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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선율에 신들린 재즈 피아니스트 하지림 씨. |
- 대학 졸업 후 선배 권유로 시작
- 재즈 1세대 이판근 선생 사사
- 결혼 후 10년간 잊고 지내다
- 남편 도움으로 2009년 뉴욕행
- 귀국 후 빅밴드·협연 등 활발
- 올 겨울엔 앨범제작·연주투어
재즈와 친해지려면 피아노 선율과 친해지란 말이 있다. 리듬과 선율과 화성을 온전히 하나의 결합체로 표현하는 최고의 악기야말로 피아노이기 때문이다. 재즈에서 풍부한 감성과 화려한 테크닉을 표현하는데 피아노만 한 악기가 없고 그래서인지 뮤지션 중 피아니스트가 가장 많은가 보다.
지난달 중순 부산 남구 대연동 라이브재즈클럽 '몽크'는 '러브 레터'의 공연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평일인데도 다양한 연령의 남녀 마니아들이 좌석을 꽉 채웠다. 색소폰 최창근, 베이스 허진호, 드럼 곽영일, 보컬 최은아 그리고 재즈의 꽃 피아노는 재즈 피아니스트 하지림(42) 씨가 맡았다. 피아노가 '나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사랑'으로 서막을 연다. 악기군들이 앙상블을 이루고 하 씨의 가녀린 손가락이 춤을 추며 건반 위를 구른다.
피아노 의자까지 들썩거리며 재즈 속에 빠져든다. 드럼도 신이 났고 하 씨의 긴장하던 표정이 어느새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세 번째 피아노곡 '언제나 나의 왕자님이 올 거야'에서는 회화적인 느낌의 유머가 연주 내내 번지면서 요정 같은 익살스러운 매력을 그녀의 신비스러운 긴 손가락으로 그려낸다.
불협화음과 효과적인 치환(置換) 그리고 리듬의 절묘한 변화가 가득찬 재즈는 객석을 가득 채우고 흐른다.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두들겨 대는 호쾌하고 신랄한 연주가 숨을 멎게 한다.
하 씨는 동래구 명륜동에서 태어나 부곡여중, 중앙여고를 졸업하고 1989년 부산대 이공계에 진학한다. 당시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탔던 '썰물'에서 여성 보컬을 뽑는 오디션에 참가해 합격했으나 왠지 석연찮아 그만두고 만다. 이후 대학 민중가요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노동운동에 관심을 두고 적극 참여한다.
1993년 대학 졸업 후 방황할 때 동아리 노래패 선배의 권유로 재즈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당시로선 재즈가 일반화되기 전이었지만 동네에 있는 조그만 재즈학원을 찾아갔다. 학원 선생의 소개로 부산에서 유일한 재즈뮤지션 연관호 선생(수영동)을 만나 기본 삼화음 코드부터 배우고 재즈 코드로 넘어갔다. 처음 접해보는 재즈음악이지만 그 리듬에 반했다. 악보에 지시된 대로만 연주하는 클래식과는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는 전율마저 일었다. 신이 나서 열심히 배웠다. 1995년 연관호 선생의 도움으로 재즈 1세대의 이판근 선생을 찾아 서울 연신내로 갔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일찍 부인과 사별한 이판근 선생은 벽면 하나에 재즈 CD로 가득 차 있을 정도로 재즈 속에서 살고 있었다. 재즈 교본과 배울 스승마저 없는 재즈 초창기에 재즈 신화를 창조한 이 선생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열심히 개인지도를 받았다. 뒤에 합류한 후배 이노경은 재즈의 열정에 이끌려 1995년, 재즈의 고향 미국 보스턴 버클리 음대로 먼저 유학을 떠났다. 하 씨도 선생의 권유로 1997년 버클리 음대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간 중·고생 과외와 피아노 개인지도 등으로 모은 비상금을 털어 유학 비용을 충당했다.
외항 선원이었던 부친은 피아노 공부하는 2남 1녀의 막내인 지림을 위해 귀국할 때마다 유명 재즈 음반을 구입해 선물했다. 어릴 땐 멋모르고 아버지가 주는 거니까 별다른 생각 없이 듣고 즐겼지만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감수성이 남다른 소녀에게 일찍 재즈 음악의 잠재력을 일깨워 준 것은 아버지의 배려였다. 버클리 음대에서 여름학기 3개월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20세 때부터 사귀어 온 동갑내기와 결혼했다. 제례를 비롯한 대소사가 많았던 시댁에서 열심히 며느리 노릇을 했다. 음악도 잊고 살았다. 그렇게 10년이 되던 어느 날 부군에게 음악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고 매달렸다. 그간의 노고를 고맙게 여긴 부군의 도움으로 토플 공부부터 했다. 음악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다. 38세 되던 2009년 겨울, 미국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롱아일랜드의 '파이브 타운즈 칼리지(F.T.C)'에 진학해 이론공부에만 머물었던 재즈를 구체적으로 활용하는 공부를 했다. 재즈 오케스트라 편곡법도 익혔다. 독일계의 재즈 프로뮤지션들과도 교류해 이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연주할 기회도 많았다. 졸업연주회도 이들과 함께 했다. 지난해 겨울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해설이 있는 재즈콘테스트'(사상문화원)를 연다. 진주시립국악관현악단과도 협연하고 이상근 국제음악제에서도 같이 연주한다. 귀국하던 해 11월 시민회관에서 귀국연주회도 가졌다.
1996년부터 스승 이판근 선생의 부산 후배 박태식(76·트럼본) 선생과도 연계, 요트경기장의 빅밴드 '팝앤드재즈'에서 피아노를 맡게 됐다. 팝앤과 합주하면서 재즈 합주를 익히고 색소폰 전창선과도 이중주를, 여기에 베이스기타도 얹어 삼중주를 한다. 이때의 인연으로 지금도 박태식 선생을 비롯한 문화쉼터의 실버뮤지션들과 계속 협연하고 있으며, 고등학생을 찾아가는 음악 행사를 비롯한 음악봉사도 벌써 15년째 하고 있다.
요즘 들어 재즈 피아노가 더 좋아졌다. 즉흥 연주와 싱코페이션(당김음)으로 흘러가는 스윙리듬이 아주 좋다. 빅밴드에 입단 후 재즈 경력이 60년이나 되는 재즈거장들에게 배우는 스윙연주는 신바람이 난다. 대학에서 배웠지만 수많은 연주로 기량을 쌓은 거장에 비교하면 초보에 불과했다. 그 초보가 10여 년 사이에 재즈피아니스트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기까지 한다.
올겨울 드럼, 베이스, 피아노의 재즈 피아노 트리오 앨범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이 앨범을 들고 서울, 부산 등지에서 연주 투어를 할 계획이다. 대학 시절 미국에서 함께 연주했던 독일계 프로뮤지션들과도 미국에서 다시 만나 연주할 작정이다. 할 수만 있다면 북한 아이들과 함께 리코더만이라도 좋으니 조그만 오케스트라를 만들 기회가 있기를 희망했다.
이제 중학교 다니는 두 딸에게도 희망을 품어본다. 항상 지켜보며 말없이 성원하고 있는 부군에게 감사하는 뜻에서라도 멋진 재즈피아니스트가 되리라 다짐한다.
문의 010-8108-2493/부산민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