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하는 농민

 

- 선거 때는 인상 약속하다

- 수매 때면 말 뒤집기 일쑤

- 직불금도 현실과 동떨어져

 

# 차별하는 정부

 

- FTA로 농산물 시장 혼란

- 무역흑자 농촌 재투자 요구

- "시장 개입 말고 자유화를"

경남 사천시 곤명면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이병현(63) 씨는 추수를 끝내고도 고민이 많다. 8000여 평(40마지기)의 논에 벼를 심어 지난해보다 소출은 20여 섬이 늘었다. 그러나 쌀 목표가격(정부의 기준가격·80㎏당 17만83원)은 이전과 별 차이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농협 미곡처리장 등에 수매하기 위해서는 쌀의 수분율을 15% 이하로 낮춰야 하므로 건조비와 운반비 재료비 등을 더 부담해야 한다. 당연히 인건비도 늘어난다. 귀찮아서 일반 미곡상을 통해 쌀을 팔려고 하니 80㎏당 15만~16만 원 선에 거래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초여름 날씨가 좋고 여름 햇볕이 뜨거운데다 적당한 바람 등으로 벼 생육이 양호했다. 또 태풍 등 자연재해가 거의 없어 쌀 생산량은 재배면적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보다 늘어났다.

■커져가는 농민 분노

그래도 농민들은 걱정이다. 비료나 농약값은 물론이고 인건비까지 크게 올라 애써 지은 농사가 풍년이 들어도 남는 것이라고는 고생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물가안정 등을 이유로 지난 2005년 이후 8년째 쌀 목표가격을 동결하고 있다가 올해 올려준다는 게 겨우 80㎏당 4000원이다. 

당연히 농민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선거 때만 되면 쌀 수매가 인상이니 현실화니 등을 약속하다가도 정작 추수가 끝난 뒤 수매 때가 되면 내뱉은 말을 뒤집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남지역 농민들이 나락 적재 시위를 하는 등 조직적인 반발이 확산되는 중이다. 일선 시·군의회들도 쌀 가격 현실화를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문을 연이어 채택하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농민들이 분노하는 이유에 대해 우선 생산량에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감소하면서 판로가 해마다 줄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인 고정 직불금 제도(쌀농사를 지으면 ㏊당 80만 원 보장)와 변동 직불금 제도(쌀 목표가격 아래로 산지 쌀값이 내려가면 차액의 85%를 보장)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쌀 목표 가격은 80㎏당 17만83원으로 8년째 변동이 없다. 반면 지난해를 기준으로 할 때 경남도내 농협 미곡종합처리장과 민간 유통업자들의 수매 기준 가격은 80㎏당 15만 원 정도다. 농민들은 쌀 목표가격이 높을수록 돌아오는 돈이 많으므로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23만 원가량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 법규 개정 시급

농업이 2, 3차 산업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점도 농민들이 정부의 농정정책에 불만을 가지는 또 다른 이유다.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면서 대신 공산품을 더 많이 수출하기로 했다면 거기에서 생긴 이익의 일정 부분만이라도 농촌에 재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농산물 가격이 제값을 받을 처지가 되면 정부가 '먹거리 안정'을 이유로 값싼 외국산을 마구잡이로 방출해 시장질서를 흐린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농산물 시장을 이왕 관리하려면 가격 현실화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시장에 완전히 맡기라는 것이 농민단체들의 주장이다.  

농민들은 대책 마련에는 시일이 걸리는 만큼 우선 올해 쌀값만이라도 80㎏당 23만 원을 보장해 달라는 입장이다. 또 현행 ㏊당 70만 원으로 되어 있는 고정 직불금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당 100만 원으로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회가 하루빨리 관련 법규를 처리하는 것도 시급하다. 현재 19대 국회에는 물가인상분과 생산비를 반영해 변동직불금을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법률 개정안 3건이 계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