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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권택 영화감독이 동서대 임권택영화박물관 개관 소감과 자신의 영화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진우 프리랜서 |
# 동서대 석좌교수 맡기까지
- 장제국 총장 영화대학 제안
- 고민 많았지만 돕기로 결단
# 부산서 영화와 인연
- 6·25전쟁 때 군화가게 취직
- 주인 영화촬영 돕다가 입문
# 102번째 작품 부산서 준비
- 꼭 서울이 아니어도
- 영화 잘 찍을 수 있다
- 학생들에게 보여줄 것
한국 영화사에서 '임권택'이라는 이름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다. 한국 영화계를 든든하게 지탱해왔고, 전 세계에 한국영화를 알리며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올해 나이 80세, 영화인생 57년. 한평생 영화에 인생을 바친 거장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인 박물관이 생겼다. 지난달 28일 동서대 센텀캠퍼스 임권택영화예술대학에 개소한 임권택영화박물관이다. '영화도시' 부산에서 자신의 박물관을 갖게 된 임 감독을 만났다.
-국내 최초로 영화인의 이름을 붙인 박물관이 만들어졌습니다. 기분이 어떤지요.
▶쑥스러워요. 제 인생을 되돌아보면 미숙했던 한 영화인이 깨달음을 얻고 정신을 차린 뒤 온 힘을 다해 영화를 만들면서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제 영화를 시대별, 작품별로 꼼꼼하게 정리하고 저도 몰랐던 자료까지 모아 제 영화인생을 총망라했더군요. 영광입니다. 지인들도 영화계에 이런 공간이 생긴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얘기해주네요. 박물관이 문을 연 이후 노부부, 20대 연인, 대가족 등 많은 시민이 다녀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분들이 뭘 얻어갔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임권택영화박물관은 동서대에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이 생기면서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2007년 동서대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석좌교수를 맡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동서대 장제국 총장께서 제안하셨어요. 장 총장과는 일본 세미나 등에서 만나 알고 있던 사이였거든요. 사실 처음 제안을 받고 고민이 많았어요. 작품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아붓느라 내 삶을 돌아볼 여유도, 시간도 부족한데 제 이름을 딴 대학을 맡는다니…. 하지만 학교 측이 국내 최고 시설과 장비를 갖춰 우수한 영화 인재를 기르는 데 힘 쏟겠다고 설득했고, 지방에서 공부하며 소외감을 느낄 학생들을 돕고 싶단 생각에서 결단을 내렸죠.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이 생긴 이후 부산, 울산, 경남뿐만 아니라 서울, 해외 학생들까지 찾아오고 있다고 하니 학생들과 학교에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에요.
-영화계는 어떻게 입문하셨나요.
▶한국전쟁이 끝나고 집안이 이념분쟁에 휘말려 힘들었어요. 그래서 부산으로 내려와 군화가게에 취직해 신발을 팔았어요. 그런데 장사 수완이 별로 없어서 거의 돈은 못 벌었지(웃음). 군화가게 주인이 서울로 올라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는 잡일을 도맡아 하다가 1962년 첫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찍고 신인감독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어요. 이후 10년간 영화 50여 편을 찍었죠. 액션, 코미디, 멜로 등 가리지 않고 흥행만을 목표로 막 찍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 시절이었어요. 영화를 찍어 번 돈은 모두 술로 날려버리고. 그땐 '빨갱이'로 찍혀 아무것도 못 하는 현실에 대한 울분과 괴로움을 술로 잊으려고 했던 것 같아.
-본격적으로 감독님의 영화 세계를 찾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영화를 많이 찍을 땐 '할리우드 이류 영화라도 찍을 수 있다'란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그게 한계가 있더라고. 그래서 한국 소재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시기에 아내(배우 채령)를 만나 술만 먹고 방황하던 생활을 접고 정신을 차렸죠. 그게 1970년대인데, 그 후 10년간 할리우드를 동경했던 내 영화 색깔을 지우는 데 절치부심했던 것 같아요. 1980년대부터 한국적 소재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나만의 영화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죠.
