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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민과 함께'가 주최한 한글학교 말하기대회에 참가한 이주민들이 행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주민과 함께 제공 |
- 부산진구 전포동에 둥지
- 17년간 인권 상담역
- 근무 없는 일요일엔 이주민 몰려 북새통
- 옛날엔 회사에 전화하면
- "네가 뭔데" 답하기 일쑤
- 요즘엔 "악덕사장 아냐"
- 인권침해 인식 변화
- 통·번역센터 등 개설, 5개 부설기관 운영
- 다문화인권 교육에다 본국 장학사업 등 지원
부산 부산진구 전포동의 한 주택가. 번화가인 서면에서 조금 벗어난 이곳에 외국인의 왕래가 잦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곳도 분명한 '지구마을'이다. 이주민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이주민과 함께'가 있기 때문이다. 1996년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을 모태로 시작한 '이주민과 함께'는 17년간 이주민의 인권 개선과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개선 등의 활동을 펼쳐왔다.
이주 노동자가 근무하지 않는 일요일이면 이곳은 100여 명의 외국인으로 북적인다. 여전히 열악한 인권 관련 상담이 줄을 잇고, 무료 진료를 받으려는 이주민도 많다. 중국, 인도, 네팔 등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이 나라별로 커뮤니티를 꾸려 본국의 명절이면 행사를 연다.
■말 못하는 이주민 떼인 돈 받아주다 시작
'이주민과 함께'는 이주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단체. 노동운동을 하던 정귀순 대표가 1990년대 중·후반 유입되기 시작하던 이주 노동자로 관심을 돌린 것이 출발이다. 당시 겉으로 보기에는 내국인의 근로 조건이 상당한 개선을 이룬 상태였다. 그러나 '나쁜 일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내국인이 빠져나간 자리를 외국인이 메웠다.
당시 정 대표가 이주민을 만날 때마다 "요즘 일하기 괜찮아요"라고 물어보는 일이 잦아졌다. 내심 괜찮다는 답변을 기대했지만, "월급을 못 받았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임금을 주지 않은 회사에 전화해서 따지는 게 일이었다. 전화를 받은 회사의 반응은 '네가 뭔데 이러냐, 한국 사람이 왜 외국인 편을 드느냐'로 비슷했다.
당시 이주 노동자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적용받았다. 정 대표는 "연수생이라는 말처럼 기술 가르쳐 주는데 돈까지 줄 필요는 없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대다수 이주 노동자들이 기숙사에 사니까 고용주가 밤낮없이 부려 먹으면서도 한 달에 5만~10만 원을 주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절감한 정 대표는 단체를 조직하고 다른 단체와 연대해 이주민 인권 개선운동을 펼쳤다. 2004년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던 산업연수생 제도는 폐지되고, 고용 허가제가 시행됐다. 그렇다고 '이주민과 함께'의 인권 상담이 줄지는 않았다. 고용허가제 역시 이주민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해 체류권을 사업주에게 귀속시키는 등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 정 대표의 전화를 받은 사업주는 "제가 악덕 사업주는 아니고요"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주민의 인권 침해가 큰 잘못이라는 인식은 생긴 셈. '이주민과 함께'의 17년이 이룬 큰 변화다.
■이주민 고충 보듬는 부설기관
'이주민과 함께'는 5개의 부설기관을 가지고 있다. 저마다 이주민 인권 신장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부설기관은 이주 여성 다문화 가족센터 '어울림', 이주와 인권 연구소, 다문화인권 교육센터, 이주민 통·번역 센터 '링크', 아시아평화 인권연대 순으로 개설됐다.
이주 노동자 상담을 전문으로 하던 '이주민과 함께'는 2000년대 들어 결혼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결혼 이주 여성과 이들이 이룬 다문화 가정에 대한 전문 상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주로 임금체불, 폭행 등으로 고민하던 이주 노동자와는 달리 이주 여성은 문화 적응, 가족 갈등으로 고민해 상담 내용이 판이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결혼 이주 여성과의 상담은 개인에게는 효과를 봤지만 큰 틀에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또 이주민에 관한 정책을 연구하는 이주와 인권 연구소를 세웠다. 변화를 위해서는 한국인의 인식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국내 아동과 청소년에게 다문화를 교육하는 다문화인권 교육센터도 만들었다.
