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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재생 4.0 부산의 미래를 흐르게 하자 <4-6> 동천의 기억- 동천에 묻어둔 추억들

멱 감고 고기잡고 얼음 지치고… 가난했던 시절 마음 살찌운 터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6-18 19:58:58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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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란 와중인 1952년 동천 일대에 즐비하게 늘어선 판잣집 풍경.
- 맑은 물 길어와 식수·용수로 사용
- 다양한 물고기 서식, 천렵꾼 북적
- 하천변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 6·25 피란민들 모여 판자촌 형성
- 넝마주이 떼지어 생활, 세력 과시
- 왕초는 마을 어른들과 동등 대우

- 하야리아 미군부대 주둔하면서
- 한동안은 환락가로 호황 누려
- 나무로 만든 광무교 탱크도 오가

- 산업화 진행되며 수질오염 가속
- 교통난 탓에 복개 운명 맞았지만
- 기억 속에는 영원히 흐르는 젖줄

■나는 동천 토박이

   
동천변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 궁핍한 시대였지만 아이들의 표정에는 천진난만함이 묻어난다. 부산 부산진구 제공
동천(東川)은 부산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도심 하천이다. 원래는 흙과 자갈 모래가 곳곳에 고루 분포하고 작은 둔덕들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어 경관이 좋았다.

나는 광무교 서쪽 80m 지점인 부전동 552번지 철도 굴다리 바로 앞에서 태어났다. 문만 열면 동천이었다. 그리고 바로 앞 철로 변에 인접한 부산진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다녔으며, 소싯적과 청년기를 거쳐 결혼하고서도 얼마간 살았다. 지금도 서면 부근에서 살고 있는 관계로 어쩌면 동천은 나에게 태생적 고향이요, 꿈과 이상을 주던 시절의 무대였으며, 정서의 근간을 이루는 마음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여름이면 멱 감기와 고기잡이로 시간가는 줄 몰랐으며 겨울이면 썰매와 얼음지치기로 하루 해를 보냈다. 자연적인 풍광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냥 동천의 하루가 마냥 즐겁기만 했다. 지금도 그 시절의 동천을 생각하면 흥분이 되어 마음마저 찡해진다. 그래서 시인이 된 나의 호(號)도 아예 동천(東川)이라 이름했다.

동천과 부전천이 합류되는 지점에는 다양한 수종의 고기들이 많아, 각지에서 온 천렵꾼들이 줄을 이었다. 밤이면 칸데라 불로 어른들은 꼬시락(문절망둑)이나 모래무지 등 잡어 잡기가 일과처럼 되고 있었다. 소년시절 어른들 틈에 끼어 다니면서 즉석에서 잡은 꼬시락 등을 고추장에 찍어먹던 생각이 난다. 하천변의 철로변 둔덕에는 아카시아 등 각종 나무와 풀숲이 있어 새총싸움과 병정놀이를 하며 해 지는 줄도 몰랐다.

그 시절엔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이라 대부분 가난한 살림살이로 큰 고통과 시련을 겪던 시대였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동천 앞에서 돼지와 오리를 기르며 작은 채전밭도 일구었다. 동천은 삶의 젖줄 같은 존재였다. 그런 동천이 교통난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복개가 되었으니 생각만 해도 울화통이 터진다.



'사철 꼽사리 낀 풀들의 아양이/ 양지로 발돋움하는 동천의 아침을 깨우면/ 새벽잠을 설친 / 살아있는 모든 몸짓들이/ 동해남부선의 기적 따라 기지개를 켰다// 바람 끝에 매달린/ 철기의 입방아들이/ 하염없는 물소리 곁의 하모니로/ 황령산의 늦잠을 일으킬 때쯤// 나무들 줄기 나누는 쪽으로/ 바다로 떠내려간 어제의 동천이 그리워/ 새들은 물 향기 짙은 아름다움을 물고/ 하루를 지나간 사람들을 헤아리며/ 신나게 고향의 봄을 노래했겠다// 먼- 후제의 사람들이/ 한 박자 늦게 오는 매몰지의 소식 들으며/ 동천(東川) 앞에서 태어난/ 최창도 시인을 기릴 때쯤이면

〈필자의 졸시 '동천東川' 전문〉


■맑고 깨끗했던 물

사실 6·25 전쟁 나기 전까지만 해도 동천의 물은 정말 맑고 깨끗했다. 예닐곱 살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하천의 수량이 줄어들거나 가뭄이 들어 샘물이 마를라치면 어른들은 새벽부터 동천의 물을 길어서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동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 철도차량정비창 있는 곳까지 곳곳에 맑은 샘터가 산재해 있었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이곳에서 세시풍습으로 용왕을 매긴다며 간단한 제(祭)를 지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동천 주변에서 지금의 광무교를 중심으로 서쪽 50m 부근에서부터 부전천의 지류가 합류 되었으며, 부전천을 따라 북쪽 50m 지점엔 초창기 부산 신발업계의 한축을 이끈 보생산업주식회사가 성업 중이었다. 그 부전천에 조그만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앞 목조건물 2층엔 서양화의 대가이신 양달석 선생의 자택이 있었다. 건너편엔 어린이회관이 있어 이영도 시조시인이 관장으로 활동했다. 그후 하천 앞에 혜화학원이 설립되어 시인이자 소설가이신 정상구 박사가 교장을 지냈다. 그러니까 동천 반경 50m 이내에 기라성 같은 예술가 세 분이 함께 둥지를 틀고 있었던 셈이다. 필자 또한 까마득한 후배로 동천 변에서 태어나 시인 겸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으니 어쩌면 동천의 물 맑은 정기와 유려한 풍광에 은혜 입은 것이 아닌가 싶다.

