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주경업이 만난 부산을 지키는 꾼·쟁이들 <41> 두석장 임판섭

놋쇠 윤기나게 망치로 수천 번 두드리는 '장인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11-10 20:17:01
  •  |   본지 2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나비경첩 문양을 백통판에 두드려 새겨 넣는 임판섭 두석장.
- 15세 때 김덕룡 문하 들어가
- 서울 거쳐 좌천동에 공방차려
- "가구 들이면 방 훤해" 자부심

- 범어사 '연'에 소용되는
- 무쇠장석 60여 가지 창안

부산 동구 좌천동 가구거리 뒷길 골목 안쪽 20여 평 공방에는 두석장 임판섭(62) 씨의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두께 1.2㎜ 백통판에 나비문양 한 쌍을 만들고 있다. 끊어내고 두드려 펴고 못구멍을 뚫고 둥근 정으로 세부장식을 새겨 넣은 후 거친 모서리를 줄로 다듬어 마감한다. 두석장이란 놋쇠를 다루어 장석(裝錫)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다. 본래는 구리에 아연을 합금하여 썼으나 근래엔 구리에 니켈을 합금한 백통[白銅]을 주로 다루는 것으로 바뀌었다. 은빛을 즐겨하는 시대풍조에 따라 백통일변도로 치우쳐 놋쇠일을 거의 하지 않게 됐다.

백통으로 만든 장석은 농·반닫이·장롱 등에 경첩용 혹은 장식용으로 화려하게 만들어 붙인다. 아파트 생활하면서 안방이 없어진 요즘 두석장을 고집하는 까닭을 물었다. "아직까지 가구를 필요로 하고 만드는 장인이 있기 때문입니더. 단색으로는 백통이 맑고 곱고 수명도 오래가지만, 배합한 색으로 더 아름다운 것은 두석이지예. 두석으로 꾸민 가구를 들여놓은 방은 한마디로 훤함니더. 특히 옛 기생들 방은 더욱 요란하고 화려했었지예. 사대부들은 부를 자랑하는 기준으로 삼았었고요." 특히 두석은 맞춤장에만 쓰였기에 더욱 부의 척도가 되기도 했었다.

두석장. 엄밀히 말하면 백통장인 임판섭 씨는 나전칠기로 이름난 통영 명정동 출신이다. 명정동과 이웃한 문화동은 한 집 건너 나전칠기방이었다. 삼도수군통제사 시절부터 있었던 '통영 열두공방'이 민간으로 널리 퍼진 때문이기도 했다. 6남 1녀 중 3남. 조부 때는 농장을 경영해 형편이 넉넉했으나 해방과 더불어 토지개량 이후 농토를 잃기 시작하면서 부친 때부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다. 부친은 막노동으로 7형제를 뒷바라지했으나 워낙 힘들어 거제도 사등으로 이사갔다 어린 판섭이 5학년 때 다시 통영으로 온다. 충렬초등 졸업 후 부친을 따라 당시 3대째 두석기능보유자인 김덕룡(1916~1996) 선생 공방에 들어간다. 15세였다.

당시 스승의 공방 주위엔 자개농을 전문으로 하는 공방으로 백골공방, 칠공방, 나전공방 등이 지천이었다. 경첩(문짝을 다는 데 쓰는 장식)에 소용될 굵은 철선을 철물점에서 구입해 경첩에 들어갈 크기만큼 끊고 바르게 펴는 일부터 배웠다. 그리고 완성된 제품을 문질러 광을 내는 작업도 하였다. 1년 뒤엔 두석판에 본을 그려 모양에 따라 따내는 작업을 하면서 본을 펴서 썰고 못을 치기 위한 구멍을 뚫었다(지금 이 작품은 모두 기계화 되었다). 나비문양 하나 완성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오전 8시 출근, 바로 작업에 들어가서 오후 6시께 일을 마쳤다. 첫 월급으로 300원(당시 쌀 한 말 150원)을 받았고 3년 후 선배가 새로 여는 두석공방에 기술자로 스카우트됐다. 바야흐로 기술자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임판섭 씨의 영원한 스승은 김덕룡 옹이었다. 일이야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만 스승은 창의적인 능력을 높이 평가해 주었다. 일이 몸에 배어 솜씨를 발휘하면서 앞선 자료와 정보를 활용할 줄 알게 되었고 좋은 디자인을 활용해 여러 장석들을 만들어냈다.

좁은 통영 땅에 두석공방만 북신동과 문화동에 각각 두 곳, 충렬초등 건너편 명정동에 한 곳 등이 있지만 더러는 기능공들이 한 명 내지 두 명씩 작업하는 환경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한 스승밑에서 배워 서로 보완하면서 일거리를 나누어 가졌기에 공생하는 환경이었다.

한편 전통공예의 쓰임이 커 소비처가 넓은 서울은 장석작업이 활발했다. 27세 되던 해 서울 마장동으로 진출, 서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장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통영보다 디자인이 화려하고 때로는 현대적 미적 감성이 풍부한 장석들을 보고 놀라면서 이를 활용하는 능력도 키워나갔다.

