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입지는 2005년 주민투표로 확정됐다. 반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설계수명이 다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재가동 여부를 지난달 27일 새벽 다수결로 결정했다. 주민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고리1호기도 2007년 똑같은 전철을 거쳐 2017년까지 연장 가동 중이다.
고리1호기를 폐로하려면 ▷발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2차 수명 연장 신청(마감시한 오는 6월 18일)을 포기하거나 ▷산업통상자원부가 현재 수립하고 있는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제외해야 한다.
다행히 '고리1호기 폐쇄'가 실현된다해도 불씨는 여전하다. 고리2·3·4호기와 전남 영광의 한빛1호기도 10년 이내에 설계수명을 다하기 때문. 정부가 수명 연장을 추진할 때마다 지금과 같은 사회적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경성대 김해창(환경공학과) 교수는 15일 "국내 에너지 정책의 가장 큰 폐단은 중앙 집중이다. 노후 원전의 영향권에 사는 주민들과 자치단체장은 불안에 떨면서도 발언권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대 핵단지인 부산 울산 경남이 '원전 에너지 분권' 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부산시가 지난 1월 완료한 '원자력 안전·방재체계 구축 용역' 보고서는 "방폐장은 주민투표를 의무화한 반면 더 위험한 시설인 원전 수명연장 과정에서 주민의사를 묻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자치단체장의 사전 동의부터 제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를 수행한 부산대 이재우(국제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원자력기구도 '지역사회'를 주요 이해당사자로 인정하고 정책 참여를 권고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원전 정책은 국가사무여서 자치단체장 동의나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강원도 삼척 주민들이 주도한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반대 85%) 결과도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원전 수명 연장 때 자치단체장 동의 의무화'를 담은 정의당 김제남 의원의 원자력안전법 개정안도 지난해 정부 반대로 폐기됐다.
그 대신 지난 1월 시행된 개정 원자력안전법은 노후 원전 계속 운전 심사 때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과 공청회 개최만 의무화했다. 동의대 김유창(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원전 확대정책을 펴는 정부가 공청회에서 나온 폐로 요구를 수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새누리당 하태경(해운대기장을) 의원은 "원전 사고는 대부분 운영 인력의 실수로 발생하는데 원안위는 기술적 안전성만 고려해 수명 연장을 승인해왔다"며 "원전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큰 만큼 수명 연장의 전제 조건으로 자치단체장 동의나 주민투표 도입을 검토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전 소재지 반값 전기료 도입과 5000억 원도 안 되는 원전 사고 손해배상금 확대도 에너지 분권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