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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문학 뿌리와 현장 <12> 대학교 인문한국(HK) 연구단(상)- 부산대 '로컬리티의 인문학' 연구단

'부산'을 연구하지 않습니다, 부산을 통해 '로컬리티'를 연구합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4-09 19:44:26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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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로컬리티 연구단이 부산 남구 문현3동을 찾아 주민 이춘심(왼쪽 세번째) 씨로부터 살아온 이야기와 마을 역사를 채록하고 있다.
- '지역' 반대말은 '중앙'인데 흔히 '서울'로 알아

- 중앙/주변, 서울/지방, 국가/지역
- 이분법적 위계구도 해체 시도위해
- '로컬리티학' 표현

- 22명 연구원이 사례 모아가며 이론완성 중

"지난 6년 동안 연구단이 이룩한 최고의 성과는 뭘까요." 응당 논문이나 저서 제목을 얘기해주겠지 하고 예상하며 차철욱 HK교수에게 물었다. 그러나 차 교수는 잘라 말했다. "우리 연구의 최고 성과는 바로 우리 자신이 바뀐 것입니다." 대답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 인문학'의 위기라고, 대학 외부에서는 오히려 인문학 전성시대라고,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으는 이 시점에 대학 연구소를 찾아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이 아닌 로컬리티

   
부산대 로컬리티 연구단 소속 연구원들이 지난 2010년 부산 서구 아미동 주민을 방문해 사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이 사라져가고 세계화가 지상명령처럼 되어버린 시대. 과연 지역성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는 '로컬리티(locality) 인문학'을 주제로 2007년 11월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umanities Korea) 지원 사업 대형연구소로 선정됐다. 한국 근세사 연구 권위자인 김동철 사학과 교수와 함께 22명의 젊은 연구원이 참여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다들 바빠 보였다.

손은하 HK연구교수가 소식지 한 뭉치를 가져다준다. 손 교수의 전공을 물어보니 영상공학. 이곳에는 공대 출신이 두 명이나 있어 융합연구의 촉매 역할을 한단다. 현재 연구소는 전공이 다른 두 사람이 한 가지 주제를 공동 연구하도록 규정해 융합연구를 촉발하고 있다. 참으로 대형 연구소가 아니면 실현하기 어려운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지역이나 지방 대신 '로컬리티'란 말을 쓸까. 우리의 기존 관념을 '정화'하기 위해서란다. 가령 지역(지방)의 반대말이 뭐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답은 서울이 아닌 중앙이다. 서울시도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정부이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은연중에 '서울, 중앙, 정부, 국가'를 동일시하며 살아간다. 서울도 하나의 지역이고, 부산도 하나의 지역이란 진실을 억압한 채.

문재원 HK교수는 이렇듯 기존 관념에서 지역이란 말이 중앙/주변, 서울/지방, 국가/지역이란 이분법적 위계질서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이분법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참된 뜻에서 지역을 되살릴 수도 없다는 것. 중앙에 대한 복수심으로 뭉치거나 자신의 지역을 새로운 중앙으로 만드는 지역주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로컬리티란 단어를 사용하는 건 이런 이분법적 질서를 해체하는 시도란 것이다.

■시대와 함께하는 연구

   
대안문화공간 '오픈스페이스 배'의 '로컬 투 로컬' 프로그램.
문득 부산의 대표적 대안문화공간인 '오픈스페이스 배'가 2007년 9월부터 해마다 열어온 '로컬 투 로컬' 행사를 떠올렸다. 서상호 대표는 국제교류 행사에 이런 이름을 붙였는데, 이렇게 국가/지역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생각은 로컬리티 인문학과 놀라울 만치 가깝다. 상아탑의 연구가 동시대 예술 활동과 교감했다는 것. 로컬리티 인문학이 이 시대가 바라는, 어떤 심층적인 것에 닿아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연구단은 로컬리티의 의미를 규정하는 일반이론을 아직 완결 짓지 않았다. 일단 부산을 중심으로 사례를 모아가며 점진적으로 일반이론을 완성하는 전략을 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로선 부산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부산학' 연구단처럼 인식되기도 하지만, 최종 목표는 로컬리티의 일반이론인 '로컬리티학'을 정립하는 것이란다.

