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과 휴일, 궂은 날씨에도 2만여 명이 동해남부선 옛 철길(폐선 부지)을 찾았다. 뒤뚱뒤뚱 선로를 걷는 아이 손을 잡은 아버지와 어머니,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 쌍둥이처럼 닮은 자매 등 옛 철길에서 추억을 만들려는 사람들이다. 과연 이들의 추억 만들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동해남부선 옛 철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 이 풍광은 돈 주고도 못 사

▶정옥숙(여·46) 백선태(52) 정정순(여·42) 씨 가족

"주위 사람들 이야기만 듣고 이곳에 처음 왔는데 정말 아름답다. 부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 개인적인 바람은 옛것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젊은 시절 포항에 갈 때 일부러 동해남부선 기차를 탔다. 누구나 그렇듯 창밖의 바다 풍경을 보려고 기차를 탔다. 기차가 끊긴 뒤 해안길을 볼 수 없어 너무 아쉬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풍경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힐링을 중요시하는 시대다. 상업화를 떠나 누구나 이곳을 찾아 조용히 쉬었다가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레일바이크 설치 절대 반대

▶김미정(여·52) 씨

"주말마다 부산의 좋은 길을 걷는 것이 큰 행복이다. 해운대 미포에서 출발했는데 주위 사람도 상업적인 개발은 절대로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 나도 한참 생각해보고, 남편과도 얘기해봤는데 상업화는 안 된다는 답을 내렸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이렇게 평화로운 길에 레일바이크 같은 시설물이 들어온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왜 그렇게 급하게 개발을 하려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옛 해운대역사는 명품 공원으로, 폐선 부지는 지금처럼 시민들이 자유롭게 걷는 길로 놔뒀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 80년 역사 간직 자산 지켜야

▶중학교 동창모임 오명자(여·61) 씨 등

"동해남부선 철길은 오랜 친구 같은 존재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언제라도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줄 그런 친구 같은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게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오다 보니 부산 시민뿐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분이 일부러 찾아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만큼 많은 국민이 이 길을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져 80년의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자산이기도 한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가 앞으로도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줬으면 한다."


# 공청회 열어 의견수렴 우선

▶박용환(53) 이선자(여·54) 박소혜(여·22) 씨 가족

"보존으로 방향을 잡아도 관리에 문제가 있을 것이고 개발하면 상업화로 인한 문제도 생긴다. 보존이냐 상업화냐를 놓고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 현재만 봐도 당장 화장실, 벤치 등 편의시설이 없어 무작정 보존만 하는 게 해답은 아니다. 주변 시설과 도로 접근성 등을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 컨소시엄 몇 군데만 참여해 상업화하는 것은 투자 대비 효과를 제대로 거둘 수 없다. 시민공청회 등을 열어 의견수렴을 먼저 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 업자 돈벌이 도구 전락 안돼

▶정부대(27) 박은영(여·31) 박효진(여·30) 오병현(41) 씨

"동해남부선 철길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대구에서 찾아왔다. 탁 트인 바다에서 느껴지는 시원함과 더불어 작은 어촌의 고즈넉한 분위기까지 느껴져 정말 좋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부산 시민이 사랑할 만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 자체만으로 훌륭한 관광상품이라고 생각된다. 몇몇 민간사업자의 수익 창출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부산 시민뿐 아니라 전 국민을 위해서라도 상업개발보다는 모든 사람이 즐기는 쪽으로 가꿔나갔으면 한다."


# 개발하려면 훼손은 최소화

▶직장 동료 이선애(여·58) 이선남(여·58) 씨

"오래 전 기차를 타고 다니던 길을 걸을 수 있다기에 와 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주위 풍광이 아름답다.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는 부산 시민의 소중한 자산 중 하나다. 그렇다고 보존을 하기 위해 무작정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폐선 부지를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더욱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시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개발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 결혼 후 아이와 다시 오고파

▶문미정(여·36) 이재관(35) 씨 커플

"주위 얘기를 듣고 한 번 가보자는 생각에 왔는데, 이곳처럼 아름다운 데이트 코스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냥 이 상태로 보존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소박한 분위기가 좋고,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 있는 곳보다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더욱 좋다. 곧 결혼할 예정인데 나중에 우리 아이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 있었으면 한다."


# 소중한 추억길로 남겨둬야

▶정지용(38) 김은주(여·38) 씨 가족

"벌써 몇 번째 이 길을 걷고 있다. 한 번 왔던 아들이 또 가자고 졸라대는 통에 계속 오게 되더라. 올 때마다 도심 오지에 온 느낌이다. 세상 사람 중 몇이나 이처럼 아름다운 해안 철길을 가족과 걸으며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을까. 시민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굳이 레일바이크 등 상업시설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시민의 소중한 자산을 우리 아이들 세대까지 온전히 물려줬으면 좋겠다."


# 모두 만족하는 방안 모색을

▶백선기(42) 구옥주(여·40) 씨, 백채원(10) 양, 백승민(8) 군 가족

"동해남부선 옛 철길은 가족끼리 나들이하기에 제격이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 수 있고, 어른들은 시원한 바다를 보며 사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왜 개발하려는지 모르겠다. 해운대만 해도 해안선을 따라 온통 고층 빌딩인데, 이곳만이라도 상업적 색깔을 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아주 천천히, 충분히 고민한 뒤 개발하면 모두가 만족하는 방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정리=장호정 김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