4년 뒤인 1981년 부산 좌천동 가구거리 뒷골목으로 내려왔다. 자개골목과 농방골목도 있어서 이곳에서 쓰임도 크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골목안 10평에 공방을 차리고 범일동 처자와 결혼도 했다.

일감이 많아지면서 공방도 넓혀 금형틀도 120여 개, 프레스형도 400여 개나 되는 큰 공방이 되었다. 펜치와 연마끌이 종류대로 정리돼 있고 굴림망치, 평망치, 그림쇠, 끄심쇠, 머릿돌들도 제자리에 놓여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임판섭 씨는 지난해 겨울부터 올해 4월까지 마무리한 범어사 연(輦)에 소용되는 무쇠장석 5종 60여 가지를 창안해 만든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불교의식에 사용되던 연은 불보살의 연[蓮臺]을 상징하여 만든 것으로, 그 형태는 왕이 거동할 때 타던 가마를 불보살 또는 불사리를 모시는 가마로 축소하여 만든 것이다.

어깨에 둘러매거나 드는 1단과 불보살을 모신 2단 그리고 지붕의 3단으로 만든 이 가마는, 나무로 만든 백골에 60여 가지 무쇠장석을 부착해 주칠(朱漆)과 옻 도장공정으로 마무리지었다. 손잡이 무쇠장석에는 용을 새기고 몸체와 보개(지붕) 부분에도 칠보문양과 함께 아름다운 수실을 드리워 장엄하다. 지난 7월 백중행사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자물쇠, 반닫이 자물쇠 그리고 수박자물쇠, 북자물쇠, 박쥐서랍손잡이 등 경첩과 열쇠의 전통적인 백통장석은 죄다 만든다. 제자 임수관(55) 씨가 15년간 스승을 보필하고 있다.

일의 공정이 까다롭고 궂은일이어서 입성은 남루해 보이지만 공방을 거쳐 나가는 작품들엔 반지르르 윤기가 돌아 장석에 얼굴 모습이 비친다. 애써 다듬어 만든 장석이 훌륭한 장인의 백골(白骨·원목으로 만든 가구) 위에 장식돼, 가구를 들여놓은 가정에 행복과 안녕이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쇠망치 소리와 함께 구슬땀을 흘린다.

문의 010-2546-1424 부산민학회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속보] 재커라이어, 나흘 만에 경질.. ‘역대 최단 기간’ 백악관 대변인
  2. 2"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3. 3[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4. 4부천 공장 화재 순직 소방관 장례 '경기도청장'으로 엄수
  5. 5[속보] 다카이치 총리, 야스쿠니 가을 제사 공물 봉납
  6. 6[속보] 추미애 “순직 소방관께 깊은 애도, 근무 환경 살피겠다”
  7. 7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8. 8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1.2원 ↓
  9. 9"뉴스거리 만들려 범행" 인천 흉기난동범 최충락 주거지 압수수색
  10. 10"통합 앞둔 발전5사, '8020억 자회사 부채' 승계계획 전무"
  1. 1[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2. 2[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3. 3이 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담아내야" 국회에 개헌 논의 촉구 (종합)
  4. 4이헌승 "국제신문 실질적 대주주 조사 미흡" 질타에 부산노동청장 "다음주 면담"
  5. 5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6. 6李대통령 지지율 39%, 하락세 멈췄다…민주 36% 국힘 27%
  7. 7李대통령, 부상 소방관·장병 쾌유기원…“천금 준들 아깝겠나”
  8. 8李대통령 “국무회의 비공개 동의못해…할말 못하는 국무위원 없다 확신”
  9. 9李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수록 개헌, 국회가 나서달라”
  10. 10이혼소송 중 주소 노출…서울고법원장, 아내 살해 공무원 사건에 “제도개선”
  1. 1"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2. 2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1.2원 ↓
  3. 3"통합 앞둔 발전5사, '8020억 자회사 부채' 승계계획 전무"
  4. 4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5. 5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6. 6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7. 7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8. 8부산 9월 취업자 9000명 늘었지만…'경제허리' 40·50대 3만명↓
  9. 9‘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10. 10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1. 1[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2. 2부천 공장 화재 순직 소방관 장례 '경기도청장'으로 엄수
  3. 3[속보] 추미애 “순직 소방관께 깊은 애도, 근무 환경 살피겠다”
  4. 4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5. 5"뉴스거리 만들려 범행" 인천 흉기난동범 최충락 주거지 압수수색
  6. 6이태원 참사 유족, 4주기 앞두고 진상규명 촉구…"책임자 처벌" 외치기도
  7. 7제자 성추행한 초등 교사에 기부금 전달한 동료 2명 '불구속 송치'
  8. 8"빈곤 없는 세상 쟁취하자" 서울 도심서 빈곤 철폐 투쟁 대회
  9. 9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10. 10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한 아이의 내일을 바꾸는 '부산의 힘'
“몸 불편한 엄마 화장실이라도 편히 사용했으면”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나노산단 분양률 50% 고무적…미래전략 앵커기업 유치 목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