, 호, 호랑이가 덫에 걸려 날뛰고 있다." 옆에 있던 아들은 큰소리로 "만세"라고 외쳤다고 한다.

올무에 잡힌 호랑이를 잡기 위해 팀이 꾸려졌다. 마을 장성 5, 6명이 몽둥이, 낫, 손도끼를 들고 산으로 향했다. 황 씨의 아들도 동행했다. 호랑이는 시뻘건 입을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냈다. 덫에 배가 꽉 조여서 그런지 '카, 캭' 하며 내는 소리가 마치 비명 같았다. 이 호랑이를 산 채로 잡는 과정에서 한 주민이 호랑이 발톱에 의해 심각한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 이후 오창영 당시 창경궁 동물부장이 '호랑이가 아니고 표범 1년생 수컷'이라고 정정해 주었다고 한다.

   
1959년 사투 끝에 표범을 죽이고 살아남은 윤보안 할아버지와 당시 표범에 물렸던 손과 발목에 난 상처 자국.
표범을 꽁꽁 묶어 지게로 짊어지고 집 마당까지 왔지만 둘 곳이 없었다. 고민 끝에 낡은 드럼통을 눕히고 굵은 철사로 칭칭 감아 임시로 우리를 만들었다. 황 씨는 드럼통을 마당 창문 아래 두었다. 문제는 표범의 먹이었다. 매일 산토끼를 잡아 주었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어 마을에서 키우던 집토끼를 사다가 하루에 1마리씩 주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시장에서 사 오기도 했다.

표범이 드럼통에 있지만, 혹시라도 빠져나올까 무서워 마을 주민들은 늘 불안했다. 주민들은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지를 못했고 화장실 가기도 무서워했다. 한편으론 또 다른 표범이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경남 합천군 묘산면 가야마을에 사는 허점선 할머니가 1962년에 표범이 생포된 오도산 큰 바위 밑을 가리키고 있다.
생포된 표범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고, 결국 창경궁동물원에 기증했다. 그 표범은 생포된 지 11년 만인 1973년 동물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이후 표범은 한반도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표범이 사라진 가장 큰 원인은 표범 가죽의 가치에서 찾을 수 있다. 권력자들은 그 가죽으로 자신의 권위를 드러냈다. 일제강점기에 특히 심했는데 당시 '황국 신민의 안전에 해가 되는 동물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한반도의 대형동물에 '해수(害獸)'라는 딱지를 붙여 마구잡이로 포획했다.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1915년부터 16년 동안 표범이 총 1092마리나 사살됐다. 이렇게 잡은 표범의 가죽은 대부분 일본으로 반출돼 일본 귀족들의 '전리품'이 됐다.

   
1962년 경남 합천 오도산에서 사로잡혀 창경궁에 전시된 한국의 마지막 표범 수컷, 11년 뒤인 1973년 동물원에서 생을 마감했다(어린이대공원 제공).
아름다운 무늬의 가죽 때문에 표범은 지구 위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표범 밀렵은 1970년대까지 계속됐지만, 한반도에서 표범이 생포된 공식 기록은 1962년 이후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포유류 전문가들은 아직도 표범의 생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표범의 흔적을 봤다는 목격자 역시 지금까지도 꾸준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010-8516-3298).

글·사진=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okje.co.kr

취재 협조 = 김용만 함양군청 기획감사실·박용수 조류전문가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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