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힘내라, 메르스 전사들- 지난달 20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지 한 달을 맞으면서 18일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메르스 전사'들의 피로도 가중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방호복을 벗는 소방대원, 땀을 닦는 대형병원 직원, 발열 점검하는 교직원, 좋은강안병원 앞에서 교대 근무 중인 부산 수영구청 직원들. 박수현 전민철 기자 |
- 잔병 없이 건강하던 사람
- 불과 보름 만에 한줌 재로
- 일가친척 5명 확진 날벼락
- 작별인사도 못하고 보내
- 병원 빨리 공개만 했더라면
"음식을 가리긴 하셨지만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신 분이었어요. 등산을 좋아해서 아침저녁으로 근처 산을 다녀올 정도로 체력도 젊은이 못지않았습니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지난 14일 숨진 박모(61) 씨의 아내 A 씨는 이제 곁에 없는 남편을 떠올리며 "억울하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그녀의 짧은 한마디에는 안일한 대응으로 사태를 확산시킨 정부와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몸살로 진단한 병원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짙게 묻어났다. A 씨는 "남편에게 병을 옮긴 사람이 원망스럽다"며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의 이름을 정부가 재빨리 공개만 했어도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숨진 박 씨는 지난달 26~28일 폐암에 걸린 매형이 입원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병문안을 갔다가 '슈퍼전파자'인 14번 환자를 통해 '몹쓸 병'을 얻었다. 이후 박 씨의 누나(64)도 지난 13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박 씨 누나의 큰아들과 동생 부부도 감염되는 등 일가친척 5명이 한꺼번에 메르스 환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불행을 겪었다.
오는 21일까지 자가 격리 중인 A 씨는 남편의 병을 진단하지 못한 병원에 대해서도 분통을 터뜨렸다. A 씨에 따르면 지난 1일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남편은 서울의 한 내과의원을 찾았지만 큰 병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음 날 박 씨는 밤새 오한에 시달렸고 이를 지켜보던 A 씨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지난 3일 찾은 대학병원 역시 박 씨가 앓는 병이 메르스라는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4일이 지난 후 박 씨는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녀에게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은 다시 한 번 찾아왔다. 지난 14일 오후 2시께 부산의료원으로부터 남편이 숨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족들은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A 씨는 "작별 인사도 못했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 상태가 나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갔을 때도 유리창 너머로 얼굴만 보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지병이 없으면 생명에 지장은 없다는 정부 발표를 믿었던 탓에 충격은 더 컸다. 건강하던 남편은 보름 만에 한 줌의 재가 돼 스러졌다.
박 씨의 죽음에 분명 국가의 책임이 있지만 정부 차원의 위로는 긴급생계지원금 40만9000원에 그쳤다. 갑작스럽게 반려자를 잃은 그녀에게 국가를 상대로 책임을 물을 힘은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A 씨는 "남편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무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발 빠르게 대처를 하고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만 받았다면 지금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