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 당시 24살 고호석 씨 페북
- "진우가 단 수번 21번 내 것"

- 진우 실제모델 송병곤 씨
- "잘 만든 한 편의 인권영화"

영화 '변호인'의 흥행 돌풍이 거세다. 개봉 5일 만에 관객 2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영화는 1981년 부산지역 대표적인 공안사건인 '부림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실제 부림사건 피해자들의 현재 모습도 재조명 받고 있다.

총 22명 피해자의 대부분이 현재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 사건 당시 24살이었던 피해자 고호석(56) 씨는 영화를 두 번이나 봤다. 고 씨는 24일 기자와 통화에서 "첫 번째 관람 때 사실과 허구를 분석하느라 마음이 불편해 몰입하지 못했다"며 "두 번째 관람에서야 감정이 이입돼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최근 고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화 관람평을 게재했다. 페이스북에는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겠지만 제가 부림사건 당시 달았던 수번 21번을 진우가 달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는 글이 적혀 있다.

고 씨는 "영화 마지막 부분인 1987년 민주화 항쟁 장면에는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며 "실제로는 대부분 피해자들이 6월 항쟁 한가운데서 민주화를 외쳤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고 씨는 대동고교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전교조 부산지부장을 지냈다.

또 극중 진우역의 실제 모델은 법무법인 부산의 송병곤(55) 사무장이다. 송 사무장은 "잘 만든 한 편의 인권영화라고 생각한다"며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민주당 부산시당은 지난 20일 송년회 차원에서 영화를 단체관람했다. 이 자리에는 부림사건으로 구속됐던 박욱영(56) 해운대구의원도 함께 했다. 박 의원은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극 중 송우석 변호사가 변론 과정에서 '국가는 국민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한 부분"이라며 "영화상에서는 피해자들이 재판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지만 실제 우리들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재판에 임했다"고 말했다.

장림여중 음악교사로 재직 중인 윤연희(여·53) 씨는 "실제 재판에서는 '현대 휴머니즘'이라는 책에 대해 언급했다"며 "당시에는 금지서적인 탓에 일본어 원서로 책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재판을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책을 읽고 내용을 설명한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진걸(54) 노무현재단 부산지역위원회 공동대표는 지난 23일 어머니를 모시고 영화를 봤다. 이 대표는 "요즘 사회 분위기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기분이 묘했다"며 "어머니도 한숨을 쉬고 눈물을 훔쳤다"고 말했다.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 최준영(61) 씨는 "영화 개봉 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올해 안에 영화를 관람할 계획"이라며 "고문 후유증이 심했는데, 재활을 통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정귀순(여·53) 씨는 '사단법인 이주민과 함께'에서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해 현재도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부림사건(釜林事件)

부산의 학림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부림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신군부 정권 초기인 1981년 9월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기소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부산지검 공안 책임자로 있던 최병국 검사가 지휘했다. 당시 김광일 변호사와 함께 변론을 맡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