-101편의 영화를 찍으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허허. 영화감독한테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물어보면 안 돼. 모두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만들었는데 하나만 꼽을 순 없죠. 가장 최근에 찍은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답할걸요(웃음). 글쎄요. 객관적인 기록으로 봤을 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임권택'이란 이름을 알렸던 '만다라'가 기억에 남아요. 또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취화선'도 괜찮지. '장군의아들'도 내 인생에선 중요한 작품이에요. 그 작품이 흥행에 성공해 거기서 번 돈으로 '서편제'를 찍었거든요.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다고 하는데 누가 투자하겠어요.
-102번째 영화를 준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가을쯤 촬영에 들어갈 거예요. 이번에는 특별히 부산에서 촬영을 진행할까 합니다. 동서대 학생들에게 영화 제작 환경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영화는 어디서든 찍어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영화작업 대부분 서울에서 이뤄지니까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아서 영화는 어디서든 잘 찍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감독님에게 부산은 어떤 곳입니까.
▶글쎄요. 부산은 제 인생에서 제일 고생을 많이 했던 곳이에요. 물론 서울에서 대부분 살았지만…. 그때의 기억 때문에 부산을 떠올리면 늘 아련하게 그리운 느낌이 있어요. 제2의 고향이라고 할까. 1960년대 한창 영화를 찍을 때 기장, 송정 등에서도 많이 촬영했어요. 그런데 학교와 인연이 닿아 제 이름을 딴 대학까지 만들어진 걸 보면 전생에 부산과 뭔가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 거장 일생 담은 '이야기가 있는 공간'
■ 임권택영화박물관은
- 6개 섹션, 시대별 작품 등 전시
- 개봉 20주년 '서편제' 기획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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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동서대 센텀캠퍼스 2층에 개관한 임권택영화박물관 내부. 동서대 제공 |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 센텀캠퍼스 2층(330㎡)에 있는 임권택영화박물관은 국내 최초 한 명의 영화인을 조명한 박물관이다.
임권택영화박물관은 임 감독의 영화 인생을 총망라해 압축, 정리해놨다. 196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떠도는 삶'이란 키워드 아래 6개 섹션으로 나눠 구성했다. '이야기가 있는 박물관이었으면 좋겠다'는 임 감독의 바람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박물관은 임권택 감독의 ▷유년기와 청년기 ▷데뷔 이후 초창기 ▷본인만의 영화 세계에 몰두한 시기 ▷'장군의 아들', '서편제' 흥행 시기 ▷2000년 이후 시기 등 5개 섹션으로 나눠 시대별 작품과 사진, 시나리오, 기사 등을 전시했다.
또 별도 기획전시 공간을 마련, 올해 개봉 20주년을 맞는 '서편제'를 조명해 의상과 판소리 레코드판 등을 전시했다. '장군의 아들'과 '취화선' 세트를 별도로 제작해 관객 체험 공간을 마련한 것도 볼거리다.
영화박물관 전시자료는 임 감독의 부인 채령 씨가 그동안 모아둔 자료와 임 감독을 사랑하는 지인들의 소장품을 기증받아 마련했다. 자료 수집과 정리에만 6개월 넘게 걸렸다. 특히 '취화선' 그림을 맡았던 김선두 화백(중앙대 교수)은 박물관에 걸 수 있는 크기로 그림(5점)을 다시 그려 기증해 임 감독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 임권택 영화감독 약력
-1934년 전라남도 장성 출생
-1956년 '장화홍련전'으로 영화계 입문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
-1974년 '증언'으로 아시아영화제 감독상 수상
-1981년 '만다라'가 한국영화 최초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
-1986년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강수연) 수상
-1987년 '아다다'로 몬트리올영화제 여우주연상(신혜수) 수상
-1989년 '아제아제바라아제'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강수연) 수상
-2000년 '춘향뎐' 한국영화 최초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2002년 '취화선'으로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
-2005년 베를린국제영화제 명예황금곰상 수상
-2007년 동서대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석좌교수 위촉
-잡초, 서편제, 장군의 아들1~3, 축제, 천년학, 달빛 길어올리기 등 101편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