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6기 운행…세계 최대 밀집지
- 1990년대 기장군민 중심 반기
- 日원전 폭발하자 관심 극 달해
- 지역 최대 이슈 '고리1호기 폐쇄'
- 한수원 잇단 잡음은 민원 부채질
- 범시민본부, 한달간 집중적 활동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인 부산에서의 반핵 운동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시민이 기억하는 활동상은 대개 2011년 후쿠시마 참사 이후지만, 지역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이전부터 적은 수로 핵 산업에 맞서 왔다. 1990년대 중후반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원전 추가 건설이 추진될 때면 주민과 싸움에 동참했고, 소송과 갈등 해결은 물론 대시민 홍보 활동도 전개했다. 그러나 '핵 에너지는 불가피하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주민과 이들의 목소리는 금세 묻혀버리곤 했다.
현재 고리에는 고리 1호기, 2호기, 3호기, 4호기와 신고리 1호기, 2호기까지 총 6기가 운행 중이다. 납품 비리 말썽이 있었던 신고리 3호기도 가동을 앞두고 있고, 2024년까지 7,8호기 건설 계획이 잡혀 있다. 밀집도나 발전 출력량이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인구 300만 명이 넘는 지역에 핵시설을 잇따라 건설하면서도 한수원과 정부의 태도는 지나치게 가볍다. 지난 2012년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은 "수도권은 인구밀집지역이라 대피하기 어렵다"는 발언으로 지역민의 공분을 자아냈다. 이 같은 발언의 배경에는 지역민과 정치권의 무심함이 자리한다.
■日 원전 비극 대국민 관심 촉발
그러던 중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참사는 비극이었지만 동시에 탈핵운동이 활기를 띠는 계기가 됐다. 원전이 잇달아 폭발하는 걸 지켜본 한국 시민 사회도 핵 에너지의 필요성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토론했다. 부산에서는 사고 직후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에너지정의행동,부산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를 포함해 분야를 넘나드는 총 31개 시민단체가 그해 4월 첫 모임을 가지고 계획을 구체화했다. 정치권에 요구하고, 핵 바로알기 시민 강좌를 전개했으며, 기자회견 등으로 핵 발전소 가동 중단을 촉구했다. 국내 최고령 원전인 고리 1호기 폐쇄를 위한 행동도 추진했다. 학계, 종교계, 문화계, 정치권 등 사회 각계각층이 반응했고 시민들의 시선도 한결 따뜻해졌다. 전방위적 캠페인과 활동은 시민연대를 끌어냈고, 이제는 밥상머리에서 탈핵을 주제로 대화를 할 만큼 중요하고 친숙한 의제로 떠올랐다.
■'고리 1호기 폐쇄' 화력 집중
올해 부산 지역 최대 이슈는 단연 '고리1호기 폐쇄'다. 서병수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도 약속하고 나섰다. 지역민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집값 내려갈까 쉬쉬했던 기장군과 해운대구 등의 주민들이 이젠 집값 내려가니 원전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라고 한다'는 농담도 돈다. 여론이 이런 데다 그간 각종 문제를 일으켰던 한수원도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2월 부산 지역 시민단체가 참여한 고리1호기 폐쇄 범시민본부는 고리1호기 폐쇄를 목적으로 보수 진보, 활동 분야를 아우르는 지역 시민단체가 동참했다. 핵에너지는 긍정적이나 낡은 고리1호기 연장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의 단체도 있다. 범시민본부는 부산 시민의 염원을 담아 다음 달 18일 있을 한수원의 재연장 신청 마감일까지 집중적으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 판 커진 기장포럼, 세계 원전도시 안전·폐로산업 머리 맞댄다
■ 기장군 내달 8일 포럼 개최
- 영국·캐나다 등 7개 도시 첫 참가
- 참여국 고유 지식·경험 나누기로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각국 도시가 모여 발전소 안전과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협의 기구가 있다. 바로 2012년 발족한 기장포럼이다. 국내 원전이 있는 부산 기장군 등 5개 지역을 넘어 세계 7개국 17개 도시가 서로의 원자력 발전소 경험과 지식을 공유한다. 그동안 정부가 주도한 모임은 있지만 자치단체가 서로의 이해를 위해 모인 것은 세계 최초이다.
기장포럼은 기장군이 주도했다. 다음 달 8일부터 제2회 기장포럼 행사가 부산 해운대구에서 열린다. 올해 참가국은 7개국 14개 도시. 경주 울진 등을 비롯, 영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원전 소재 지역 대표가 참가한다.