아시아평화 인권연대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앞의 부설기관이 국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풀기 위해 설립됐다면, 아시아평화 인권연대는 밖으로부터 변화를 추구한다. '이주민과 함께'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본국에서 장학사업, 학용품 지원 등 자선사업을 벌인다. 이들의 작은 도움을 받은 외국인이 한국으로 이주를 결심할 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취직이 아니라, 개인의 발전을 위한 유학 등의 목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취지다.
링크에서 통역 활동을 하는 네팔 출신 쿠마리 구룽(37) 씨는 "한국에 네팔 출신이 많지 않아 기댈 곳이 없어 힘들었다. 이곳에서 다른 네팔인을 많이 만나 안정을 얻고 상담은 물론 한국어 교육, 치과 진료까지 해줘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한아름 '링크' 소장
- "통역만 있으면 이주민-한국인 얼마든지 소통"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특징이 언어예요. 그런데 이주민은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통하는 사회에서 철저하게 '남'이 되고 있죠. 통역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주민과 한국인이 연결될 수 있어요."
한아름(사진) '링크' 소장은 이주민 통·번역 서비스의 필요성을 이같이 강조했다. 실제 병원 경찰서 법원 출입국관리사무소 등과 다양한 기관에서 링크에 통역사 파견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수요는 많다. "이주민은 병원에서 의사에게 진료받을 때나, 경찰 조사나 법정에 설 때 등 통역이 필요한 순간이 많아요. 그런데 이주민이 직접 통역을 의뢰한 경우는 절반밖에 안 되고 나머지 절반은 기관 의뢰예요. 이주민 혼자서 문제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운 현실이 읽히는 부분입니다."
한 소장은 링크 같은 민간 통역 서비스 제공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기관의 통역사가 이주민의 말이 맞는데도 사업자의 입장만 강조해야 할 때가 있어 기관 소속 통역사로서 한계를 느낀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노동청이나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 통역 인원이 배치되기도 하지만, 해당 기관의 입장이 강조되곤 해 이주민의 권리 보장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어요. 이주민이 통역 역량을 갖추고 같은 국가 출신의 이주민을 도울 수 있게 체계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 "언어 장벽 함께 허물자" 통·번역 심포지엄 개최
- 오늘 부산대병원 암센터서 파독 간호사 특강 등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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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민과 함께'에서 주최한 아시아문화 한마당 장면. |
'이주민과 함께'가 최근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언어 장벽 허물기다. 지난 6월 통·번역 센터 '링크'를 개소해 경찰 법원 병원 등에 방문할 때 통역이 필요한 이주민을 돕고 있다. 이곳에는 현재 30여 명의 자원 활동가가 무려 17개국의 언어를 통·번역하고 있다.
링크는 다양한 언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활동가들이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 의료, 노동 등 영역을 나눠 양성 교육을 하고 지필 시험과 현장실습까지 마쳐야 활동가로 위촉하기 때문이다. 이주민뿐만 아니라 지역 다문화 센터 등에서도 통역 활동가 파견을 요청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링크는 14일 오후 3시 서구 아미동 부산대학병원 암센터에서 이주민 통·번역 지원 체계 확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부산지역에서 이주민이 통·번역을 이용할 수 있는 공적 지원체계를 살펴보고, 독일·일본 등 해외의 이주민 통번역 지원체계와 비교해 이주민 통번역 지원체계 확충을 위한 민관 협력방안을 논의한다.
특히 이날 파독 간호사 출신인 최영숙 한민족 유럽연대 의장의 특별 강연도 마련된다. 최 의장은 독일도 이주민을 언젠가는 본국으로 돌아갈 '손님 노동자'로 인식해 많은 문제가 생겼으나 지방정부와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이주민을 위한 통역 전문가를 양성하면서 문제가 많이 해결된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