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리원전 방사능 누출 모의실험
- 90㎞ 떨어진 경남 고성까지 오염
- 사고 땐 대참사 가능성 알면서도
- 방호의류·약품 등 재원마련 부담
- 市 "대피대상 370만명 감당 못해"
- 주민긴급대피 범위 확대에 난색
- 환경단체 "30㎞까지 포함시켜야"
장면 1. "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터지면 90㎞ 떨어진 경남 고성군까지 오염된다." 지난해 10월 기상청이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에게 제출한 '동아시아 방사능 물질 확산 예측 모델 개발 보고서'의 내용이다. 기상청의 의뢰를 받은 대기환경모델링센터는 2010년 3월 17일 0시를 기점으로 방사성 물질인 세슘-137과 방사성 요오드-131이 퍼져나가는 모의 실험을 수행했다. 방사성 최고 배출량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초기와 같은 초당 1000G㏃로 정했다.
실험 결과, 사고 1시간 뒤 세슘-137의 농도는 발전소에서 560베크렐(㏃)/㎥로 측정됐다. 고리에서 남서쪽으로 7㎞ 떨어진 기장군 일광면에서도 543㏃/㎥의 세슘이 검출됐다. 사고 18시간이 지나자 90㎞ 떨어진 경남 고성에서 1079㏃/㎥의 최댓값을 기록했다.
장면 2. 지난 6일 오후 부산시청 국제회의장에서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재설정 공청회'가 열렸다. 비상계획구역은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핵방사선이 격납고를 뚫고 외부에 노출됐을 때 주민을 대피시키고 방진마스크가 딸린 방호의와 갑상선 방호약품을 지급해야 하는 지역이다. 핵발전소로부터 직선거리 8~10㎞이던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은 오는 5월부터 20~30㎞로 확대된다. 부산시는 이날 비상계획구역의 범위를 20㎞로 제안했다. 5~20㎞ 이내 거주 인구는 42만5000명이지만 30㎞까지 확대하면 인구가 373만 명이어서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환경단체는 '30㎞'를 요구했다.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는 "일본 후쿠시마 사고 때 30㎞까지 주민 대피령을 내리거나 옥내 대피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의 범위를 놓고 지방정부와 환경단체가 갈등을 빚고 있다. 정부가 20~30㎞로 어정쩡하게 그은 선이 불씨가 됐다. 양산시는 비상계획구역을 21.5㎞로 하려다 30㎞ 확대를 요구한 양산시의회와 대립했다. 20㎞를 고수하던 부산시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같은 사고가 고리원전에서 발생하면 고성까지 방사선 물질이 검출되는데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다"는 역풍에 휘말린 상태. 울산시는 다른 자치단체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중이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서토덕 원전안전특별위원장은 "최종 결정권을 가진 원자력안전위가 오는 5월 일률적으로 20㎞를 적용할 수도 있다"면서 "핵발전소 단지가 밀집한 부산은 비상계획구역을 가능한 한 넓게 설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넘겨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성대 김해창(환경공학과) 교수는 "기상청의 모의실험 결과는 지역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20~30㎞로 설정한 정부의 비상계획구역 설정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인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비상계획구역 확대에 따른 재원을 누가 부담할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자칫 방진마스크·방호의류·방호약품·방사선 감시측정기구 도입을 자치단체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부산시 시민안전국 관계자는 "몸속에 침투한 방사선을 해독하는 갑상선 방호약품의 구입비와 방재인력 교육·훈련비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부담할 예정"이라면서도 "방호의류 구입 계획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잘 알려진 일회용 방호복인 '타이벡스'는 한 벌에 약 2만5000원(1800엔) 정도다. 부산시가 모든 가정에 공급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자치단체들이 비상계획구역을 최소화하려는 이유 중 하나도 비용에 대한 부담 우려이다.
국내 방사능 재난 대책도 중앙정부가 주도한다. 중앙방사능방재대책본부와 현장방사능방재지휘센터가 총괄하고 ▷한국수력원자력이 사고 수습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사고분석·평가와 방사선영향 예측 ▷원자력의학원이 방사선비상진료 ▷자치단체는 주민 대피·보호를 맡는다.
김혜정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은 "발전사업자가 보고를 늦게 하거나 은폐하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고리1호기에서 두 번이나 전원상실 사고가 났지만 은폐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일본 정부도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고 닷새가 지나서야 갑상선 방호약품 배급을 지방정부에 허가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 한국 원전밀집도 세계 1위…日 원전사고 이후 각국 탈핵바람
전체 원전 발전용량을 국토 면적으로 나눈 지표를 '원전 밀집도'라고 한다. 밀집도가 높을수록 사고 때 피해가 크다.