어쩌면 연구원 22명마다 로컬리티를 다르게 정의할지도 모른다. 사실 부산 사람에게 부산의 정체성을 물어봐도 각양각색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연구원마다 로컬리티를 다르게 보는 만큼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부산을 알기 위해 목포를 살펴보기도 했던 양흥숙 HK교수는 그들의 공동연구를 '교향악단'에 비유했다. 또 이런 공동연구 덕분에 "문헌을 넘어 스스로 주변에 관심을 두고 돌아보는 자세를 배웠다"고 말했다.

연구단은 시민이 살아온 이야기를 채록하는 '구술사' 작업을 통해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가졌다. 서구 아미동을 답사해 '아미동 산동네의 형성과 문화변화'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또 금정도서관, 시립시민도서관에서 인문강좌도 연다. 수강생들이 도서관을 옮겨 가며 강좌를 듣는 바람에 매번 강의 준비를 새로 해야 한단다. 연구원이 맡은 강의와 연구 부담이 과중한 건 아닌지. 하지만 시민의 눈망울을 떠올리며 기운을 낸다는 차윤정 HK교수. "우리 연구의 최고 성과는 우리 자신이 바뀐 것"이란 말이 다시 생각났다. 지역 국립대가 지역의 걱정거리가 되어버린 가운데 로컬리티 연구단은 우리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 '로컬 투 로컬'(Local to local)

- 국가주의와 지역주의를 넘어선 교류

'오픈스페이스 배'는 국내외 예술인 거주 프로그램과 국제교류로 이름난 곳. 2006년 부산 기장군 일광면에 자리 잡았다. 서상호 대표는 2004년부터 해외 소도시들과 교류해왔는데, 2007년 9월에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활동하는 5개 국적의 젊은 작가 5명과 큐레이터 1명을 초대해 20일 동안 국내 작가들과 함께 작업했다. 서 대표는 이 행사를 '로컬 투 로컬'로 불렀고, 해마다 계속 진행해오고 있다. 당시 '선언문'을 요약하면 이렇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실현되고, 국가 간 경계가 사라져간다 해도 지역의 정체성, 그 동네만이 지닌 문화, 생활, 언어, 음식 등을 글로벌리즘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국가의 이름 아래 '서열화'된 지역의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근대사회가 만든 경계와 경계 사이에 숨죽인 소중한 삶의 흔적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지역에 한정된 논의는 폐쇄적 국가주의와 닮은꼴이다. 한 지역과 다른 지역을 함께 이야기해야 폐쇄성을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문화의 표정을 읽고 서로 뒤섞이기 위해 '로컬 투 로컬' 방법을 제안한다. 이 방법을 구체화하려면 세밀한 '지역학' 연구와 네트워킹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 로컬리티학(Localitology)

- 개별 지역학을 위한 보편적 방법론

로컬리티학은 특정 지역을 연구하는 '지역학'이 아니라, 지역이란 것 자체의 의미를 밝히는 일반이론. 이를테면 세계 곳곳의 지역들이 중앙정부나 주변 환경이나 국제관계에 따라 어떻게 구성되는지, 또 어떻게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 이론적 틀이다. 이것을 완성하면 지역별 지역학을 위한 보편적 방법론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어쩌면 일반적인 도시 발달 연구에 중앙/주변, 서울/지방, 국가/지역 등의 문제의식을 결합한 것처럼 보이는데, 아직은 모호하다.

   
부산대 연구단은 로컬리티학을 세우는 거시적 이론 작업과 미시적 사례 연구를 동시에 진행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두 작업의 연결이 매끈해 보이진 않는다. 어떤 얘기는 너무 추상적이거나 미래적이며, 어떤 얘기는 너무 미세하거나 과거적이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앞으로 두 작업의 간극을 줄이고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가진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 관건일 듯하다.

또 연구단은 주로 공개강좌를 통해 시민과 만나는데, 현재 도시 전체에 인문강좌가 넘쳐난다. 새로운 소통 방식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지훈 철학자·필로아트랩 대표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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