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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13> 멧토끼

긴장 속의 삶, 약자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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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토끼는 경계심이 많아 먹이를 먹고 있는 중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살핀다.
- 동요 '산토끼' 주인공으로 친숙한 동물
- 소나무 재선충 방제 탓에 먹이 사라지고
- 야산 차지한 고양이에 밀려 개체수 급감
- 숲 속 맹수들의 주요 먹잇감인 이유로
- 식사 때 조차 귀 쫑긋 세우고 경계 모드
- 적 나타나면 목숨 던져서라도 새끼 지켜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린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처음 배우는 노래가 아마 '산토끼'일 것이다.

전북 남원시 주천면 지리산 둘레길에서 멧토끼가 두 발로 서서 주위를 살피고 있다.
50대 중반 이후 시골 출신이라면 어린 시절 겨울철 학교에서 매주 토요일을 '자연학습의 날'로 정해 단체로 토끼몰이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지도 모른다. 기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당시 5, 6학년 학생들이 학교 뒷산 산등성이에 모여 선생님 지도로 양팔 간격을 유지하고 함성을 지르면서 간격을 점점 좁혀 토끼를 몰면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몸뚱이 조가 토끼를 잡았던 기억이 난다.

해안지역의 학생들은 고기 잡는 그물을 이용했다. 우선 산 아래에서 30~50m 폭의 그물을 준비해놓고 산등성이에서 토끼를 몰면 적어도 2, 3마리의 토끼가 걸렸다. 이렇듯 배고픈 시절 멧토끼는 겨울철 서민들에게 고기 맛을 보여 주었던 가장 불쌍한 희생양이었다.

이런 옛 추억의 멧토끼를 얼마 전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우연히 보았다는 지인의 제보를 받고 지리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하순. 휴가도 반납한 채 이른 새벽 전북 남원시 주천면 내송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지리산 둘레길 14.4km 구간으로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인기 구간이다.

충남 연기군 야산에서 발견된 멧토끼 새끼.
이른 아침 마주친 주민으로부터 서북 능선 해발 500m 지점 밭에 멧토끼가 가끔 농작물을 먹으러 내려온다는 제보를 확인하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쳐 메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터벅터벅 둘레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 주민이 제보해 준 장소에 여장을 풀고 멧토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해가 질 무렵 어디선가 귀여운 멧토끼 한 마리가 팔짝팔짝 뛰어 내려와 오물오물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겁도 없이 도망가지도 않고 쪼그리고 앉아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이 얼마나 앙증스럽고 귀여운지, 여러 각도의 포즈도 잊지 않았다. 잠시 후 배가 불렀는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 멧토끼는 밭 주변 지리산 둘레길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전 지역 해발 500m 이하의 야산에 살던 멧토끼가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다. 이유가 뭘까. 개발 바람이 주역일 듯 싶다. 근대화의 물결이 광풍처럼 전국을 휩쓸면서 농촌에도 아파트나 공장들이 들어섰다. 이와 비례해 도로가 포장되면서 야트막한 야산들이 무 잘리 듯 산산조각 나버렸다.

토끼의 눈이 빨간 이유는 망막에 색소가 없어서 혈관 내 핏빛이 비쳐 보이기 때문이다.
멧토끼를 사라지게 한 큰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소나무 재선충. 소나무 재선충은 지난 1988년 부산에서 처음 시작돼 전국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에 산림청은 소나무 재선충 확산방지를 위해 광범위하게 항공방제를 시행했다. 멧토끼의 주식인 연한 나무껍질이나 풀 등은 순식간에 극약으로 변해버렸다.

애완용 고양이의 방치가 멧토끼 감소의 한 원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산에 살게 되면서 1년에 4회 정도 새끼를 낳고, 한 배에 많게는 6마리 이상 새끼를 낳으니 야산은 온통 야생 본능이 살아난 산고양이 천지가 돼버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야산에 살던 멧토끼, 들쥐, 다람쥐 등이 산고양이들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가 비단 일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라며 이에 대한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토끼목 토끼 과에 속하는 멧토끼는 한국 고유종인 토끼다. 멧토끼는 바위 밑이나 쓰러진 고목 속 혹은 작은 관목들의 뿌리 속을 좋아하지만, 특별히 보금자리는 만들지 않으며 일정한 구역 안을 맴돌면서 생활한다. 활동은 주로 아침과 저녁 무렵에 한다.

털은 대체로 회색이며 허리와 꼬리는 엷은 회갈색이다. 몸길이는 42~50㎝, 꼬리 길이는 5~7㎝, 귀는 7~9㎝ 정도이다. 토끼의 눈이 빨간 이유는 망막에 색소가 없어서 혈관 내 핏빛이 비쳐 보이기 때문이다.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생활하는 멧토끼는 땅의 오목한 곳에 1년에 2~3회 번식하며, 한 배에 보통 2~4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집토끼는 태어나서 털이 생기지만 갓 태어난 멧토끼 새끼들은 뱃속에서부터 털이 보송보송 나 있는 상태로 태어나며, 태어난 즉시 눈을 뜬다.

멧토끼는 자신을 잡아먹는 동물이 많기 때문에 조그만 소리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멧토끼의 큰 귀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이처럼 약한 몸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길고 강한 뒷다리도 몸을 보호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멧토끼는 비탈진 산길을 1시간에 80㎞까지 달릴 수 있다. 긴 뒷다리에 비해 앞다리는 짧아 아주 높은 산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숲 속에서 먹이를 찾아 나선 멧토끼는 보통 기다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다. 토끼는 귀가 발달해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도 정확하게 알아듣는다.

특별히 굴을 파지 않는 멧토끼는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이면 나무껍질이나 나무뿌리까지 갉아먹기도 한다. 하지만 멧토끼의 천적인 맹수들이 많아 사람에게 멧토끼는 숲 속의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졌다.

흔히 멧토끼는 눈을 뜨고 잔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언제나 쫓기는 처지이므로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 밝은 귀로 늘 경계하는 멧토끼는 하루에 30분 정도밖에 잠을 자지 않는다.

새끼를 낳은 어미는 새끼를 마른 나뭇가지나 마른 풀로 가려 놓고 자신은 수십 m쯤 떨어진 먼발치에서 새끼를 지킨다. 그러다가 밤이 되어야 새끼에게 다가가 젖을 먹인다. 만약 적이 나타나면 소란을 피워 적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려 새끼를 보호한다. 그래도 여의치 않을 때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새끼를 구하는 모성애가 지극한 동물로도 알려져 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010-8516-3298)를 기다립니다.

글·사진=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okje.co.kr

취재 협조=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충남 연기군청·김용만 함양군청 기획감사실· 박용수 조류전문가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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