한국은 0.2로 원전 10기 이상을 보유한 국가 가운데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다. 두 번째로 밀집도가 높은 일본(0.1)보다는 배, 유럽 국가인 프랑스(0.09) 영국(0.03) 우크라이나(0.03) 스웨덴(0.02)보다는 10배 이상 높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국가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독일이 오는 2022년까지 탈핵을 선언했다. 현재까지 모두 8개의 원전을 폐기했지만 전력 공급에는 이상이 없다. 스위스도 5기의 핵발전소를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국민투표를 통해 원전 신규 건설을 백지화했다. 이밖에 프랑스 벨기에 대만 등이 단계적으로 탈핵을 선언한 상태다. 정작 일본과 인접한 우리나라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은 물론 수명을 다한 원전 재가동을 강행해 지역사회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국내 전력 예비율은 15~20%에 달할 정도로 전력이 남아돌고 있고, 원전 1기의 전력생산량은 전체 전력생산량의 1%에도 못 미친다"며 "경제논리를 앞세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많은 원전 국가는 우리나라처럼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의 이격을 두지 않는다. 인접 자치단체 간의 불협화음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일본 30㎞, 독일 25㎞, 중국 20㎞ 벨기에와 핀란드 20㎞ 등이다.
# 후쿠시마와 비슷한 참사, 고리원전서 발생한다면 한수원 4815억 원만 배상
- 日·獨·스위스선 무한책임
지난 11일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4주기였다. 민간 발전사업자인 도쿄전력은 2011년에만 2조5249억 엔(약 34조2800억 원)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했다. 전체 피해 복구 비용이 81조 원에서 121조 원에 이른다는 추산치도 나온다.
부산 기장군 고리1호기에서 비슷한 참사가 발생한다면 어떨까. 한국수력원자력이 부담할 배상금은 3억 SDR(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에 불과하다. 지난해 4월 기준 1SDR은 1605원. 결국 총배상액이 4815억 원인 셈이다. 원자력손해배상법엔 손해배상액이 3억 SDR을 초과하면 '국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범위'에서 원조한다고 돼 있다. 원조의 범위도 자연재해와 같은 '사업자 과실 이외'로 제한된다. 4815억 원이 넘는 피해은 국민세금으로 복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1969년 원자력 손해배상법을 제정했을 땐 원전 발전사업자의 배상 책임이 '무한'이었다.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1997년 사업자의 최저 책임 한도액을 500만달러에서 3억 SDR로 상향하는 '원자력손해배상에 관한 비엔나협약 개정 의정서'를 채택하자, 2001년 유한 책임제로 바꿨다. 일본과 독일·스위스는 배상한도 설정이 없다. 미국의 104억 달러(약 11조7000억 원)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최수영 사무처장은 "우리 정부는 무한 책임에서 유한 책임으로 전환했다. 원자력 사업자한테 무한 책임을 지우는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김제남 의원이 2012년 원자력사업자의 배상책임 한도를 삭제한 법률 개정안을 냈으나 지난 1월 시행된 개정 원자력 손해배상법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 원전사고 피해규모의 광역성 |
|
스리마일섬(미국) |
체르노빌(러시아) |
후쿠시마(일본) |
발생시점 |
1979년 |
1986년 |
2011년 |
사고 원전 수 |
1기 |
1기 |
4기 |
당시 원전 수명 |
4개월 |
8년 |
30~40년 |
사고등급 |
5등급 |
7등급 (최고등급) |
7등급 (최고등급) |
피해 복구비용 (배상포함) |
7100만 달러 |
50억 달러 |
4조 4000억 엔 |
대피 소개 규모 |
20만 명 |
33만 명 |
15만 명 |
※자료 : IAEA(국제원자력기구) |
|
◇ 원전 주요국의 손해배상액(사고당) |
국가 |
사업자 배상한도 |
국가의 배상조치액(사업자 과실 외) |
미국 |
약 104억 달러 |
약 104억 달러 |
스위스 |
한도 미설정 |
11억 스위스프랑(약 1조 3300억 원) |
일본 |
한도 미설정 |
1200억 엔 (약 1조 6360억 원) |
한국 |
3억 SDR (약 4801억 원) |
500억 원 |
※자료 : 원자력안전위원회(2013년 원자력안전연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