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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당 육수 자동기계 앞에선 이용웅 씨. '18번 완당집'은 장남 상준 씨를 불러들여 이제 3대 전승에 들어갔다. |
- 부친 이은줄 옹, 日 완탕 배워
- 우리 입맛에 맞게 바꿔 첫선
- 엘리트코스 포기 가업 키워
- 업무 전산화·주방 자동화
- 종업원 처우개선도 이뤄
부산사람에게 완당은 이국적인 향수음식이다.
완당은 중국에서 아침식사로 먹는 만두국의 일종인 '훈뚠'(混沌·광동이나 홍콩에서는 '완탐')에서 시작한 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완탕'으로 정착한 것이라 한다. 얇은 밀가루피에 새끼손톱 크기 정도의 '소'를 넣은 작은 만두가 국물에 떠 있는 모습이 햐얀 구름을 닮았다 하여 '운당'(雲呑·운탄)으로도 불린 것이 부산으로 건너와 '완당'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방과 함께 귀국한 이은줄 옹이 1947년 일본식당에서 배워온 완당을 보수동 포장마차에서 팔기 시작하였으니, 그 역사가 무려 66년에 이르렀다.
서구 동아대 부민캠퍼스 앞길의 부용동 '18번 완당집' 이용웅(73) 씨. 이은줄 옹의 장남이다. 부친은 부용동 목공소 옆집에 살면서 딱성냥을 만들어 팔다가 화재를 당한다. 6살 때이다. 다시 포장마차를 만들어 퉁소 불면서 부민초등학교 뒤에서 보수천 검정다리까지 와서 포장마차 완당가게를 펼쳤다. 부산사람 입맛에 맞춰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우려냈다. 완당피는 바닥글씨가 보일 정도로 얇게 빚고 속을 꽉 채운 중국식과는 달리 밀가루피만 보이듯 속도 적게 채웠다. 해서, 이은줄 옹 완당은 목 넘김이 편하고 맛도 깔끔했다. 퇴근 후 술 한잔한 주당들의 숙취해소엔 그만이었다. 튀김우동과 유부우동 등 상차림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세금 폭탄을 맞는다. 6학년 때 보수동 집 팔아 세금 청산하고 다시 검정다리 곁에 수상(水上) 완당집을 열었다. 이후 1972년 부용동 법원 앞 문서창고를 매입해 제법 번듯한 완당집을 개업한다.
이은줄 옹의 장남 용웅은 경남중·고와 한양공대 섬유과를 졸업한 후 1965년 봉제계통인 동광통상 구로공장장으로 근무한다. 그 사이 부친은 타계하고 모친이 가업을 잇는다. 당시 봉제계통의 최고 대접도 받고 독일 유학의 꿈도 키우지만 가업을 위해 모두 접고 서면 대한극장 앞 백마당분식점을 인수한다. 새벽부터 통행금지까지 이 일대 출입고객의 연령별 통계까지 내가며 기초조사를 했지만 가계를 잇는 첫 사업은 실패하고 만다. 1980년 광주사태 이후 매일같이 벌어지는 시위대의 중심에 위치했던 백마당분식점은 진압경찰대의 거점이 되어 식당에 손님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44세 때인 1983년 노량진 금정교과서에 입사해 익혀둔 컴퓨터 실력으로 업무전산화 작업을 주도하고 88올림픽 후 퇴직, 모친에게 다시 가업 계승 의지를 간절하게 피력한다.
그간 수차례 반대만 해오던 모친이 못 이긴 듯 승락했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봐라." 여섯 형제들에게도 동의를 얻었다. 1988년부터 이용웅 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장사와 관계되는 모든 자료를 전산화했다. 1일 판매량, 자재비 등을 3년간 원가계산하여 가격도 조정했다. 그리곤 실질적인 가게운영은 부인에게 맡기고 일본, 대만 등지의 완당산지를 방문해 이미 자동화로 경영혁신을 이룬 이들의 경영철학을 배운다.
주방시설부터 개선한다. 1996년 일본 오꾸바(吳久葉)회사에 국수면기계를 제작, 의뢰했다. 제작이 완료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부산에서 밀가루를 보내 뽑아낸 국수가 완제품이 된 것을 확인한 후 비로소 인수하여 지하실에 비치했다. 시험제품을 받아본 다음 우리 밀가루로 가공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오꾸바 사장도 이용웅 씨의 이런 섬세함을 높이 사 일본 내 유수 완당집과 면집들을 함께 방문하며 일본면의 맛을 보여주고 그들의 취향도 맛보게 했다. 이후 2년마다 기술자들을 초빙하여 기계설비를 점검해 왔다.
주방시설을 개선하는 일은 주방장의 적극적인 노력이 따라야 했다. 경남 사천 동명초등학교 졸업 후 주방에서 일을 배워 주방장이 된 최명호(67) 씨는 53년 경력의 소유자이고 함안 출신 부주방장 안찬수(57) 씨는 경력이 43년이다. 쟁쟁한 경력의 주방장들이 주방을 지키고 있기에 부용동 '18번 완당집'의 맛은 항상 제맛을 잃지 않는다. 특히 최명호 주방장은 5년 전 SBS-TV의 '달인'에 출연한 명인이기도 하다. 무연탄을 쓰던 시절에서 석유-가스-전기시설로 바꾸고 2층 20평 정도에는 한 번에 2500명분을 뽑을 수 있는 육수자동화시설도 설비했다. 2001년 8인분 모밀국수를 6분 만에 끓여내는 자동기계도 들여와 손님들의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등 고객서비스를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이용웅 대표가 주방장들과 주방쇄신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따끈한 완당으로 속을 다스린 후 시원한 메밀국수를 맛보는 것이 이 집의 바른 코스이다. 대나무살로 정성 들여 만든 초가집같이 생긴 대나무 그릇에 얹은 '발국수'는 이 집만의 특징이다.
3대 전승을 위해 장남 상준(36)을 불러들였다. 완당집 수습생이 되기 위해 일본 현지 오꾸바와 도요맹카에 연구원으로 보내졌다 돌아온 그는 요즘 가게 전산시스템과 정보, 유통 등을 맡고 있어 여간 든든한게 아니다.
그간 인근 주택을 구입해 가게도 확장했다. 종업원들도 늘었다. 사업이 번창하는 만큼 종업원들의 처우를 향상시켰다. 보너스와 휴가는 물론이고 자녀들 대학진학까지 책임져 준다. 심지어 주택자금까지 지원하는 등 '공생하는 아름다움'을 펼치는 가게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010-5772-0018 / 부산민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