동천의 중심인 광무교는 당시 나무다리였으며, 6·25 때는 양쪽에 경찰이 군기피자를 검문 색출하는 곳으로 도민증을 확인하고서야 통과시켜 주었다. 조금 하류로 가면 1953년에 설립된 제일제당이 있었고, 그 뒤로는 부산 고무공장이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리고 제일제당 담벼락 사이로 제법 큰 두부공장이 하나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피난민들과 극빈자들이 전쟁의 참화로 생활이 궁핍하였으므로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비지'를 사러 새벽이면 장사진을 이루었다.

■6·25 이후엔 하꼬방 천지

돌이켜보면 6·25 동란 이후에는 동천을 중심으로 광무교 하류까지 피난 온 사람들의 하꼬방 천지였다. 이때부터 조금씩 수질오염이 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광무교를 중심으로 하천 따라 서쪽 80m 지점에 철도 굴다리가 있었는데 이곳의 수심이 가장 깊었다. 그것은 지금의 온종합병원 앞에서 합류한 가야천과 당감천의 영향이었으며 큰 다리 아래는 100여 명의 넝마주이들이 진을 치고 살았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조직을 철저한 규율로 관리했고 주민들에게도 친절했으며 민폐를 끼치는 일은 없었다. 요즈음으로 치면 조폭이나 주먹께나 쓰는 부류라 할 수 있는데, 상호 간 서열도 엄격히 지켜지고 있었다. 당시 이들은 각종 고물들을 수집하여 저울에 달아서 수익에 따른 배분으로 매월 2번씩 월급을 주기도 했다. 저녁때가 되면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영화관에 가거나 외출을 하곤 했다.

그 시절의 넝마주이들은 낭만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동천 굴다리의 넝마주이와 하야리아 앞 철도 굴다리의 넝마주이, 그리고 보수동 검정다리 부근의 넝마주이를 부산의 3대 집단으로 일컬었다. 그 중 동천 넝마주이의 대장격인 왕초가 오야붕 격으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경우도 바르고 예의도 있었으며 겸손하여 마을의 어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광무교 옆에 미군 세탁부대

여름에는 하야리아 부대의 미군들이 가끔 트럭을 타고 와서 동천에서 세차를 하며, 커피나 과자, 껌 등을 먹어가며 휴식을 즐겼다. 이들은 털복숭이의 반나체 차림이어서 마을 여인네들이 그들을 보고 질겁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광무교는 나무다리였는데 미군 탱크들이 곧잘 지나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부전천과 동천이 합류하는 삼각지에는 6·25전쟁 발발 후 미군 세탁부대가 주둔했다. 후방에 있는 미군부대의 세탁물을 전용 처리하는 부대로 철조망으로 둘러 처진 담벼락이 있었으나, 미군들은 적은 돈을 받고 마을주민들에게 세탁물인 담요나 군복 내의 등을 몰래 빼내 팔기도 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습득한 군용품에 갖가지 물감을 칠해 유용하게 사용했다. 군복이나 담요로 교복을 해 입었는데 당시는 '사지'라고 하여 귀한 옷으로 취급되어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고 다니기도 했었다. 가끔씩 미군 헌병(MP)들이 마을에 불심검문을 나왔으나 큰 탈은 없었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드럼통에 나무를 때며 보초를 서는 미군병사들로부터 철조망너머로 과자나 초콜릿, 껌 등을 얻어먹던 생각이 난다.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부터 동천 인근 마을에는 양공주들이 세 들어 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근의 하야리아 부대와 세탁소 미군들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부전천과 동천이 합류되는 곳에 '올림픽 카바레'가 생겨 하야리아 부대 인근에서 수용 못한 미군들의 환락가로서 한동안 호황을 누렸다.

   
미군 세탁부대가 오기 전 이 삼각지에는 서커스단의 공연무대가 만들어졌고, 정월대보름 때면 어김없이 달집이 타올랐다. 광무교 바로 옆에 자리한 광무체육관은 전국적인 명성 속에 수많은 체육인을 배출한 요람이었다. 그 인근에는 방인근의 '새 출발'이란 소설에서도 잠깐 언급된 근로고아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면 동천 부근은 근대사의 영욕이 겹쳐져 있는 곳이다. 동천의 복원은 향토적 보존가치와 하천의 특수성, 부산의 중심권인 서면지역의 정서를 포괄하는 큰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옛 모습의 자료를 근거로 하여 최대한 원상 복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 날이 앞당겨지길 고대해 본다.

최창도 시인·경일문화원 원장

후원: (주)협성종합건업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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