2012년 제1회 기장포럼에서 참가국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는 성과를 거뒀다. 8개국 10개 원전 도시(핀란드 요로조키, 프랑스 플라망빌, 일본 겐카이·히가시도리, 중국 하이옌·렌윈구, 베트남 하노이, 대한민국 기장, 미국 미들타운·웨인스보로) 대표들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원전 안전 문제는 원전 소재 도시 간 공동으로 대응하며, 번영을 위한 지식을 전파할 것을 합의했다.
1회 포럼이 기장포럼을 국제기구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면 올해 2회 포럼은 구체적인 안전 대책과 원전산업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다. 원전 폐로에 관한 내용을 발표하고, 폐로와 연관된 지역 발전 방안을 논의한다. 기장군 노창석 녹색과학팀장은 "원전 폐로 산업이 발달한 영국과 캐나다를 이번 포럼에 참가하도록 해 고유의 지식과 경험을 나눌 예정이다"며 "올해는 지난 1회에 비해 더욱 규모가 커져 내실 있는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올해에는 베트남 닌투언, 일본 오마에자키·도카이, 미국 워싱턴, 캐나다 브루스·클라링턴, 영국 셀라필드 등 7개 도시 대표가 포럼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다. 특히 경주 등 국내 원전 소재 도시는 기장포럼의 정식 회원으로 참가한다고 공식 발표해 도시 간 네트워크가 더욱 넓어졌다.
세계 각국 원전 소재 도시의 네트워크는 각 원전 소재 도시가 지닌 경험이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 플라망빌의 경우 지역 협의체가 잘 구성돼 있어 원전 관련 주민 합의가 상당히 원활하다. 또 미국 미들타운은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방재 시스템이 잘 구축된 곳이다. 베트남 하노이는 곧 원전이 건립될 예정지이며, 원전 선진국의 경험을 얻기 위해 참가했다.
오규석 기장군수는 "후쿠시마 사례를 보면 일본에서 발생한 사고가 한국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원전 문제는 인류 공통의 숙제다"며 "원전 안전뿐 아니라 원전 산업과 지역 발전을 연계한 '인류의 번영'을 위한 숙제까지 기장포럼에서 다룰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이번 기장포럼에서 기장군은 원자력의과학산업단지의 발전상을 자랑하고, 원전 폐로 산업 육성을 위한 방안 지식을 공유한다.
기장포럼을 준비하는 부산대 이재우(국제협력과) 교수는 "기장포럼을 상설 국제기구로 격상시켜 원전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장기 목표다"고 말했다.
# "노후 원전 폐쇄하고 자연 에너지 늘려야"
■ 정수희 에너지행동 활동가
- 대학시절부터 환경 운동 열의
- 경제적·지속가능 에너지 강조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고 1주일은 멍하니 뉴스만 봤던 것 같아요. 잇달아 터지는 걸 보면서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고, 그 앞에서 폭발과 오염을 막을 수 없는 인간의 무능함과 무력함에 좌절했어요." 오랫동안 부산 지역에서 환경 운동을 벌인 에너지정의행동 정수희(37·사진) 활동가가 2011년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정 씨는 대학 시절 학생회 운동을 하면서 환경 운동에 뛰어들었다. 농촌봉사활동 대신 울주군 서생면으로 떠났던 환경현장활동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대학 시절부터 부산에서 해온 초기 탈핵 운동은 주로 발전소 인근 주민과 연대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마을에 들어가 주민과 집회를 열고, 핵 발전소를 둘러싸고 분열된 마을을 봉합하고, 체념한 주민을 설득하며 힘을 실었다. 정의로운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고민과 운동으로 2012년엔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주는 민주시민상을 받았다.
그러던 운동이 요즘은 좀 더 즐겁다. 탈핵이 주요 의제로 떠오르며 연대하는 활동가가 늘었고, 사회 분위기 또한 달라지며 공감하는 시민이 늘었기 때문이다. 과거엔 반핵 관련 기사에 "전기 안 쓰고 살 거냐" "대안이 있냐"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면 요즘은 탈핵으로 가야 한다는 댓글이 달린다고 한다.
정 씨는 거리에서 우연히 들리는 핵 발전소를 주제로 한 대화나 식당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고리1호기 폐쇄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라고 표현했다.
정 씨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더 많은 활동가와 함께하며 '이 사람과 딱 10년만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마음 먹었다. 벌써 만 4년이 지났는데 그간 시민 참여를 많이 끌어내 행복했다"고 전했다.
미래 부산의 에너지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할까. 정 씨는 재생 에너지만이 대안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핵발전소를 단번에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수명을 다한 발전소부터 차례로 가동을 중단하고, 그와 함께 태양에너지 등 자연 에너지 확대로 가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가 충분히 경제성 있고 지속 가능하다는 연구가 숱하게 나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이어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인 부산에 탈핵 바람이 불었는데, 이를 계기로 재생에너지 모범 도시에 도전하는 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