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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도 분권이 희망 <1-상> 원전 관련법 뜯어고치자- 원전 재가동에서 소외된 주민

사고나면 피해 볼 주민 무시한 채…정부 "나랏일 군말말고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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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공급은 국가사무' 논리로
- 원전정책 밀어붙이기식 추진

- 고리1호기 2차 수명연장 하려면
- 의견수렴 공청회 거쳐야 하지만
- 참석 범위 제한…무산 가능성도

- 원전 건설·수명연장 등 결정 때
- 주민투표 도입·단체장 권한 강화
- 사회적 합의 이끌어 갈등 줄여야

지난달 26일 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전체회의.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계속 운전을 심의하던 위원 9명이 난상토론을 벌였다. 쟁점 중 하나는 '주민 수용성' 확보. 야당 추천 위원들은 "지난 1월 시행된 개정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노후 원자로 재가동에 앞서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초안 공람과 공청회 등 주민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 조석 사장은 당시 "안전성 검증이 이뤄지면 지역 수용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원안위 이은철 위원장도 월성1호기가 지난해 수명 연장을 신청한 만큼 소급적용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야당 추천위원 두 명은 27일 새벽 1시께 퇴장했다. 이 위원장은 기다렸다는 듯 투표를 진행했다. 결과는 7표 모두 찬성.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1호기는 개정 원자력안전법의 적용을 받는 첫 원자로이다. 한수원이 오는 6월 18일까지 2차 수명 연장을 신청하면 주민 의사를 듣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환경단체는 공청회를 비롯한 의견수렴 절차가 요식행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반핵부산시민대책위 정수희 활동가는 "공청회 참석 범위가 제한돼 있어 폭넓은 수용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공청회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고리1호기 1차 수명 연장을 앞두고 2003년 7월과 9월 원안위 주최로 열린 '고리1호기 안전성 관련 설명회'는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2012년 열린 신고리5·6호기 환경영향평가 공청회에서는 반핵 시민단체의 입장이 제한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도 '공청회가 2회 이상 개최되지 못하거나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면 공청회를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전 소재 자치단체장의 권한 강화는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꼽힌다. 오규석 기장군수는 "일본처럼 자치단체장에게 노후 원전 재가동에 대한 동의권을 부여해야 한다. 그러면 자치단체장이 주민투표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력 공급이 국가사무라는 논리로 지역주민의 의사를 무시하기에는 시대적 상황이 많이 변했다. 정부는 형식적인 공청회로 '할 일 다했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원안위 김혜정 위원은 "원전 반경 30㎞ 이내 모든 자치단체장에게 동의권을 부여하자"고 제안했다.

주민투표의 범위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새누리당 하태경(해운대기장을) 의원은 "지난해 5월 방사능방재법이 개정돼 원전 반경 8~10㎞인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이 상반기까지 20~30㎞로 확대될 예정이다. 노후 원자로 재가동의 전제조건으로 주민투표가 도입된다면 확대된 비상계획구역 주민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지자체의 권한 강화에 부정적이다. 주민투표나 자치단체장의 동의를 전제로 노후 원자로 수명 연장을 결정하면 국가 전력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수원 측은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은 특정지역에 국한된 문제여서 입지 선정 때 주민투표가 가능하다. 국가 전력수급계획의 중심인 원전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원자로 재가동 정책 결정에서 자치단체장의 사전 동의권을 부여하고 있다. 발전사업자가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임의로 조정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독일에서도 원전 운영 변경이나 폐로 때 반드시 주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국은 핵발전소를 재가동할 때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공개회의를 개최해 지역주민과 자치단체에 발언권을 준다. 이탈리아는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한 2011년 6월 국민투표를 통해 94%가 반대표를 던지자 2014년 예정된 4기의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한편 한수원은 고리1호기의 안전·경제성 평가에 주민 수용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반기에 2차 계속운전 신청을 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인 고리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30년의 운영허가 기간인 2007년 6월 가동이 중단됐다가 2008년 1차 계속운전(10년) 승인을 받았다.


# 원전 신규 건설 때 주민투표 의무화법, 1년이 다 지나도록 국회 상임위서 낮잠

원자력발전소를 새로 지을 때 주민투표를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안도 국회 통과 가능성이 희박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비례대표) 의원과 새누리당 이이재(강원 동해·삼척) 의원은 지난해 3월과 8월 '전원개발촉진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 측은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의 주민들은 찬반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대립한다. 전원개발사업 예정구역 지정 이전에 주민 의사를 물어 갈등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 의원의 지역구인 강원도 삼척시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 원전 유치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삼척시의회는 지난해 8월 유치 철회 주민투표 동의안을 가결했다. 주민투표 결과 유치 반대가 80% 이상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사무인 원전 건설은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전에 주민투표를 했다면 이런 혼란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의원 측 설명이다.

장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주민투표 시기를 '원전에 관한 실시계획 승인 이전'으로 못 박았다. 장 의원 측은 "주민투표 시기가 약간 차이 나지만 내용은 유사하다"면서 "미국은 개별 원전에 대한 투표 사례가 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는 원전 정책 전반에 대한 국민투표를 했다"고 설명했다. 두 개정안의 처리 속도는 빠르지 않다. 장 의원 측은 "지난해 3월 개정 법률안을 제출했으나 제대로 된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소속 의원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후쿠시마 원전 사고 난 일본은

- 핵발전소 건설·재가동 때 자치단체장 동의 얻어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4주기를 앞둔 지난 8일 도쿄에서 시민들이 원전 반대 가두 행진을 벌이고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일본의 자치단체는 원전사업자와 맺은 '원자력 안전협정'을 근거로 원전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다.

협정에는 ▷환경방사선과 온배수 측정·공포 ▷사용후 핵연료와 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 ▷운영 이상 때 입회 점검 ▷주변 지역 손해 발생 때 배상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핵발전소의 건설·변경에 따른 재가동 시에는 반드시 자치단체장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했다.

이시카와현이나 미야기현은 원전사업자가 협정을 위반하면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후쿠이현과 홋카이도는 아예 운전 정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담았다.

시의회도 원전 관련 주요 안건을 사업자로부터 수시로 보고받는다. 분기에 한 번 의회 정례회에서 환경방사선 측정결과 등 현안을 논의하고 연 1회 이상 원전 현장을 방문하는 감시 활동도 벌인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서토덕 원전안전특별위원장은 "지역 주민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원전 정책을 중앙에서 모두 결정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일본처럼 안정협정을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에서 원자력안전협정의 도입에 따른 법적 장해물은 없다.

한편 15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규슈전력 등 4개 원전사업자는 노후 원전 5기 폐로를 결정했다. 40년 넘은 노후 원전을 계속 운전할 때 대규모 비용이 들고,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사업자들은 추후 지자체와 폐로에 관한 실무협의를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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